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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곱글자부부 Jul 16. 2018

남편이 쓰는 신혼집 공사일지 (2)

건축을 하는 남자와 디자인을 하는 여자의 신혼 첫 보금자리 꾸미기


모래놀이터를 파내려가면서 오래된 화석을 발견하지는 않을까, 두근거렸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어른이 된 지금에도 철거중인 현장에 가면 그런 기분이 든다.

고목재 창호, 누런 플라스틱 두꺼비집, 새까만 구들장, 시멘트벽돌로 쌓아올린 벽 따위가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면, 그제야 이 건물과 정식 인사를 나눈 듯한 기분이 든다.

 

'아이고 이런 분이셨군요. 제가 몰라 봤습니다. 반갑습니다~'

 '엣헴~'


그렇게 정식인사를 나누고 나서야 이 건물의 목소리를 들으며 뚜렷한 설계안을 그릴 수 있다. 공간은 얼마나 확보가 가능한지, 단열재는 어디에 넣어야 하는지, 수도와 전기는 어떻게 끌어와야 할지... 그동안 아내와 함께 고민한 집의 디자인과 가치가 어떻게 구현될지 그제야 손에 잡혀온다.


철거 중 베란다측 중창을 확장 할 수 있다는걸 알았지만, 창호 교체와 서측 창이 굳이 클 필요는 없어서 확장하지 않았다.
창호 철거를 통해 이 집에 사용되어진 단열재와 벽체 구성 방식을 이해 할 수 있다.
모든 공사에 앞서, 특히 철거 공사 전에는 관리사무소에 가서 공사 신고를 하고, 필요하다면 주민 동의 까지 받아야 한다.


개인적인 의견일 수 있지만, 인테리어나 리모델링 (대수선) 에서는 철거공사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철거와 관련해서 도시전설처럼 전해져 오는 이야기가 있다. 인테리어를 위한 가정집 철거 중에 금괴가 나왔는데, 정직한 철거반장이 관계자 모두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하지만 건축주는 자신의 것이 아니라며 주인임을 부정하였고, 결국 건축주와 현장소장과 철거반장이 사이좋게 나누어 가졌다는 믿지못할 이야기이다.

물론, 그런 정직성은 아니더라도, 설계자의 의도를 벗어나지 않고, 과도한 철거로 인해 뒷공정의 일량과 비용을 늘리지 않으며, 철거중 발견되는 이상에 대해 정확히 정리 전달 할 수 있는 능력은 가진 철거 업자를 만나야 한다.

좋은 철거 업자는 설계부터 시공 그리고 준공검사에 이르는 모든 공정을 이해해야 하며 섬세하면서도 강한 손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


후 공정에서 목공이 가벽을 칠 예정이므로 벽지 등은 철거 할 필요가 없다. 굳이 철거를 해서 비용을 늘릴 이유는 없다.
철거후에야 정확한 값을 통해 정확한 계획이 가능해진다. 그 값을 통해 구현한 3D이미지


철거 후에는 기계설비와 방수, 그리고 조적과 미장이 이어서 들어오게 된다.

철거를 통해 집의 뼈대를 보았다면, 혈관을 구성하고 뼈의 보수작업을 하는 개념으로 보면 이해하기 쉽다.

FRP 화장실을 철거하고 그 민낯을 보았을때 아내는 매우 심난하였겠지만, 사실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30점짜리 설비를 100점으로 재정비 하는것 보다는 0점짜리를 100점으로 만드는것이 훨씬 쉽다. 묻혀있지 않고 노출된채 얼기설기 얽혀 있는 관들은 그냥 잘라내고 내가 원하는 곳으로 이으면 끝날 일이고, 하나도 방수가 되어 있지 않은 골조는 어설프게 방수가 되어있어서 그 성능을 의심하게 만드는 것보다는 차라리 내가 0부터 시작한다는 기분으로 꼼꼼히 방수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리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차라리 전부 노출 되어서 눈에 보이는 것이 낫다.
설비 배관 정리 - 세면대 하수관은 벽배관으로 하는것이 좀 더 깔끔하다. 물론 현장 여건에 따라 다르다.
아파트 공사의 특성상 변기 오수관 (오른쪽) 위치를 수정할 수 없었고,  추후 편심을 써서 위치를 옮기려 했었다. 이것이 너무 안일한 생각임을 알아차렸을땐 너무 늦었더랬다.


설비가 어느정도 끝나가면서 방수공사전에 화장실 벽체의 빈틈을 메우기 위한 조적공사가 일부 필요했다.

벽돌 20장정도만 쌓으면 끝날일을 조적공을 하루 일당 주고 시키기는 뭐해서 하루 날을 잡고 아내와 직접 조적과 미장일을 하기로 했다.

내가 하는 건축일이 어떤 일인지 아내에게 체험을 시켜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이 집에대한 막연한 애정이 아닌 손에 잡히는 물성으로써의 애정을 가질 수 있게 되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싶어 기획한 일이기도 했다.


사실, 이제와서 밝히지만, 아내는 미장에 재능이 있는거 같다. 조적같이 쌓아 올리고 축조하는 것에는 약하지만, 표면을 다듬고 일정하게 맞추는데에는 앱디자이너 특유의 픽셀을 잡아내는 그 촉이 발동하는것이 아닌가 싶다.

그날 편한옷으로 청바지를 입고 왔을 때는 미국의 작업자들의 정신을 이어 받아 청바지를 입은 노동자 정신을 계승한 줄 알았지만, 평상시에 편한옷을 즐겨 입지 않아 츄리닝이 없어서 청바지를 입고왔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아내에게 반드시 편한 츄리닝을 사주리라 마음먹었는데, 벌써 반년이 지났다. 생일때 꼭 사줄게... (룰루레몬으로)


이렇게 작은 양일 때, 직접하면 치킨값정도면 될 일이지만 조적공을 부르는 순간 돈 20정도는 우습게 사라진다.
아내님의 바닥 미장, 일당 드려야 하는데 현금이 없었다.
내눈에는 요정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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