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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곱글자부부 Jul 15. 2018

아내가 쓰는 신혼집 공사일지 (2)

건축을 하는 남자와 디자인을 하는 여자의 신혼 첫 보금자리 꾸미기


우리의 신혼집은 1993년에 지어진 30년이 다 되어가는 오래된 소형 아파트이다.

그러다보니 공사는 아주아주 밑 작업부터, 아예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그것이 바로 철거라는 것이었는데 이름부터가 험상궂다. 도대체 철거라는 것이 어디까지를 뜯어내는 것인지 그냥 들어서는 감이 오질 않았다. 그렇게 추운 겨울 철거가 완료되었던 어느 날, 그 모습이 너무 궁금해서 퇴근 후 바로 신혼집으로 달려갔다.


처음 본 일반 가정집(?) 철거 현장.


거실 벽(베란다쪽) 철거 모습
거실 철거 모습


부모님집에서 10년 넘게 이사도 가지않고 살았으니 이런 공사현장의 모습은 정말 생소했다. 과연 이런 상태에서 내가 생각하는 예쁜 집으로의 탈바꿈이 가능할지조차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다.

철거는 직장때문에 우리가 직접 지켜볼순 없었고 미리 체크해놨던 부분만 철거사장님께서 철거해주시는 방법으로 진행되었다. 거실벽이라던가 천장 등등은 어차피 목공사를 해서 덧대여지기 때문에 벽지를 굳이 뜯지 않는다고 했다.


싱크대 철거 모습 (feat.도비)
다용도실과 안방 사이
벽의 단면 (오래된 집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
안방 창문 철거모습


그리고 철거 현장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건 바로 안방 창문.

이렇게 안방 창문이 컸었나 다시금 느끼면서도 거센 겨울바람에 한층 더 우리 집이 휑하고 추워보였다. 이렇게 돌덩이 가득, 흙과 시멘트 먼지 가득 날릴 일인가.. 하며 뭔가 모를 심란함이 들었다. 게다가 나는 이런 철거현장의 모습을 그저 지나가는 공사장 정도에서만 봤기 때문에 돌덩이 사이사이로 드문드문 발린 시멘트가 과연 안전한 것인지에 대해 의문점이 생기기도 했다.


화장실 철거를 확인하는 도비
화장실 철거 모습
도비가 그려온 도면


그냥 아- 이제 철거했구나. 이것은 돌덩이요, 저것은 시멘트가루구나 하는 나와는 달리 도비는 꼼꼼하게 철거작업을 확인했다. 그 중에 가장 오래본 것이 아마도 화장실이었던 것 같은데 화장실 공사가 생각보다 난해할 것 같다는 뉘앙스였다. 기존의 화장실은 문 입구부터 변기 > 세면대 > 욕조 순으로 위치해 있었는데 그 모든 것들이 정말 좁고 작게 다닥다닥 붙어있어서 답답해보이기도 하고, 우리에겐 굳이 욕조가 필요 없었기에 기존의 배열을 유지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욕조를 없애고 샤워부스만 설치하자! 라고 쉽게 말했었는데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수도의 위치들이 기존의 배열에 맞게 배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배열을 바꾸려면 그런 각종 파이프들을 재배치 하는 공사가 필요한 것 같았다.

그리고 화장실이 워낙 좁다보니 수납은 어디에 할 것이며 볼일을 보고 샤워를 하고 손을 씻는 동선을 어떻게 잡을 것인지 생각보다 고민이 많이 되었다.


화장실 방수공사 후
화장실 방수 공사 후 (오른쪽에 메꿔지지 않은 틈이 있음)
화장실 방수공사 후


그래서 며칠 뒤 화장실 방수 공사를 하며 수도 위치를 변경하게 되었다. 문을 들어섰을 때 변기가 정면에 보여지는 것은 그대로 두고, 왼쪽에 세면대와 샤워부스가 나란히 배치하도록 했다. 그 정도면 작은 공간에서도 크게 동선이 어색하거나 꼬이지도 않고 쾌적하게 사용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방수 공사 후 화장실 정면의 왼쪽 구석 벽 부분이 비어있었는데 이 부분은 인부를 써서 작업해도 되는 부분이긴 했지만 우리가 직접 할 수 있는 정도이기도 하다고 도비가 알려줬다. 결혼준비로 바쁘고 정신없는 하루하루이기도 했지만 작업량이 많아보이지도 않았고 이때 아니면 언제 시멘트칠 해보나 하는 마음 + 우리집 기초공사에 나도 숟가락 하나 정도는 올리고 싶단 마음으로 그의 말에 흔쾌히 동의했다.


작업 준비 완료 (누가 이렇게 숏다리로 찍어놓으래..)
화장실 벽 빈틈 메운 모습
문지방 시멘트로 메운 모습


전날부터 편한복장으로 와야한다고 신신당부를 듣고도 그 흔한 츄리닝바지 하나 없었던 나는 그나마 편하다는 청바지를 입고 가서 한소리를 들었었더랬다. 화장실 말고도 기존에 있었던 문지방들을 다 철거하고 파인 부분도 메우는 작업까지 같이 했는데 생각보다 시멘트 바르는 일이 쉽지가 않았다. 공사장의 아저씨들이 찰지게 시멘트 바르는 그 모습을 상상했는데 생각보다 점성있게 발라지 않아서 특히 화장실 작업할때는 도비가 고생을 많이 했다. 몇 시간을 불편하게 앉았다 섰다 하며 작업하다 보니 '아, 그냥 이 시간에 따뜻한거나 먹으면서 편하게 보낼걸' 하는 생각이 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추운날 차가운 손 호호 불어가며 몇 시간을 노동했던 그 순간이 아직 뿌듯한 기억으로 남아있는걸 보면 직접 벽돌을 쌓고 시멘트를 발라본 것은 잘한 일이었던 것 같다.


열심히 하려면 일단 먹자. 치킨.


공사일지 두번째 이야기의 마지막은 추억 하나 남겨두자 하는 마음으로 찍어뒀던 사진으로 마무리.

공사에 대한 이야기, 결혼준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종종 주문해 먹었던 치킨. 치킨 배달 아저씨가 오시면 우리집 보고 범죄현장이라고 하지 않겠냐는 농담을 하며 추운 시멘트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서 허겁지겁 먹었지만 (그래서 한번은 체하기도 했지만) 어찌나 맛있었는지. 그래서 이젠 굽네 오리지널을 시켜먹을때마다 우리집 공사의 추억이 떠오른다. 다음엔 공사 때처럼 화장실 앞에 앉아서 먹어보자 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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