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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곱글자부부 Jul 14. 2018

남편이 쓰는 신혼집 공사일지 (1)

건축을 하는 남자와 디자인을 하는 여자의 신혼 첫 보금자리 꾸미기


넓은 마당은 바라지도 않고 필요도 없었다.

그저 잠시 쉼이 있는 집을 바라며 형편에 맞게 단독주택을 구하여 형편에 맞게 고쳐 쓰리라... 생각했지만, 나 혼자 살집이 아닌 같이 살 집을 구한다는것은 내 욕심만 채울 수도 없는 일이었다.

아내와 함께 가장 많은 이야기를 나눈 주제는 '집을 구할 때 중요하게 봐야할 가치들은 무엇이 있을까?' 였다.

집안에서 사는 우리가 항상 행복할 수는 없더라도, 집 자체는 항상 행복한 가치를 담고 있으면 했기에

어떤 가치가 담겨야 할지 많은 고민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재미있던건 서로가 쓰는 핸드폰 만큼이나 다른 가치를 두었다는 점이었다.

블랙베리를 쓰는 나는 기능성은 둘째로 치더라고 디자인과 낭만이 풍부하기를 바랐고, 아이폰을 쓰는 아내는 기능과 보안 그리고 디자인까지 담기를 원했다.


아내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많은 길과 많은 땅과 많은 집을 보았고, 서로가 무엇을 원하는지, 우리는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 점점 명확해져 갔다.

서로를 이해하고 나서야 나는 나의 욕심이었던 단독주택에 대한 꿈을 놔주었고, 치안과 출퇴근에 용이하면서도 풍광이 좋은 아파트를 구하는데 집중하였다.


그러다 어느날 아내 없이 혼자 매물을 보러 나온 그날, 지금 앉아서 글을 쓰고 있는 이 집을 보게 되었다.


거주자가 없는 집은 집보기가 너무 편하다


뭐랄까 딱 손에 안정감 있게 착 쥐어지는 과일 같다고 해야하나..

정말 평범한 티셔츠인데 맞춤 옷처럼 옷에 착 감긴다고 해야하나..

금액도 딱 우리가 가능한 수준에, 출퇴근도 딱 적당하고, 집크기가 둘이 살기엔 모자르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넓어서 인테리어 비용이 많이 나올거 같지도 않고..

와 이집이야! 라는 느낌 보다는 옷? 오오~ 라는 느낌이라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느낌이었다.


에어컨 배관을 위한 타공이 이미 되어있다면 10만원 번거다. 럭키


이튿날 아내와 같이 다시 집을 방문하였고, 아내와 함께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전에 이 집은 회사 기숙사로 사용되었고, 그 덕에 사용자들이 집을 꾸미며 살진않았기에 철거할 양이 그리 많아 보이진 않았다.

화장실은 기숙사의 특성상 질 보다는 시공의 편의성을 위해 FRP라는 플라스틱 자재로 마감이 되어있었는데, 천장뿐이 아닌 벽과 바닥 모두 FRP로 이루어져 있어서 철거후에는 화장실의 크기가 더 커질것으로 기대되었다.


문제의 FRP화장실
이런 자투리 공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갸 디자이너의 역량을 시험할 수 있는 기회인데 나를 내가 시험하다니 슬프구나


인테리어는 사실 철거후에 봐야할 부분이 꽤 많다.

설비와 전기도 간단하게는 물이 나오는지 불은 잘 켜지는지 정도면 되지 않나 싶지만, 수도 꼭지 위치를 옮긴다거나, 전등과 스위치의 위치를 옮기는 등의 일은 철거작업을 통해 그 집의 민낯을 본 후에야 100% 가능한지 어떤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초 집을 구매할 당시, 건축 혹은 인테리어 관계자와 같이 집을 보는것이 좋겠지만, 그것이 힘들다면, 너무 디테일한 이상향 보다는 풍경이나 주차, 교통, 치안 그리고 집의 구성과 면적 등 확실하게 알 수 있는 정보 위주로 집을 보고, 그 뒤의 인테리어 및 보수는 전문가에게 일임 하는것이 속편한 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서향집을 보려면 오전 오후 두번 다 가보는것이 베스트


사실 아내가 가장 걱정했던 부분은 우리 집이 서향이라는 부분이었다.

우리나라는 남향에 대한 선호가 너무 가득해서 심지어 상가도 남향으로 구하는 사람들도 있긴하다.

(상가는 남향은 항상 눈부시고 서향은 음식이 쉽게 상하며 동향은 오전과 오후의 광량 차이가 심하며

그나마 북향이 항상 일정한 광량과 서늘함으로 쾌적함을 제공한다. 물론 이것도 100% 맞는 말은 아니다.)

물론 가정주부 중심의 거주 공간에서는 대부분의 시간 빛이 들어오는 남향이 심리적 안정감과 쾌적함을 제공한다.


하지만 맞벌이 부부의 경우, 그리고 장방형의 구조에서 좁은쪽이 거실 베란다일 경우, 서향도 나쁜 선택은 아니다. 부부 모두 저녁에만 집에 있는 경우엔 저녁까지 빛이 들어오고, 넓지 않은 면적의 창에서는 깊이 들어오는 빛이 집의 온도를 조절해 주기 때문이다.

가끔 서향은 여름에 덥고 음식물이 쉽게 상할거다 라고 하시는 분도 있긴 하지만 블라인드 하나면 해결될 일이다.


집 계약을 마치고 철거사장님과 현장 미팅 날짜를 잡으면서 모든 건축가들이 꼭 해보고 싶은 그 말을 외쳐보았다.


'제가 건축주에요! 잘 부탁드려요! 하하하학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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