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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여행가쏭 Apr 18. 2018

새로 산 운동화, 버리기로 마음먹다.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니 새로운 선택을 하게 되었다.

하아, 새로 산 운동화... 버려야겠다


디자인도 괜찮고, 가격도 적당한 운동화를 하나 샀다. 다음 날 처음으로 신고 동네 산책을 나왔는데, 발목 뒤쪽이 조금 아팠다. 라벨택을 안 뗐으면 바꾸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이미 신고 밖을 나왔으니 내 발이 적응하기를 기대하기로 했다. 둘째 날 조금 멀리 외출을 했다. 그런데 이건 너무 심하게 발이 아팠다. 아킬레스건 쪽이 까지기 시작했다. 한참을 더 걸어야 했기에 운동화 뒤를 접어서 질질 끌고 다녔다. 그러다 이게 뭐 하고 있는 건가 싶었다. 멋을 부리기 위해 산 구두도 아니고, 편하게 신으려고 산 운동화를 이렇게 신고 다녀야 하나 싶었다. 
   
집으로 돌아와 생각했다. 이 운동화는 버리자. 평소의 나라면 신발장 한구석에 처박아 두고, 신지도 버리지도 못했겠지만 왠지 이번엔 버리자고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마음을 먹고 운동화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데, 뒤쪽에 볼록하게 튀어나와 있는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손으로 만져보니 딱딱했다. 이 부분이 내 발을 아프게 했구나 싶었다. '아니 여길 왜 이렇게 만든 걸까? 디자인 때문인가? 부드럽게라도 만들지...'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어느 순간 내가 가위를 들고 와서 그 부분을 자르고 있었다.



자르고 나니 중간에 하얀 솜 같은 부분이 삐죽 튀어나왔다. 솜이 보이지 않게 가죽을 한 번 바느질만 해주면 신을 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바늘과 실을 가져왔다. 가죽이라 바늘이 잘 들어가지 않았지만, 잘린 운동화의 가죽을 골무 삼아 바느질을 했다. 신어보니 발이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아니 왜 이렇게 만들지 않은 거지?'생각하며 다른 쪽 운동화도 똑같이 만들었다. 가죽 장인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물론 약간 엉성해 보이긴 했다. 그러나 눈에 띌 정도는 아니었고, 무엇보다 발이 너무 편안했다. 이후 이 운동화는 나의 데일리 신발이 되었다. 
   
버려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면 이런 행동을 할 수 있었을까? 반창고를 붙이고 며칠 더 신고 다니다가 점점 신지 않는 신발이 되었을 것이다. 1년에 한두 번 신고 마는 그렇고 그런 신발. 그러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나란 사람은 '모든 것을 내려놓은 순간. 버려도 된다. 실패해도 된다.' 생각하는 그때에야 비로소 한 발 내디딜 수 있는 사람이었나 보다. '버려도 되니 한 번 고쳐보자' 정도로는 안 됐을 것이다. '버리자'였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니 
새로운 선택을 하게 되었다


다시 생각해도 이번 운동화 사건은 나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내가 변한 것인지 이런 행동을 하면서 서서히 변해가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내가 무언가 저질러봤다는 것이 고무적인 일이었다. 비록 운동화 하나 일 뿐이었지만. 그렇다. 지금의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바꿔야 하는 것이었다. 나는 불편한 상황에서도 항상 참으려고만 해 왔던 것이 문제였다. 그 상황을 좋아해 보려 노력해 봤는데 안 되면 바꿔야 했던 것이다. 그냥 견디는 건 해답이 아니었다.
   
물론 그냥 두는 게 더 편할 수는 있다. 덜 번거로울 테니. 그러나 그건 신발장 안에 운동화를 처박아 두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었다. 고쳐서 신던지, 버리던지 선택을 해야만 하는 문제들이 생각보다 많이 있었다. 이런 일들은 그냥 두면 에너지를 빼앗아 가버린다. 물건 일 수도 있고, 인생 자체일 수도 있다. 애매하게 두지는 말아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반드시 최악을 선택해야 한다는 건 아니다. 최악의 시나리오를 마음속으로 '결정'해 보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일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그만두자'라고 결단을 내려 보는 것이다. 마음의 결단만으로도 팀을 바꾸거나 업무의 변화를 만들기 위해 적극적이 될지 모른다. 그만둘까 말까 고민하는 것만으로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퇴사하는 그 순간까지 결정을 미루던 나는 정작 그러지 못했었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삶의 태도가 바뀌게 되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 1년에 한 번 신는 운동화를 만드는 실수는 하지 않을 것이다

애매한 상황이 지속되면
최악을 가정하고 움직여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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