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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랑모단 May 08. 2024

식물은 물을 좋아하지 않나

수경재배에 대한 심오한 고민

물만 있으면 잘 자라지 않을까 하는 오만한 생각에서 시작된 시도가 수경재배였다. 나의 대부분의 수경재배의 실패 원인은 '이 정도는 과정은 생략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안일함에서 왔다. 수경재배에 대해서 찾아보면, 미량의 영양분을 첨가하라고 나와있는데도 불구하고, 물만으로 어찌어찌 자라지 않을까? 하고 강인한 식물을 믿었다. 뿌리의 2/3 정도만 잠기게 해주는 것이 좋다는 것은 물을 좋아하는 식물을 믿고 맘껏 먹으라며 푹 담가 주었다. 내 상식선에서 식물은 이런 이미지였다. 밖에서 자라나는 잡초는 뽑아도 뽑아도 새로 자라나고, 장마철에 물난리에도 버틴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식물은 막 자라나는 줄 알았던 것.



많은 재배법 중에 수경재배로 흘러가는 스토리는 이렇다.



물주기에 지친 식집사1, 수경재배란 것을 알게 된다. 물에 뿌리를 담가 키우는 방법이라니, 물시중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에 찬다. 수돗물만으로 키워보니, 꽤 싱그러워 보이고 인테리어도 푸릇푸릇해지는 것이 괜스레 마음 한편이 뿌듯해져 온다. 첫 일주일은 이게 맞는 건지 의심이 되지만 우선 식물이 살아 있음에 안심한다. 2주가 경과한 시점부터는 "나 쫌 식물 잘 키우나 봐!"의 환상에 빠진다. 그러다 몇 번의 물교체 시기를 놓치게 되거나, 관심이 소홀해진 틈을 타 식물은 한 잎 두 잎을 떨구게 된다. 열심히 구글링을 해서 '하엽이 지는 이유', '잎이 시들할 때' 등을 찾아보지만, 그 무엇도 내 식물이 아픈 이유의 원인이 되지 못한다. 그렇게 하루하루 약해져만 가는 식물을 보며 생각한다.



'아! 나 똥손이구나?'


냅다 컵에 꽂아 키웠던 루피넘. 그는 풀별로...






과거의 경험을 잠시 떠올려봤다. 수경재배를 당했던 아이들은 비실비실 자라다가 결국 약해져 죽어버리거나 살아남았어도 정말 생명을 유지하기만 했지 새잎을 낸다던지, 잎의 크기를 키운다던지 하는 ‘성장을 한다’는 느낌은 받을 수 없었다. 그저 물만 잘 주면 될 줄 알았던 나였던 것이다. 식물을 '키운다'라기보다는 '두었다'에 가까웠던 것 같다.


수경재배가 대두되는 이유는 아마도 '아 물정도는 알아서 먹었으면 좋겠는데?'라는 물시중에 시달리는 식집사들의 비책으로 생각되기 때문일 것이다. 생각보다 수경재배는 쉬우면서 초보식집사들이 하기에는 어렵다. '쉽다'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어렵다'는 사람의 차이는 아래의 두 가지를 이해하느냐 마느냐로 갈린다.


1. 뿌리는 마르면 안 된다.

2. 뿌리는 숨을 쉬어야 한다.


이 무슨 해괴한 소리인가. 뿌리는 마르지도 않아야 하며, 숨도 쉬어야 한다니. 이것을 이해하기 어려운 식집사들이 위의 비극의 스토리를 따라가는 것이다. 과거에 내가 그랬듯이..



컵의 바닥에서 떨어지도록 하는 것이 가장 좋다



뿌리는 물을 흡수함과 동시에 공기 중에 노출되어 숨 쉴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화분에서 키워도 뿌리가 숨 쉬지 못한다면 안타까운 결과와 마주하게 된다. 그렇다면 뿌리가 숨 쉬면서 안 마르게 할 수 있는 방법은 뭐란 말인가?


뿌리 전체 길이의 1/4 정도만 물에 잠기게 한다면 뿌리 윗부분이 숨을 쉬고, 아랫부분이 안정적으로 물을 빨아들이도록 한다. 이렇게 하려면 그냥 컵에 꽂아 놓거나, 화병에 푹 담가놓기는 힘들다. 제일 좋은 방법은 플라스틱 컵에 포트화분으로 사 온 것을 올려두는 방식으로 하는 것이 제일 좋은데, 이것은 미를 포기해야 한다. 그렇다. 생각보다 수경재배는 아름다운 방법이 아닌 것이다. 세상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몇몇 식물은 수경재배로 키우고 있는데, 이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겠다.


"물말림이 무서워요."


과습을 졸업했더니 이젠 무시무시한 물말림이 기다리고 있었다. 물말림은 정말 졸업하기 힘들다. 아마 평생 졸업하지 못하는 과목일지도. 최근 2주 사이에 2개의 화분이나 물말림으로 죽일 뻔했다. 매일매일 내 식물장을 들여다보는 나지만, 정말 바쁘고 몸이 아파 소홀했던 2번이 있었다. 시댁으로 달려가느라 건너뛰었던 하루와 앓아누워 식물들을 모른 척하고 싶었던 하루. 딱 48시간 만에 두 개의 화분이 초록별로 떠날 뻔했다. 이렇게 물을 너무나도 좋아하는 식물은 컵에 꽂아 물이 부족하지 않게 키우고 있다. 중요한 것은 푹- 담그지 않는다. 아무리 많이 담가도 화분의 1/4이 잠기도록 한다. 날씨 상황에 따라 개체마다 다르지만 보통은 2-3일에 한 번은 물을 보충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오래된 물은 갈아주어야 한다. 정말이지, 생각보다 아름답지 않고 편리한 방법이 아니다. 그래도 깜빡한 것보다는 24시간 정도의 골든타임을 추가로 주기 때문에 물마름에 예민한 식물은 항시 물을 섭취할 수 있도록 모시고 있다.


물에 예민한 몇몇 개체들은 상황을 봐주며 물을 채워준다.



날이 요즘 참 좋다. 꽃 화분도 많이 보이고, 싱그러움을 가득 안고 있는 허브류 화분도 많이 보인다. 설렘을 안고 품은 당신의 화분에 조금의 도움이 되길 바라며 이만 글을 줄인다.







✓ 별 것 아니지만 알면 좋은 지식 몇 줄
수경재배는 물을 좋아하는 식물에게 적합한 방법이다.
또, 생각보다 이쁘지 않고 손이 많이 간다.
1/4만 잠기도록 물을 보충해 주기
오염된 물은 오히려 독이 되어 뿌리를 썩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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