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랑모단 Mar 13. 2024

물이 부족한 것이냐 물이 과한 것이냐 말을 해보거라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그 어딘가를 찾아 떠나는 여정

‘잎이 갈색으로 마르면 수분이 부족한 것’


  화원에서 곱게 분갈이를 마치고 들여온 애플민트가 날이 갈수록 시들시들해지더니, 한 장씩 바닥으로 잎을 떨구기 시작했다. 상큼하고 싱그러운 향기로 나를 즐겁게 해 주던 보드라운 털을 가진 귀여운 애플민트의 병마에 나는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벌레의 짓인가 싶어 샅샅이 찾아보았지만 나의 귀여운 애플민트를 괴롭히는 해충은 없었다. 나의 얕은 지식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판단하여 해박한 구(goo) 선생을 찾아가 보았다.


  원인 파악을 하기 위해 인터넷에 ‘잎이 시들해짐’을 검색했다. 여러 이유가 나왔고, 그중 많은 비중을 차지한 키워드는 ‘물부족’이었다. 그러나 이것도 여러 증상에 따라 원인이 다르다고 했다. 열심히 반나절 동안 찾아보니 아래와 같이 결론지을 수 있었다.

‘위쪽이 시들하면 물부족, 아래쪽이 시들하면 과습 또는 자연스러운 하엽’

  나의 애플민트를 바라보았다. 아래 잎도 시들한 것도 같았지만 위쪽 잎도 타들어가듯이 말라가고 있었다. 아차, 내가 안일했던 것이다. 허브류는 물을 좋아한다고 했는데 일주일에 1번은 부족했던 모양이다. 서둘러 물을 흠뻑 주었다. 시들해진 잎을 정리해주고 나니 다시 싱그러워진 기분이었다. 그렇게 하루이틀. 새 잎을 내며 힘을 내는 듯했다. 한 차례 고비를 넘긴 마음으로 뿌듯하게 지냈던 일주일. 지금, 그때의 나를 만날 수 있다면 그 물뿌리개를 던져버리라고 말하고 싶다.


나의 작은 위로가 되어주던 애플민트는 끝끝내 시들시들하더니 사망하셨다.



시름시름 앓다 간 애플민트




  뭐가 문제였을까? 눈치를 챈 사람은 알겠지만, 흙이 보슬보슬하게 말랐는지부터 물어봤을 듯하다. ‘흙은 다 말랐나요?’라던가 ‘뿌리 상태는 확인해 봤나요?’ 같은 부가적인 정보를 확인했을 것이다. 다양한 부분에서 힌트를 얻어야 하는지 몰랐던 나는 잎의 상태만 보고 진찰명을 내렸던 것이다. 당시에 슬픈 마음을 애써 달래며 화분을 들춰봤더니 질퍽하게 마르지 못한 흙이 가득한 화분 안을 볼 수 있었다. 그제야 마르지 않아 잔뜩 물러버린 뿌리를 볼 수 있었다. 이로써 괴롭지만 귀중한 힌트를 얻었다. 물이 부족한지는 잎 상태로만 판단하지 말 것과 다 안다고 자만하지 말 것. 아이고!









“일주일에 물 1번만 주면 돼요.”


  화원에선 물 관리에 대해서 참 쉽게 말한다. ‘일주일에 2번’이나 ‘한 달에 2-3번’과 같은 말을 ‘하루 세끼 먹으면 돼요.’처럼 말한다. 그리 어려운 문제가 아니라는데, 왜 이리 날 어렵게 하는지. 애플민트 이후로도 과습으로 여럿을 보냈다. 이별의 슬픔을 잊고자 큰맘 먹고 인터넷으로 주문했던 체리세이지, 로즈메리, 레몬타임들도 모두 전멸을 했다. 인터넷에서 말하는 '겉흙이 마르면 충분히 물을 주세요.'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도대체 흙이 마른다는 건 어느 정도로 말라야 한다는 걸까. 몇 번의 시행착오를 겪고 나서야 '겉흙이 말랐다'는 느낌을 알 수 있었는데, 화분에 흙이 있지만 공기처럼 느껴지는 때라는 것을 알았다. 좀 더 확실하게 설명해 보자면, 플라스틱 화분 기준으로 손에 들어보았을 때 무게가 휴대폰을 흔드는 것보다 가볍고 텅 빈 느낌이 든다. 그때가 인터넷에서 말하는 '충분히 흠뻑' 줘야 하는 때이다. 더 이상 흙이 바삭 말라도 걱정스럽지 않고, 식물이 괜찮다는 것을 드디어 알게 된 것이다. 이쯤 되니, 물을 주고 싶어도 참을 수 있는 인내심을 가질 수 있었다. 그렇게 과습을 피해 가던 어느 날, 목마름이 찾아왔다. 살인적인 더위로 재난 경보 문자가 매일 울리고, 기상청에서는 기록적인 폭염이라고 열심히 보도하던 18년도 여름날, 뜨거운 햇빛 아래에서 목말라하는 유칼립투스를 외면하고 외출했다.


‘아, 좀 말랐는데.. 잠깐 물 줄까?’


  집 밖을 나서면서도 물을 주지 않은 게 신경 쓰였을 정도였다. 목이 말라 허리를 휘청이던 유칼립투스는 집으로 돌아오니 완전히 생기를 잃어 그대로 생을 마감했다. 햇빛을 가득 받으며 새 잎과 가지를 잔뜩 내며 무서운 성장 속도를 보이던 때라 안타까움이 더 했다. 그 잠깐 1분 시간을 내어 줄 것을… 화분을 들어보니 날아갈 듯 가벼웠다. 내 귀찮음이, 찰나의 시기를 놓친 것이 영원히 기회를 잃게 만들었다.


  그야말로 과유불급.  물이 과해서도 죽고, 물이 메말라서도 죽은 식물이 안타까워 물관리만큼은 졸업해 보자며 방법이 없을지 재배방법에 대해서 알아보기 시작했다. 과해서도 안 되고 모자라지도 않아야 하는 물은 나에게만 고통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지금이나 당시나 가장 핫한 방법은 수경재배가 아닐까 한다. 물병에 푹 담가 키우는 수경재배는 예쁜 물병에 식물을 담아 키울 수 있어 이쁘기도 하고, 흙을 담지 않고 키울 수 있기 때문에 흙이 쏟아지는 것이 걱정되는 사람들이 선택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관리만 할 수 있다면 저면관수 방법을 추천해주고 싶다. 저면관수재배는 흙으로 심어진 화분을 바닥만 적셔두는 방법으로 내가 키우고 있는 식물의 절반은 이 방법으로 관리 중이다. 방법은 정말 간단하다.


첫 번째, 화분이 담길 수 있는 쟁반 같은 그릇을 준비한다.

두 번째, 물이 찰랑거릴 정도로 부어 화분이 살짝 잠기도록 한다.


  많은 시행착오를 하게 만든 저면관수법은 잘 활용만 한다면 조금의 수고를 덜게 만들어준다. 예리한 독자라면, 내가 모든 식물을 저면관수로 관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고, 수경재배나 반수경재배를 추천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수경/반수경재배가 가능한 식물은 물을 좋아하는 식물만 가능해서 많은 식물에 적용하기 어렵다. 저면관수법은 내가 키워본 식물 중에선, 싱고니움이나 스킨답서스, 몬스테라, 알로카시아 등등 대부분 관엽식물류와 고사리류, 고무나무 그리고 호야류들이 가능했다. 주의할 것은 모든 식물에게 일괄적으로 적용할 순 없다. 각자가 원하는 정도의 시기와 수위가 있어서 결국 하나하나 맞춤으로 관리해야 한다.








  저면관수를 시작하고 나선 죽이는 식물이 없게 되자, 물관리는 껌이라고 말 그대로 자신감이 하늘을 찔렀다. 그리곤 가장 키우기 어렵다는 아디안텀과 삼색고사리, 블랙벨벳 알로카시아, 핑크 싱고니움, 블루스타펀 등을 신나게 들였다. 이들은 물 주기가 제각각이다. 알로카시아 중에서도 블랙벨벳은 아주 천천히 물을 먹고, 싱고니움은 물을 아주 좋아한다. 반면에 아디안텀은 습한 것을 질색하면서도 공중습도가 높은 것을 좋아하는데, 블루스타펀은 아디안텀보다는 뿌리가 습한 것에 강하다. 이렇게나 특성이 다양한데 다 같이 쟁반에 두고 키웠으니 결과는 참혹했다. 블루스타펀과 알로카시아만 살아남았는데, 알로카시아는 뿌리를 거의 잃다 시 피했다.



푸미라와 스킨답서스는 입양 갔고, 핑크 싱고니움과 알로카시아들은 잘 크고 있다




  조금의 희망을 주자면, 내 작은 화원의 생존율은 놀라운 우상향 그래프를 그리는 중이다. 필자는 화원에서 식물을 5-10개 정도씩 구매하는 편인데 저면관수를 시작한 후 죽이는 식물이 현저히 줄었다. 첫 시도에서는 20퍼센트 정도의 생존율을 보였다. 앞서 말한, 아디안텀과 같은 고사리류의 처참한 실패였다. 그다음에 추가로 온 식물들은 40% 정도 살았고, 재작년에 이웃 주민으로부터 당근을 통해 구매한 것은 80% 정도 생존율을 보이고 있다. 서비스로 받은 루피넘이 약했는데 관리를 잘 못해 흙으로 돌려보냈고, 나머지는 잘 생존하고 있다. 최근 1년 동안 추가로 온 것들은 생존율 100%로 모두 잘 생존해 있다. 장족의 발전이다.




너무 이뻤던 삼색고사리




  만약 ‘나는 소질이 없는 사람이야’하고 그만두었다면 어땠을까? 이렇게 편한 반수경의 방법을 모르고, 100%의 생존율을 보지 못했을뿐더러 후에 기고하게 될 첫 번식의 기쁨도 몰랐을 것이다. 그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조금 더 노력했기 때문에 누릴 수 있었던 기쁨보다는 조금 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다. 조금 더 알고자 노력해 봤기 때문에 현상에 대해서 이해를 할 수 있었고, 나를 원망하는 것에 그치지 않을 수 있었다. 나를 질책하거나 식물이 까다로웠다고 탓하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식물이 잘 자라는 생육환경과 성장원리를 알고 이해하게 되었다.


  이것은 단순히 식물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단편적인 현상이라고 넘어갈 수 있는 일들은 사실 복합적이다. 그냥 일어난 일들은 없었다. 정말 운 좋게는 아무 이유 없이 사건이 일어날 때도 있었지만, 대게는 이유가 있었고 하나의 이유가 아니었다. 때문에 나는 나를 둘러싼 사건들을 입체적으로 보려고 많은 노력을 쏟는다.


  많은 사람들이 잎이 시들하다는 것을 보고 물부족일까를 생각한다. 우리는 보다 많은 것을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벼는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자란다는 말을 아는가? 이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벼를 포함한 모든 식물이 농부의 관심을 필요로 한다. 매일 살펴보고, 벌레는 생기지 않았는지 물이 부족하진 않은지, 흙이 제때 잘 건조되는지 세심히 살펴보고 최대한 많은 힌트를 얻어야 한다. 세심하게 보다 보면 식물이 당신에게 하는 말이 들릴 것이다. 잎만 보고 과습인지 판단할 수 있는 식덕은 아무도 없다. 나의 우상향 에피소드를 듣고 용기를 내보길 바란다. 아자!



✓ 별 것 아니지만 알면 좋은 지식 몇 줄

수경과 반수경은 잘 되는 식물이 있다. 그리고 생각보단 아릅답지 않다.
물은 과한 것보다는 부족한 게 좋고, 사경을 헤매기 직전에는 꼭 준다.
얼마나 자주 물을 줄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고, 어떤 것이 나와 어울릴지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전 03화 내 어린 날의 푸릇한 기억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