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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랑모단 Feb 27. 2024

정신 차려보니 내 손엔 너가 있었다

일단 우리 집으로 왔으니 잘 살아보자



"보타니컬"


언젠가부터 유행이 된 단어이다. 원래부터 식물을 좋아했던 나는 해외의 웅장한 식물 인테리어에 한창 빠져있었다. 식물이 가득 어우러져 초록빛이 가득하게 꾸민 싱그러움이 너무 좋았다. 자연스러운 식물이나 식물 모티프를 사용하여 인테리어를 디자인하는 스타일, 그런 걸 보타니컬 인테리어라고 했다. 갖가지의 크고 작은 잎들이 한데 어울려 멋들어지게 들어찬 방은 내 가슴을 설레게 했다.





남편과 내가 다른 의미로 경악한 보타니컬 인테리어




내가 가진 공간이라고는 4~5평 남짓한 서울의 자취방 하나. ‘보타니컬’을 담기에는 부족하고 열악한 공간이었다. 서울이라는 큰 도시 속에 홀로 정착을 시작한 시골 쥐의 신분으론 햇빛이 가득한 방은 꿈꿀 수 없었고, 식물의 생육환경에는 적절치 못한 곳이라 식물은 내가 품을 것이 못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내 핀터레스트 속에 마음에 드는 푸릇푸릇한 인테리어를 차곡차곡 쌓아 놓기만 했다.

그렇게 식물에 대한 짝사랑으로 눈물겨운 나날들을 지내던 도중, 이런 생각이 슥 스쳤다. 이렇게나 식물이 다양한데 내 환경에서 키울 수 있는 식물이 없나? 한탄스럽기가 그지없다.


그렇다고 굴할 내가 아니지.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눈만 뜨면 반음지에서 키울 수 있는 식물을 찾고 있었다. 내가 키울 수 있는 특별한 식물을 찾아내고야 말겠다는 생각에 사로 잡혔다.


스킨답서스, 아이비, 산세베리아, 테이블야자,...


아니다.. 저 식물들은 내가 찾는 식물이 아니다. 좀 더 이쁜 아이가 없을까? 정글스러움 가득 담긴 느낌을 원했다.









사람이 급하면 찬물 더운물 가리지 않는다는데, 키울 수 있는 식물이 있음에도 나는 성에 차지 않았다. 분명 내가 꿈에 그리던 아이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목적지도 모르는 도착을 위해서 검색하고 또 검색했다. 그러던 중 드디어 발견한 나의 운명적 데스티니.


그게 몬스테라였다. 아, 어쩜 이름도 몬스테라일까. 그 당시만 해도 키우는 사람이 몇 없었고, 블로그 글도 2-3개 겨우 찾을 때라 어떤 특성을 가졌는지 어떤 환경에서 잘 자라는지 또 종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도 전혀 몰랐다. 지금에야 몬스테라가 2개의 분류로 나뉘고 각각은 어쩌고 저쩌고 하지만, 그땐 그저 몬스테라였다.


어린잎일 때는 하트모양의 귀여운 잎이 나다가, 4~5번째 장부터 큰 잎이 나기 시작하면 그제야 조금씩 찢어진 잎을 보여준다고 했다. 모양이 변하는 잎이라니.. 세상에 무늬가 변하는 식물은 봤어도 모양이 변하는 식물은 처음 봤다. 그 길로 당장 양재 꽃 시장으로 달려갔던 2017년. 허탕이었다. 그 당시엔 상인들도 몬스테라가 뭔지도 잘 몰랐다.


그 후에 잊고 살다 우연 동네 화원에서 몬스테라를 발견했다. 찬찬히 살펴본 것은 아니고 길을 건너가려던 찰나에 찰칵하고 내 머릿속에 들어왔다. 명색이라고 하던가. 사람은 자신이 아는 것, 특히나 열망하는 것을 기가 막히게 잘 본다. 지금 생각하면 그 구석에 있는 그 자그마한 잎을 어떻게 보고 찾아내었는지. 얼마를 주었더라... 벌써 분갈이에 예쁜 화분까지 식재가 완료된 몬스테라는 꽤나 비싼 몸이었다. 지금 같으면 눈에 담지도 않았을 그 화분을 그때는 덜컥 카드부터 내밀었다. (요즘은 한적하고 큰 농원에서 이끼 가득한 플라스틱 화분에 심긴 것만 취급한다. 어째 쫌 식덕 같은가?)



몬스테라를 시작으로 들이기 시작한 식물들








그렇게 들여온 몬스테라가 대품이 되었습니다- 하고 해피 엔딩으로 이 글을 마치면 좋겠지만, 이제부터 긴장하시라. 잔혹동화가 시작될 예정이다. 미안하지만, 꿀팁만 모아둔 사전 같은 트키를 바랐다면 다른 글을 참고하길 바란다.


나는 식덕도 얼마나 많은 식물들을 학살(?)하고, 괴롭히는지 말해줄 것이다. 또한 수경 재배법, 휘뭍이, 삽목 등등 여러 재배법으로 갖은 고통을 선사하며 식물들을 키워나가는지 알려줄 참이다. (사실, 각종 재배법들은 실험에 가깝다..). 그리고 그로 인해 뼈저리게 느낀 인생 교훈을 조금 공유할 것이다.



좌측 잎에서 우측 신엽이 나는데 1년 반이 넘게 걸렸다. 사실이다.


식덕이라고 모든 식물을 잘 키울 것 같은가? 오산이다. 그 과정까지 가기 위해 희생양이 되어준 많은 식물들에게 애도할 준비를 하는 게 좋을 것이다.



이제 막 얼음에서 땡을 외친 몬스테라



몬스테라가 다시 마음을 풀지 않았더라면 글을 써본다는 것에 큰 죄책감이 있었겠다만, 다행히도 최근에 극적인 화해를 하였다. 아마도 이제야 제가 맘에 드는 환경이 되었 보다. 조금 더 항의할 수 있었겠지만 지금의 환경에서도 만족하고 새잎을 내어준 몬스테라에게 감사함을 전하며 두 무릎을 꿇고 드실 물을 따라드리러 가야겠다.




✓ 별 것 아니지만 알면 좋은 지식 몇 줄

처음 식물을 들일 때, 선물용이 아니라면, 멋진 화분에 식재는 하지 말자.
무거운 화분은 흙이 말랐는지를 가늠하기도 어렵고, 사실 좀 비싸다.
특히나 초보일수록 과습으로 식물을 죽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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