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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이 '정부'가 아니었다는 이들에게

23일간의 임정로드_Chap.7

by 모래의 남자
…본 정부는 원칙상 의존과 투기를 거절하고 자력과 자결로 만반의 범주로 하나, 모종 시기에 임하여 우방의 호의적 공급도 예기하는 바이다. 우리들의 소위 우방은 사적 친소나 지적 원근이나 혹은 정체의 다름이 아니고 구적 일본의 침략적 무력과 직접 충돌이 불가피한 모모국으로 상정하고 이미 적당한 연락과 기민한 교섭을 촉진하여 우리들의 기본 역량을 보충 호위하기 위해 노력하는 동시 원동 각계에서 호응하려고 하는 약소 민족과의 공동 진행을 촉진시키므로써 본 정부 대외 방침의 윤곽으로 한다.

특수적 직접 행동의 고무와 집단적 무력 전쟁의 전개와 민중 운동의 무장적 조직화 또는 장교 양성과 기술 교련, 무기의 저비 등 구체적 실시를 주안으로 하여 각반 군정을 최고 속도로 전체 역량을 집중 준비하여 인인개병의 실전 시기로 돌진케 한다. 이는 민족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경로가 오직 군사 행동에 있을 뿐이므로서이다.

재정 문제에 이르러서는 예년에 없는 최거액의 예산을 요하게 되었다. 기왕에 혹은 내채 혹은 외채 혹은 기타의 징발 등 모든 재정책을 시험하여 보았으나 일시 분란의 씨만 되었을 뿐이다. 항원한 재원이 없었던 것은 이미 명백한 경험이므로 비상시기를 앞에 두고 막대한 계획을 실행하려고 하는 본 정부에서는 평범 용상한 방법, 즉 국민 자신의 혈과 땀 중에서 재원을 기대한다. 그러기 위해 본년도부터는 각인 납세의 원칙을 더 한층 려행케 하여 본 정부의 재정수지상 정경 원칙을 삼으려고 생각한다.

이상 임무를 철저히 이행하고자 결사적인 일치 노력으로써 우리들의 근간으로 하고 성패이둔을 초탈한 희생적 혈성으로 일체 행동의 추기로 하여 차제를 기하여 진성갈력하여 국무에 공봉할 것을 국내외 동포에 선언한다.

大韓民國 十六年 一月 二十日(1935년 1월20일)
국무위원 김규식, 김철, 양기탁, 성주식, 송병조, 윤기섭, 조욱, 조소앙, 최동오

<대한민국 임시정부 공보 제56호>





기차가 역으로 들어서자 차창 밖으로 내리던 비는 잦아들었다. 서호(西湖)의 자욱한 물안개가 산책로를 감싸고 있을 무렵 항저우(杭州)에 도착했다. 항저우는 저장성을 대표하는 아름다운 도시로, 그 중심에 자리 잡은 서호는 흘러넘치는 낭만을 품은 곳이다.


호수 위 안개를 헤치며 유람선이 떠다니고 사람들은 연신 셔터를 눌러대며 낭만의 도시를 사진에 담는다. 잔잔한 호수를 바라보며 가슴을 펴고 습기 가득한 공기를 들이마시니 한결 여유가 느껴진다. 숨 가쁜 일정 속에 알게 모르게 긴장감이 쌓여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호수를 따라 한참을 걸었다. 그러다 길을 건너 골목으로 들어서니 상하이와 자싱에서 밀려나 몸을 피했던 임시정부의 그림자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조금 전 털어낸 긴장감이 다시금 마음에 내려앉는 게 느껴졌다.

첫 방문지는 임정의 항주 첫 기착지인 청태 제2여사(淸泰第二旅舍). 군영반점(群英飯店)이란 이름으로 오랜 기간 영업했고 현재는 한정주점(漢庭酒店)이란 간판을 달고 있다(중국에서 반점·주점은 중식당과 술집이 아니라 호텔을 의미한다).


삐걱 소리를 내는 나무문을 열고 들어서니 오랜 연식에도 깔끔한 관리가 엿보이는 실내가 눈에 들어온다. 옛날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중국식 객잔의 구조다. 사각형으로 이뤄진 2층 복도에는 객실이 줄줄이 붙어있고, 도넛의 가운데처럼 비어있는 1층 공간에선 왁자지껄하게 술을 마시거나 때로는 격투가 벌어지기도 했던.


오랜 세월이 지남에 따라 곳곳에 보수가 이뤄졌지만, 나무 기둥과 문틀에는 과거의 흔적이 남아있는 게 보였다. 저 방들 중 어딘가에 임정 사람들이 머물렀다 생각하면 눈길과 발길은 쉬이 옮겨지지 않는다.

한참을 둘러보다 호텔을 나왔다. 옆 블록으로 이동하자 임정 요인 가족들이 거주지로 사용했다는 오복리 2호 골목이 나타났다. 낮은 2층짜리 건물들로 이뤄진 낡은 주택가. 담벼락에는 ‘한국 독립운동 구지’라 새겨진, 중국 지방정부에서 만들어 놓은 대리석 문패가 세워져 있었다.


문을 두드리고 내부에 들어가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누군가의 거주지일 테고, 그 누군가는 높은 확률로 한국 독립운동 따위에 큰 관심 같은 건 없을 터였다. 결례를 무릅쓰고 양해를 구해 들어가 본다 한들 과거의 흔적을 발견할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하는 회의도 없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 하나 지나다니지 않는 그 조용한 골목에 한참을 서 있었다. 이따금씩 멀리서 들려오는 새 우짖는 소리 외에는 아무런 방해도 없이, 스산한 공기를 마시고 내쉬면서 100년 전 이곳의 모습을 담담하게 상상해 보는 시간으로 대신했다.

골목을 벗어나 10분 거리에 있는 호변촌 23호 임정 기념관 건물로 이동했다. 회색빛 2층 건물이 웅장하진 않아도 번듯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상하이에서처럼 항저우에서도 임정은 여러 곳을 옮겨 다녔는데 이곳이 대표적으로 남아있다. 항저우 지방정부가 중국 중앙정부 승인 아래 복원 사업을 벌여 2007년 개관했으며, 임정 유적지 중 유일하게 국가급 항전 시설로 지정된 곳이다.


상하이 청사와 비교해 규모가 확연히 크다 보니 내부 공간에도 여유가 있었다. 침실과 집무 공간의 넓이나 각종 집기들의 크기도 넉넉해 보였다. 전시장에는 항저우 임정 시절 사용된 각종 공보물들을 비롯해 독립신문 창간호, 임정 요인들의 사진과 광복군 신분증, 광복군 기관지, 독립공채 등이 진열돼 있다. 정부로서 내치와 외교 활동을 벌였음을 증명하는 자료들이다.

이곳 항저우의 민가에 세 들어 살던 이들을 두고 누군가는 정부가 아니었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정부란 화려한 청사나 군대 규모로만 증명되는 게 아니다. 이 골목에서 그들은 국민을 대표하는 해외 독립운동 정부로 기능했고, 옮겨 다니면서도 거점을 확보해 본토와의 연결성을 유지했다. 임시 헌법을 제정하고 의정원을 운영함으로써 정부 기능을 수행했다. 해외 각국에 대표자를 파견하고 위원부를 설치했으며 외교 문서를 주고받았다.


중앙경찰기구 경무국과 지방경찰·경위대 등을 통해 치안 기능을 일부 수행했고, 거류민단을 대상으로 한 법령과 조례도 만들었다. 백범을 비롯한 요인들이 중국 국민당 장제스(蔣介石)와 협상한 기록은 임정이 단순한 망명 단체가 아니라 외국 정부와 외교적 관계를 맺었던 주체였음을 증명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독립공채다. 임정은 독립운동 자금을 모으기 위해 1919년부터 채권을 발행했고, 연이율 5%로 독립 이후 상환을 약속했다. 광복 후 특별법이 제정돼 실제로 상환이 이뤄졌고, 지금까지도 북한 지역에 있을지 모를 공채 보유자를 기다리는 중이다.

임정이 다소 초라했다고 해서 국민·주권·영토가 부재했다고 단언할 수 없는 배경이다. 무엇보다 그들의 활동이 없었다면 1945년 해방 이후 대한민국이라는 국호와 체제 역시 존재하지 않았을 터다.


임정의 역사적·법적 존재를 부정하는 목소리는 1948년의 정부 수립을 건국이라 외치는 주장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국제법적 기준에 따른 국가 성립 요건을 적용하면 임정을 정부로 보기 어렵다는 논리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1919년부터 1948년까지의 주권과 정부 활동은 우리의 것이 아닌 게 되고, 그 시기의 반민족 행위도 역사의 책임에서 지워진다. 누가 왜 어떤 목적으로 그 같은 주장을 하게 되는지 추론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역사 왜곡은 언제나 정치적 목적에서 출발한다.

항저우를 떠나는 날 새벽, 불현듯 잠에서 깨어났다. 낡은 숙소의 창문 틈새로 스산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항저우 청사 어느 구석에 앉아 희망을 꿈꾸려 애썼던 그날의 사람들을 상상했다. 종이 한 장과 잉크병, 소박한 식사와 동트지 않는 밤, 매서운 비바람과의 싸움. 버려진 건물 벽 밑의 페인트 벗겨진 문과 축축한 벽돌, 낮은 슬레이트 지붕 아래에서 지속되는 일상.


그들의 일상은 아주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투쟁이었고 서로를 지켜야 할 동지적 연대였으며, 조국이 아닌 곳으로 떠나지 않기 위한 매일이었다. 지금 내가 머물고 있는 이곳이, 그들이 견디고자 했던 그 시간이 조금이라도 되살아나는 장소이기를 바랐다.


창문 밖에서 들려오는 발걸음 소리, 서호의 물결이 바람에 스치는 소리, 그리고 뒷골목에서 들려오는 듯 한 속삭임이 이어졌다. ‘우리는 떠날까 아니면 여기에 머무를까’ 그 반복되는 울림 속에서 나는 천천히 침전되는 마음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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