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아무 말들
그리고 아무 말들
안녕하십니까.
지난 8월부터 <임시정부, 그들의 시간을 걷다>라는 제목으로 역사여행 에세이를 연재해오고 있는 모래의 남자입니다.
한낮에 나가면 살갗이 따갑던 여름에 시작한 연재가, 이젠 손끝이 시린 늦가을까지 흘러왔네요.
반환점을 도는 시점에 조금만 쉬었다 가면 안 되나 싶었는데, 어느새 그 ‘조금’이 찾아왔습니다. 아마도 완결 즈음엔 ‘드디어 끝났다’와 ‘이제 뭐 쓰지’가 동시에 밀려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주제가 주제다 보니 그간 글들이 좀 딱딱했죠. 사실 제가 선비 기질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먹물 냄새만 풍겨대는 그런 고루한 사람은 단연코 아니거든요. 오랜 기자 생활 때문에 메마른 문체로 생계를 이어왔을 뿐, 제 안엔 언제나 똘끼 충만한 하이드가 꿈틀대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여러 작가님들의 이런저런 글들을 보면서 전율과 감탄을 느끼며, 수시로 헛소리에 가까운 댓글을 달아대는 얄팍한 재미에 중독된 채로 브런치에 서식할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정말 여러 모로 많이 배우고 있고요. 더 병맛 가득한 댓글을 다는 데, 아니 좋은 제 글을 쓰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하여 이 거대한 대장정의 다음 원고를 손꼽아 기다리시는 극소수 독자분들을 위해, 동시에 저에 대한 다각적인 오해를 일거에 불식시키고자 하는 차원에서 어깨 힘을 빼고 자잘하고 소소하며 하나마나한 이야깃거리를 늘어놓을까 합니다.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시는 중국 여행.
맞습니다. 사실 난이도가 좀 있어요.
영어가 거의 통하지 않는 환경,
상대방이 알아듣든 말든 자국어만 우다다다 쏟아내는 현지인들,
사실상 무용지물인 구글지도까지.
대부분의 분들이 공항 외에는 짐 검사나 몸수색을 경험하지 못했을 테지만, 중국에서는 기차와 지하철을 탈적마다 통과의례가 됩니다. 매번 공항 같은 기분인데 비행기는 못 타요. 그리고 공공장소에서의 무지막지한 새치기와 엄청난 소음 및 악취는 여행자의 인류애를 시시각각 시험대에 오르게 만듭니다.
이번 여행에서는 11개 도시를 거치면서 10차례 기차를 탔습니다. 110 + 80 + 70 + 280 + 120 + 900 + 700 + 500 + 170 + 900 = 총 3830km 가량을 이동했어요.
중국의 고속철 ‘까오티에(高铁)’는 우리의 KTX만큼이나 상당히 빠르고 쾌적합니다. 하지만 제가 탔던 완행열차들은 무궁화호가 그리울 만큼 열악하죠. 중국인들이 차 마시는 걸 좋아해서 열차마다 뜨거운 물을 비치해 두는데, 이사람들이 차만 마시는 게 아니라 컵라면을 상당히 많이 먹습니다. 먹는 것까진 좋은데, 어떤 사람들은 먹고 남은 그릇을 통로 바닥에 그냥 내려두곤 해요. 어느 순간 열차가 흔들리고 그릇이 넘어지기라도 하면...(불행히도 지금 식전인 분들께는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물론 단점만 있는 건 아닙니다.
어디서 무엇을 하든 결제 페이먼트는 정말 편합니다. 한국에서 알리페이 앱에 신용카드 하나만 등록해 가면 그야말로 무적에 가깝습니다. 결제와 송금은 물론이고 버스와 지하철, 택시까지 터치 한 번으로 탈 수 있습니다. 길거리에서 동냥하는 분들에게 적선도 가능합니다. 위조지폐의 범람이 초래한 테크놀로지의 초고속 발전이 아닐 수 없겠습니다.
물가가 여전히 그리고 대체로 저렴한 것도 장점일 수 있겠네요.
대도시 중심부의 글로벌 호텔 체인 정도가 아니라면 1박 기준 10만 원 이하, 심지어 5만 원 이하에서도 컨디션이 꽤나 괜찮은 숙소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띠디추싱이라 부르는 공유택시는 한국 택시요금의 반값과 반의 반값 사이 어딘가 수준이고요. 음식 또한 휘황찬란한 고급 식당이 아닌 이상 한국보다 훨씬 저렴하며, 특히 과일과 채소 같은 1차 생산물들의 가격은 뭐 말할 것도 없습니다.
사실 저는 굶어 죽지 않을 정도의 중국어를 구사할 수 있기에 심각한 불편함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중국도 조금씩 변화하고 있고, 특히 도시의 젊은 세대 중에는 영어 구사가 가능한 경우가 아예 없진 않아요.
그리고 뉴스에서 보는 것과 달리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인식도 별로 나쁘지 않습니다. K-컬처의 위력 때문인지 오히려 신기해하고 반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행 자체를 쉽게 포기하진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믿기지 않겠지만, 치안만큼은 놀랄 정도로 좋습니다. 어딜 가나 공안들이 발에 채일만큼 많거든요.
심지어 클럽에 가도 총을 휴대한 공안이 구석에 앉아 졸고 있습니다. 덕분에 유럽에 넘치는 악명 높은 소매치기도 거의 없어요. 아주 밤늦은 시각에 후미진 골목을 돌아다니는 것만 아니라면 치안 걱정은 그리 않으셔도 됩니다. 사실 같은 환경에서는 한국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결론적으로,
그리 멀리 떠나지 않으면서 인생에서 전무했던 경험을 원한다면 중국도 나쁘지 않습니다. ‘아니 이게 맞나?’ 싶은 경험들이 도처에 매복하고 있거든요. 문제는 그게 불쾌함과 신기함 그 어딘가를 묘하게 줄타기한다는 사실, 그리고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좀처럼 적응이 쉽지 않다는 것이지만요.
난데없이 본 주제로 돌아오자면,
현재까지 상하이-자싱-항저우-진강-난징 편이 마무리됐습니다. 앞으로 창사-광저우-류저우-구이린-치장-충칭의 이야기가 이어지게 됩니다. 임시정부의 파란만장하고 눈물겨운 시기가 본격적으로 펼쳐질 예정이에요. 많은 관심 같은 건 당연히 없으실 테니 적당히 시간 나면 흘깃 넘겨봐 주시길 바랍니다.(저로서는 전혀 아주 조금도 기대하지 않지만, 혹시 또 모르니까요.)
정말 오랜만에, 술자리 친구에게 필터링 없이 떠들어대듯 이렇게 글을 써 내려가니 마음이 한결 편해집니다. 머리 아픈 퇴고 따윈 이번만큼은 하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그럴 분은 없을 것이라 사료되지만, 혹시라도 중국 여행에 대해 그리고 저의 임정로드에 대해 궁금하신 점이 있다면 망설임 없이 댓글로 부탁드립니다. 1인당 최대 10개까지 무료로 답변해 드립니다.
그 이상은... 협의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