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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even Lim Apr 28. 2020

“기분 좋은 한 끼를 먹게 해 주지!”

<화려한 식탁> 만족스러운 식사를 원한다면

   코로나19로 집에서 근무하는 날이 많아지면서 아내에게 새로 생긴 큰 걱정은 ‘오늘은 뭘 먹지?’ 였습니다. 그저 끼니를 때우는 게 아니라, 더욱 맛있고 기분 좋은 느낌이 드는 시간이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겠지요. 음식을 준비해 먹는 게 쉬운 일이 아니란 걸 새삼 깨달았습니다. 정성이 필요하지만 몹시 어렵진 않고, 담은 마음만큼 따뜻한 기운을 느낄 수 있는 음식. 제 아내도 아주 잘하는 ‘커리’입니다. 오늘 다루려는 <화려한 식탁> 역시 커리를 소재로 한 요리만화입니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커리 수업을 쌓은 코엔지 마키토. 어린 시절 은인인 소네자키 소이치로가 도쿄에 세운 커리전문점을 찾아오지만 가게는 망하기 직전의 상태입니다. 홀로 가게에 남은 소이치로의 딸 유이와 함께 가게를 재건시키기로 뜻을 모읍니다. 하지만 인도 커리를 일본인들의 입맛에 맞추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현대인의 생활에 맞춰 열량도 고려해야 합니다. 마키토는 이 같은 여러 문제점을 이겨내며 가게를 재건해 나가는 한편, 만나는 이들에게 정성이 담긴 커리를 제공함으로써 닫혔던 마음 문을 열어냅니다.     


   제가 대학생이던 2002년 1권이 발행됐고 마지막 49권을 출간한 게 2013년이니, 무려 11년 동안이나 이 만화가 이어졌네요. 연재가 길어지면서 <화려한 식탁>은 ‘가게 재건 프로젝트’를 지나 ‘에디블 파이터’라는 본격적인 요리 대결 만화로 바뀝니다. 그러면서 커리뿐 아니라, 수많은 음식과 요리 명인들이 등장해 더 ‘화려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또 격투 만화나 19금 같은 장면들도 나오지요.      


   솔직히 저는 마키토와 유이 콤비가 보여준 가게 재건 스토리 부분의 청량함이 후반부 이것저것 갖다 붙인 잡스러움에 훼손됐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연재를 마친 작가의 말을 읽고 보니 묘하게 끌립니다. ‘뭐 그럴 수 있겠다’ 싶기도 합니다.^^


   “커리에는 뭐든 괜찮거든요. 향신료만 확실히 사용하고 있다면 국물이 없어도, 노란색이 아니어도, 재료로 무엇을 쓰든 ‘이게 아니면 커리가 아냐!’라는 건 없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커리 만화도 뭐든 괜찮지 않을까요?”      


   결코 어렵지 않고 특별한 비법이 필요 없는 요리지만, 바로 그 요리로 먹는 사람에게 따뜻한 온기와 감동을 주는 게 커리라는 걸 <화려한 식탁>을 통해 느낄 수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친구들과 밖에서 뛰어놀다 들어온 저녁 어머니께서 해 주셨던 채소 커리, 계속되는 업무로 점심때를 놓친 오후 아내가 만들어준 돈까스 커리는 정말 따뜻했고 가슴을 녹여주었습니다. 굳이 ‘아X꼬’ 같은 커리 음식점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말입니다.


   이처럼 커리의 매력을 제대로 느끼게 해주는 만화임이 분명합니다. 덤으로 수백 종류의 커리 레시피도 얻게 되고요. (제가 만화책에 있는 레시피 대로 직접 만들어본 적은 없어서 장담은 못 합니다.^^)     


   “기분 좋은 한 끼를 먹게 해 주지!”

   커리 요리에 나서며 마키토가 하는 이 대사는 음식을 만드는 이의 마음가짐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전해 줍니다. “특급 요리사의 실력을 보여주지”나 “비싼 재료의 격을 느끼게 해 주지”가 아닙니다. 상대에게 만족감을 주겠다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법이지요. 사실 마키토는 변태에 호색한 이미지가 강한 캐릭터지만, 요리 앞에서는 누구보다 진지하고 먹는 이의 마음을 배려하는 인물입니다. 그렇기에 그가 차린 커리가 특히 고객의 입과 마음에 감동을 주지 않았을까 생각 듭니다.     


   팬데믹이 언제 종료될지 확신 못하지만 새날과 새달을 맞을 날을 기대합니다. 그날을 기다리며, 뜨겁고 걸쭉한 국물이 함께하는 커리의 화려함 속에서 원기회복을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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