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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even Lim Oct 30. 2020

“가게를 찾는 손님들에게 즐거움을 드리고 싶거든요”

<야왕> 호스트 클럽 No.1으로부터 고객가치 추구를 배우다!

   2000년대 초반, 대학 졸업 후 제 첫 직장은 신문사였습니다. 1년 정도 기자 생활을 하고(글을 쓰며 돌이켜보니 완전 초보, 수습 수준이었겠네요!^^) 지금 회사에 들어왔지요. 첫 직업이 기자였던 게 인연이었는지 홍보팀으로 이동, 기자분들을 상대하는 업무를 하게 된 지도 벌써 10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약 20년 새 세상이 참 많이 변했고 이 바닥의 문화도 달라졌습니다. 일상이라 여길 정도로 꽤 자주였던 2, 3차는 이제 ‘미리 작정하고 나서는 경우가 아니면’ 거의 없을 수준으로 줄었고, 끝장을 봐야 했던 ‘접대’도 보다 온전(?)해졌습니다. 술 잘 마시고 네트웍이 풍부한 것만큼, 전략적으로 컨텐츠를 다루는 능력이 ‘쟁이’로서의 경쟁력을 높여주는 사회가 됐습니다. 정말 딴 세상입니다.     


   올빼미처럼 밤에도 눈에 불을 켜고 움직여야 했던 그 시절, ‘밤 문화’에 대해서도 숙맥처럼 모르면 곤란했습니다. 이때 그 깊숙한(?) 세계를 알려주는 작품이 있었으니, 바로 <야왕>이라는 일본만화입니다. 번화가의 밤을 이해하는 것과 더불어, 호스트 직업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갖게 됐던 작품이기도 합니다(만화는 만화일뿐 따라 하지 말자!).     


   홋카이도에서 폭주족으로 지내다 도쿄로 상경한 마토바 료스케. 이곳에 오면 뭐라도 새로운 인생의 문이 열리는 줄 알았지만, 돈도 능력도 없는 그에겐 막막하기만 합니다. 그러다 ‘도시 꼭대기에서 거리를 내다보기라도 하겠다’는 심정으로 들어간 고급호텔에서 세계적인 디자이너 카노 레미를 만나게 됩니다. 그녀에게 한눈에 반한 료스케, 당시 레미와 함께했던 호스트클럽의 남자가 일하는 신주쿠 가부키쵸의 ‘로미오’에서 호스트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합니다. 자신만의 방법으로 로미오를 찾는 사연 많은 여성들, 호스트클럽 주변에서 만난 여러 인물들을 돕고 도우며 ‘야왕’을 향해가는 료스케의 발걸음들이 스물아홉 권의 책 속에 펼쳐집니다.     


   이 책을 다룰지 말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습니다. 쓰면 쓸수록 과거의 어느 순간 재미있게 읽었던 만화책들은 자꾸 떠올랐고, 그들 모두를 글로 담아내기엔 제 역량과 노력이 부족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호스트바, 고급 클럽, 증기탕 등 풍속업체들 이야기가 가득한 성인만화를 기록하는 게 과연 옳은가 싶었던 것이죠. 게다가 료스케를 비롯한 이 업계 사람들을 엄청 미화하고 있어서 독자의 정서를 해치지 않을까 싶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일단 제 독자 자체가 원체 적다 보니 이 만화로 심각하게 나쁜 영향을 받을 사람이 없다고 여겼습니다^^) 무척 인상 깊게 읽은 책이 분명하고요. 문득 만화를 일반 책보다 하위로 여기는 것처럼, 특정 직업(과 그 일에 종사하는 사람)의 귀천을 제가 미리 정해놓은 모순에 빠져있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손이 움직이는 대로 그저 쓰기로 했습니다.     


   인생은 우연으로 인해 바뀝니다. 도쿄에 올라온 료스케가 그날 비에 온몸이 젖지 않았더라면, 그 호텔에 올라가지 않았더라면, 카노 레미가 거들떠보지도 않았더라면, 그때 레미 옆에 있던 사람이 호스트클럽 ‘로미오’의 에이스가 아니었다면, 견습 마지막날 레미가 찾아오지 않았더라면, 슈 선배와 타카하시 같은 친구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이 많은 ‘만약에’ 중 하나라도 어긋났다면 료스케가 호스트가 되는 것은 물론, 로미오 No.1이 되거나 야왕을 꿈꾸는 일 따윈 제대로 시작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때 마침 우연히 암 판정을 받은 레미가 풋내기 료스케를 바라봤고, ‘그녀를 다시 보고 싶다’는 일념으로 료스케는 호스트의 길에 발을 들여놓았습니다. 무척 허황된 것 같은 우연이지만, 사실 우리 인생이 이 같은 우연의 연속 아니었던가요? 


   제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수기가 아닌 워드 등으로 입사원서를 작성했더라면 신문사 국장의 눈에 띄지 못했을 겁니다. <취업뽀개기> 카페에서 ‘서류합격 메일이 휴지통에 있을 수도 있다’는 글을 보지 못했더라면 지금 다니는 회사가 달랐겠지요. 2008년 여름 홍보팀원을 뽑는 사내공모가 없었더라면, 이전 조직 팀장님께서 규정을 앞세워 공모 지원을 막으셨다면 홍보팀원인 저는 존재하지 않았을 겁니다. 올초 대충 적어 올린 브런치 작가글이 통과했다면 이렇게 만화책을 다루는 글도 없었겠지요! 우연처럼 다가온 인연 속의 선택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습니다. 료스케가 레미를 알게 되고, 그를 돕는 많은 사람들을 만난 건 분명 우연을 가장한 인연이었음이 분명합니다. 


   료스케의 장점은 상대의 입장에서 아픔을 이해하고, 이를 위로해주기 위해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는 것입니다. 회사에서 말하는 용어로 바꿔보면 ‘자신의 R&C를 최대한 활용해 고객의 Pain point를 해결해주는 Biz Model을 개발했다’고 할 수 있을까요? 고객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 힘을 다해 로크론 트위스트를 추고, 증기탕 여성의 등을 밀어줍니다. 상대의 마음을 풀어주려 호스트의 생명과도 같은 얼굴에 상처 나는 행동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고객가치 추구’는 경영의 기본이 되는 것이지만 말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일단 내가 살고 봐야 하니 이윤도 따져야 하고, 경쟁자의 동태도 살펴봐야 합니다. 그것 말고도 생각해야 할 것이 산더미처럼 많습니다. 하지만, 다양한 주변 요소를 생각하다간 가장 중요한 고객은 멀찍이 밀어두는 경우가 생기게 됩니다. 최근 기업마다 ‘고객가치’를 부르짖고 있는 것은 어찌 보면 현재 기업 경영에 고객가치가 빠져있음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료스케는 기본 중의 기본을 아는 인물이었습니다. 비록 초기엔 정통성이 떨어졌지만, 누구로부터 배워지지 않는 ‘기업가 정신’을 타고난 인물이었다고 할까요? 그렇기에 성장과 함께 근육을 단단히 하고, 가부키쵸의 야왕이 되려는 원대한 목표를 향해 끝까지 정진해 나갈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제 고객은 누구일까요? 처리해야 할 여러 현안 Issue로 인해 제 고객의 Pain point가 뭔지 잊고 있는 건 아닐까요? 먼저 생각하고 바라봐야 할 것을 놓치지 말아야겠습니다. 그 진실함을 담아 당신을 맞이하고 싶습니다. 


   “줄리엣, 로미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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