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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서울,서울브루어리

당신의 서울을 마시다

by 고첼


당신의 서울을 마시다.



상대성이론을 철저하게 따르는 도시, 서울


비어스픽의 첫 번째 다큐멘터리 촬영을 하기 위해서 합정동에 위치한 서울브루어리를 아침 일찍 방문 했다.

아침 햇볕이 좋아 되려 야속함이 짙어지는 가을의 끝자락, 11월을 시작하는 첫 날에 서울브루어리를 찾았다.

약 1년 전, 합정동의 오래 된 주택가 언저리에 서울브루어리가 수줍게 오픈을 했다.


내가 ‘수줍게’라는 표현을 쓴 것은, 딱히 문학적인 미사여구를 쓰려는 의도는 아니다.


대한민국의 수도이며 유일한 특별시 이자, 문화와 산업의 중심인 ‘서울’이란 타이틀을 달고 맥주 시장에 등판했을 땐, 아마도 대중들은 대한민국 최고 수준의 양조 시설이나 인테리어를 기대 했을지 모른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그리고 그런 높은 수준을 갖추기 위해서 대규모 투자를 받거나, 혹은 상당한 자본력을 가진 누군가의 비즈니스가 아닐까 생각했다.


합정역 출구를 나와 골목길을 지나서 이곳에 멈춰 서기 전까지는 말이다.


내 예상과 달리, 마주한 서울브루어리의 첫 인상은 ‘서울’이란 타이틀을 사용하기엔 다소 소박하고 겸손했다. 그래서 떠들썩하지 않고 수줍이 피어 있다는 말은 결코 문학적 표현이 아니다.


2018년 현재, 내게 있어 ‘서울’이란 단어에 가장 먼저 연상되는 이미지는 합정역 출구 밖으로 나온 모습이었다. 주상복합 고층빌딩 숲으로 둘러 쌓여 있고 지하철 2호선과 6호선이 만나기 때문에 언제나 사람이 많고 분주하며 복잡한 모습.


그런 합정역에서 7번 출구로 나와, 서울브루어리로 향하는 길을 따라 들어가다 보면, 서울의 별천지를 등에 지고 과거로 되감는 기분이 든다.


45년의 긴 역사를 가진 합정마트를 지나, 지어진지 족히 30년은 다 됐을 것 같은 빨간 벽돌 빌라촌 옆을 따라 걸으면, 내가 나온 출구가 지하철 역인지, 시간 열차인지 헷갈릴 정도로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렇게 서울브루어리는 현재와 과거가 공존하는 서울의 시공간에 걸쳐 있는 느낌이 든다.


일상 생활에서는 깨닫지 못하며 산다. 서울의 시간은 지역과 거리마다 상대적으로 흐른다는 것을 말이다.


합정역 7번출구의 겉과 안.
C0069 0000002686ms.png 굴뚝.. 서울에서 보기 힘든 굴뚝.

기억이 추억으로 머무는 향기가 가득한 공간.


문을 열고 들어 서니,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시각적 정보가 아니라 후각이었다. 짙은 듯 은은한 홉의 향. 만약에 누군가 처음 방문하는 맥주 양조장이 서울브루어리라면 홉 내음이 양조장에서 전형적으로 나는 냄새라는 선입견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이전에 브루어리 몇 곳을 방문해 봤기 때문에, 이렇게 홉향이 브루어리 전체를 가득 메우는 것은 매우 특이한 일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대부분의 맥주는 몰트(맥아)가 다른 재료들 보다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보리를 끓인 향, 곡물의 구수한 엿기름 냄새가 지배적이다. 그래서 이렇게 맥아 냄새 보다 홉의 향이 진동하는 브루어리는 그만큼 맥주에 들어가는 홉의 양이 많거나 홉을 메인으로 사용하는 맥주 스타일을 주로 양조한다는 반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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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그럽고 화사한 홉향이 감도는 공간. 추억이 된다. 싱그럽고 화사한 홉의 향이 감도는 공간.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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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각은 시간을 잡아두고 냄새는 추억을 소환시킨다.


유년 시절, 우리 친구들의 집은 독서실이었으며 PC방이었고, 만화방이었다. 우리는 용도에 맞는 녀석들의 집을 돌아가며 놀았다. 그렇게 여러 친구들의 집에서 놀다 보면 집집마다 집에서 나는 냄새가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십 수년이 지났다. 당시에 함께 놀던 친구 녀석을 오래간만에 만나면 반가운 마음에 포옹을 한다. 그러면 이내 녀석의 몸에 베어 있던 냄새 분자 몇 방울이 내 콧속 안으로 빨려 들어 온다. 그 순간, 오랫동안 먼지 쌓였던 추억이 선명하게 되살아 난다. 그 집안의 온도, 색감, 무엇을 하고 놀았고 어떤 라면을 먹었는지... 마치 어제 일처럼 기억이 되 차오른다.


냄새는 추억을 되살리는 강력한 촉매제다.


마찬가지로 홉의 향을 처음 맡아보는 누군가에게 이곳의 향기는 서울브루어리 고유의 냄새로 인식 될 것이다. 그리고 추억하게 만들 것이다.


브루어리의 냄새라기 보단, ‘서울’브루어리 고유의 향기로 기억 될 수도 있다. 그렇게 사람들에게 독특한 ‘서울의 냄새와 추억’ 하나를 더 묻힐 듯 하다.


기본 안주로 마른 멸치에 땅콩을 내어 드립니다.


서울의 모습은 무엇일까? 몇 개든 좋으니 한 마디로 서울을 정의 할 수 있을까? 서울은 변화하는 유기체이다. 시간에 따라 성장과 퇴화를 반복하고 지역에 따라 표정이 다르다.


대한민국을 인간이라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서울은 얼굴이다. 그 중에 강남구는 눈이 될까? 왼쪽 눈은 청담동이고 오른쪽 눈썹은 대치동이라 치자. 용산구는 입이 되고 윗니 두개는 이태원동 아랫니 두개는 한남동이라 쳐야 하나? 합정동은 왼쪽 귓 볼 정도 되겠다.


의미가 없다. 그렇게 하나 하나 떼어 의미를 찾고 모습을 정의하는 것은 얼굴 전체에서 풍겨지는 인상을 감지할 수 없다. 서울도 마찬가지다 왼쪽 눈 청담동만을 바라 보는 사람은 백 번을 설명해도 아랫니 밖에 못 보는 한남동을 이해 할 수 없다. 그 모습 모습이 모여 결국 우리에게 서울이 되는 것이다.


결국, 내가 틀렸다. 서울브루어리라는 이름 때문에 그 안에서 ‘서울’의 퍼즐 조각 하나를 떼어 내겠다는 생각이 어리석었다. 서울은 1천만 서울 시민이 만들기도 하지만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만드는 특별시이다. 다시 말해서, 누구나 서울을 만들고 서울로 이루어져 있다. 같은 맥락으로 서울브루어리를 만드는 것은 그곳을 찾는 손님들이다. 서울브루어리의 대표 이수용씨와 인터뷰에서 그는 이런 말을 했다.


“저희는 손님들이 오시면 기본 안주로 마른 멸치와 땅콩을 제공합니다. 그런데 가끔 맥덕분들이 오셔서 한마디 조언을 내 놓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수제맥주에는 그런 향이 강하고 비릿한 마른 안주를 내면 맥주 맛을 해친다는 이유에서 조언을 해주십니다. 물론 귀담아 들을 옳은 이야기지만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누군가는 이 기본 안주가 그 어떤 안주 보다 저희 맥주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 할 수 도 있고 정겹게 느낄 수도 있지요. 선택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저는 단지 다양한 손님들에게 선택권을 드리는 것 뿐입니다. 자신의 기호에 맞지 않으면 드시지 않아도 얼마든지 괜찮습니다.

비슷한 예로, 저희 의자를 보면 조금 높고 딱딱해서 불편하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그러면 저는 서서 마시는 것도 우리 펍을 즐기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그 누구도 서서 맥주를 마시지 말라고 이야기 하지 않아요. 서울브루어리는 고객분들이 만들어 주시는 거니까요. 저희는 그저 판만 깔아 드릴 뿐입니다.”



서울브루어리 이수용 대표


나는 그의 말을 들었을 때, 큰 울림이 있었다. 그가 내어 놓는 기본 안주가 바로 서울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 천만 가지의 모습이 서울에 존재한다. 지역에 따라 비슷한 특징은 있을지 언정, 그 모든 다름이 공존하는 곳이 서울이다. 이처럼 우리가 바라보고 생활하는 서울은 정형화 된 무엇이 아니라, 다 함께 만들어가는 도시다.


서울브루어리의 이수용 대표는 어떤 획일화되고 전형적인 모습으로 서울브루어리를 만들고 싶지 않다고 한다. 그런 것은 애초에 가능하지도 않다고 말한다. 서울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서울을 만드는 것처럼 자신의 브루어리도 고객이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겸허히 말한다. 그래서 자신은 합정점과 똑같은 기본 안주를 한남점에도 내어 놓는다고 한다. 싫으면 안 먹으면 그만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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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up to you <멸치, 땅콩, 고추장 그리고 수제맥주. 우리는 내어 드릴 뿐, 선택은 당신의 목.>

마무리 하며,


서울브루어리 다큐멘터리를 기획하는 순간부터, 나는 서울브루어리를 ‘서울’이란 주제로 칼럼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서울’이란 단어를 사용하는 이상 대한민국을 넘어서 세계를 대표해야 한다는 어떤 국뽕(?) 비슷한 강박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무게감이 필요한 단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수용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왜 우리는 무엇이든 정의하려 할까? 우리는 어떻게든 매사에 정답을 찾아 끼워 맞춰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 잡혀있는 것 같다.


그렇기에 서울브루어리와 같이 유연한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만든 공간과 음식 그리고 맥주를 마셔야 한다. 단순히 맥주와 음식 맛의 수준을 따지고 인테리어의 완성도를 평가하는 것은 전혀 힙하지 못한 마인드다.


서울브루어리는 단순히 브루펍(맥주 양조와 판매를 동시에 하는 공간) 이상의 철학적 공간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서울의 모습을 맥주를 빚으며 디자인하고 보여준다. 이런 디자인 철학이 가득한 공간은 서울에 몇 없다.


때문에 다양한 표정의 서울을 보여 줄 수 있도록 서울 외에 지역과 더 나아가 해외에서도 서울브루어리 직영점이 오픈하는 날을 기대해 본다.


서울브루어리 합정점 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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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서울의 모습이랄까?


#서울브루어리 #비어스픽 #고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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