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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묘 힙스터

동묘가라지 리뷰

by 고첼

이른 저녁 7시 28분.

이제 막,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거나, 저녁 약속으로 맥주 한 잔 마시기 딱 알맞은 시간.


나도 그 시간에 어울리는 기분 좋은 만남을 갖기 위해 동묘로 향했다.

응? 동묘로 향했다고? 동묘에 뭐가 있는데?

맞다. 동묘는 젊은 사람들이 모임을 갖기에 적절하지 못 한 곳이었다. 지금까지는 말이다. 허나 지금 동묘역 6번 출구에서 나와 안쪽 골목으로 이리저리 들어가면 말도 안 되는 곳에 말도 안 되는 가게가 있다.


이름하야 동묘가라지(Garage;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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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말도 안되는 인쇄 골목에 귀퉁이에 시크한 펍이 도도하리 멈춰서있다.

동묘가라지; 놀이동산의 재미가 있는 펍


동묘가라지는 처음부터 재밌다. 처음부터라는 뜻은 동묘역 6번 출구에서 나와서부터 '차고'에 도착하기까지 라는 의미이다. 동묘역 6번 출구에 나오면 '힙함'과는 사돈의 팔촌보다도 먼 느낌의 가게들이 즐비하다.


심지어 이 지역은 굉장히 음산하다. 분명히 시간은 저녁 7시가 조금 넘은 시간인데, 이곳의 기운은 새벽 4시나 진배없다.


'이런 곳으로 저녁 술자리 모임 장소를 정한 녀석의 인생 마침표를 어떤 연장으로 찍어야 할까' 하는 깊은 고민에 빠지게 할 만큼 주변에 있는 거라곤 인쇄소와 작은 공장들만이 줄지어 멈춰있다.


그래서일까? 골목의 기운이 굉장히 날카롭고 음산하다. 괜스레 긴장되고 저 골목 귀퉁이를 돌면 분명히 나를 놀라 자빠트릴 무언가가 있을 것만 같다. 한국 범죄영화를 너무 많이 본 탓일까, 봉준호 감독의 상상력이 빙의되듯 손에 땀을 쥔다.


긴장도 잠시, '말도 안 돼, 이런 곳에 펍이 있다고?'를 속으로 약 5회 정도 되새김질하면 어느새 세련된 조명이 이곳은 치안 강국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어찌나 반가운지 놀이동산 귀신의 집 끝자락에서 출구를 발견한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이곳을 찾는 손님들은 펍에 도착하기 위해서 분명 이런 재미를 발견할 것이다. 마치 숨겨진 보물을 찾듯 한 손엔 스마트폰 맵(보물지도)을 가지고 모험을 떠나는 탐험가가 된 듯한 기분이 든다. 그리고 나만 아는 보물을 누군가에게 소개해 줬을 때의 쾌감. 이런 것들이 다 큰 어른도 놀이기구에 흥분하듯, 맥주 한 잔 마시러 모인 장소에서 느낄 수 있다니, 소소한 재미다. 분명히!



사장님이 얼굴도 잘하는 곳


분위기는 역시나 말할 것도 없다. 주변 상권과의 밸런스가 훌륭하다. 동묘가라지는 '동묘'에 포커스 되기보다 정말로 '가라지(차고)'에 집중한 인테리어가 마음에 들었다. 가라지라 쓰고 레트로 또는 빨간 조명 휘감긴 디스코라고 읽진 않을까 걱정했는데, 가라지의 느낌을 모던하게 잘 갖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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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하나 놀란 건 사장님의 외모!


분명 생긴 건 한국인인데, 한국인에게서 나오기 힘든 멋진 턱수염이 인상적인 분이 이곳을 운영한다. (음.. 미스터 선샤인에서 이병헌 상사로 나온 미군의 그것이다.) 이런 힙한 곳을 운영하려면 외모 자격시험을 따야 하는 것은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로 이곳과 혼연일체, 자웅동체급으로 완벽한 매칭이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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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이 사장님~ 근데 진짜 수염 멋있다. 동양인 맞나?

근데 이 사장님, 얼굴만 잘하는 게 아니었다. 인테리어도는 물론, 가게 안에서 흘러나오는 BGM까지 한 곡 한 곡 다 본인이 선정했다고 한다. 외모와 다르게 굉장히 섬세한 양반인 듯,


내가 맥주 맛 표현이나 리뷰를 하지 않듯 펍이나 식당에서 먹은 음식의 맛도 리뷰를 하지 않는다. 그냥 맛있다, 별로다 정도로 평가하는데, 이곳의 음식은 상당히 맛있다. 그리고 푸짐하고 가격도 저렴하다. 충분히 저녁 약속으로도 손색이 없는 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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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대비 충분히 맛있다. 왼쪽은 동묘가라지 인스타 불펌, 오른쪽은 내가 직접찍은 사진



마치며.


요즘 '힙하다, 힙스터'와 같은 단어들을 많이들 사용한다. 물론 나도 좋아하는 단어다. 그런데 내가 이런 단어를 사용할 때, 반드시 고려하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바로 '개성'이다.


내가 생각하는 신촌, 홍대, 압구정 상권이 개박살 난 가장 큰 이유;

딴 거 필요 없고 개성이 부족해졌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상권이 들썩들썩하면, 개성 없이 돈만 벌어 보려는 장사꾼(파리)들이 모여들게 되어있다. 돈다발을 들고 상권의 시장가격을 파괴하는 저급한 방법으로 장사가 아닌 경쟁을 한다. 이런 상권은 개성이 없어지고 남들을 따라 한다. 그러다 보면 재미가 없어진 가게들로 넘쳐나고 동네마저 재미가 없어진다.

핵. 노. 잼


재미없는 놀이동산으로 놀러 가는 바보들은 없다. 요식업도 마찬가지다. 요즘은 음식 수준이 상향 평준화되었기 때문에 대부분 맛은 기대 이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개성'이 필요한 것이다. 가게를 운영하는 사장님의 정신과 아이덴티티가 반영되지 않은 공간은 재미가 없다.


그런 면에서 '동묘 가라지'는 너무 재미있고 개성이 넘치는 곳이다. 찾아가는 순간부터 머무는 순간까지 롤러코스터를 타듯 기승전결이 확실한 곳이다.


간만에 재미있는 펍을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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