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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의 혁신은 앞으로 어떻게 이루어질까?

by 고첼

윈도우, 코카콜라, 아이폰, 에어비앤비, 우버, 테슬라. 요즈음 '혁신'이란 단어를 들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제품들이다. 이 제품들의 공통점은 단순히 세상에 없던 것을 창조해냈다는 것이 아니라, 기존 사용환경과 개념 자체를 뒤바꿔 버렸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이런 혁신적인 제품들은 시간이 지나고 환경이 바뀌면서 지속적으로 세상에 고개를 내민다. 세상을 바꾸는 혁신적인 제품들을 목도할 때마다 나는 이런 생각을 종종하곤 한다.

도대체 맥주의 혁신은 어떻게 올 것인가?

#맥주의 색을 변화시킨 필스너

체코의 필젠 지방에서 최초로 투명한 황금빛 필스너 맥주가 생산됐다. 필스너 맥주 이전에는 모든 맥주가 탁한 색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맥주의 색감을 즐길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당시의 맥주잔은 속이 비치지 않는 나무통이나 사기로 만들어졌다. 체코 필스너 맥주는 사람들이 황금빛 찬란한 맥주의 색감을 즐길 수 있도록 기존에 불투명했던 맥주잔을 투명하게 변화시켰다. 입으로만 즐기던 맥주를 눈으로 확장시킨 것이다. 유럽의 작은 지방에서 유행했던 필스너는 전 세계적으로 유행했고 이내 대부분의 맥주 색은 황금빛의 투명한 색이 되었다. 황금빛 투명한 맥주는 더 이상 필스너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맥주병의 색을 변화시킨 하이네켄

하이네켄은 모든 맥주병이 갈색 병이었던 시절, 병의 색을 독특한 초록색으로 물들였다. 당시에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센세이션 그 자체였을 것이다. 하지만 2018년 초록색 맥주병은 더 이상 하이네켄의 전유물이 아니다. 칭따오, 하얼빈, 스텔라아르투아, 칼스버그, 심지어 북한의 대동강 맥주도 초록색 병이다. 다시 말해서, 이제는 그 어떤 특이한 색 맥주병이 나온다고 해도 처음으로 맥주병의 색을 초록색으로 만들었던 하이네켄처럼 혁신적인 위치를 차지하기 어려워진 환경이 된 것이다.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는 다양한 맥주들은 이제 맥주 자체의 빛깔과 병 색깔의 변화에 이어서 독특한 레이블 디자인으로 고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으려고 한다.


#다양한 스타일의 맥주

요즈음 맥주 시장에는 실험적인 다양한 스타일의 맥주가 쏟아져 나온다. 국내에서는 몇 년 전만 해도 독특한 스타일이었던 IPA도 세분화 시키면 그 종류가 수십 가지가 된다. 결국 맥주는 음식이기 때문에 재료와 숙성 방식 등의 다양한 조합에 따라서 수많은 스타일로 다양화시킬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기존에 맛볼 수 없던 새로운 맥주 맛이 혁신적으로 느껴질 수 도 있겠다.


위에 크게 세 가지 방식의 변화로 맥주의 혁신을 예로 들어 봤다. 셋 중 어떤 변화가 '혁신'적일 수 있을까? 눈치챘을지 모르지만, 나열 순서에 따라서 변화의 역치 값을 낮게 표현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각각의 어떠한 변화가 아무리 크더라도 사용자의 이용방법이나 콘셉트 자체를 바꾸지 못한다면 혁신적이라고 부르기 힘들다. 환경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것은 단순한 차별화에 그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맥주 자체의 혁신을 통해서 사용자들의 소비방식을 변화시킨 필스너 맥주의 개발은 그야말로 혁신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1842년에 이루어진 필스너 맥주의 혁신 이후로 약 200년이 지난 지금, 어느 맥주 기업도 이만큼의 진일보를 이루어내지 못한 듯하다.


물론 그때보다 품질면이나 다양성 측면에서는 탁월한 개발이 이루어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에 따라 진화하는 IT산업과 비교해보면 혁신의 속도가 현저히 뒤쳐진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맥주의 소비 방식과 비슷한 양상을 띄는 다른 음료 시장과 비교해 보아도 마찬가지다.


스타벅스는 전 세계인들에게 커피에 대한 컨셉과 소비 방식의 패러다임을 바꾸었다. 소화제 목적으로 만들어진 코카콜라는 음료의 패러다임을 바꾸었고 현재까지도 독보적인 아성은 사그라들지 않는다.


커피나 콜라처럼 맥주 또한 그 자체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초혁신적인 제품 카테고리인데 그 어떤 기업도 맥주의 패권을 독식하지 못했으며 새로운 소비문화 방법을 제시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맥주의 어떤 요소가 혁신을 위해서 필요할까?


맥주의 혁신을 위해 필요한 구성요소가 무엇일까?


1. 맥주 자체(맛, 색, 재료, 양조 방식, 숙성 방식 등), 2. 브랜딩 (병 모양, 색깔, 이미지, 가격 등 소비자들이 인식하는 모든 것).


수많은 맥주 중에서 어떤 방식을 통해서 혁신적인 제품을 시장에 내놓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사람들이라면 일반적으로 저 두 가지 내에서 전략을 찾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전 세계적으로 맥주는 너무도 다양한 재료와 방식으로 저마다 독특한 맥주를 만들어 내고 있다.


다만 아직 그렇게 다양한 맥주에 대한 인식과 수요가 국내에는 부족하기 때문에 대규모 유통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브랜딩 과정을 통해서 맥주의 혁신이 이루어 질까?


나는 이 부분도 회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앞서 말 한대로 맥주병 색깔이나 모양이 아무리 특이하다고 해도 이제 혁신이라 부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고 필라이트처럼 엄청나게 저렴한 가격이나 맥주 제조사의 독특한 마케팅 활동도 이슈는 되겠지만 결국 맥주의 개념을 뒤집을만한 혁신이라고 부르기에는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결과적으로 맥주의 혁신을 가져올 수 있는 요소는 맛과 브랜딩을 넘어선 그 무엇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1번도 2번도 혁신을 위한 필요조건일지언정 필요충분조건은 아닌 것이다.


3. 맥주를 소비하는 방식의 전환

즉, 맥주 자체의 변화가 아니라 맥주를 소비하는 방법과 맥주 자체에 대한 인식의 재고가 차세대 맥주의 혁신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같은 움직임은 이미 태동하고 있다.


맥주시장을 바꾸려는 움직임

4 bottles와 벨루가라는 업체는 비어 큐레이터가 크래프트 맥주를 집으로 배달해 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고 런오프와 데일리샷이라는 회사는 앱을 통해서 일정 금액을 내고 구독을 하면 가맹된 펍에서 매일 맥주 한잔을 무료로 마실 수 있는 쿠폰을 제공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렇듯 이제 맥주 자체의 혁신과 변화보다는 맥주를 구입하고 즐기는 방식의 변화로 흐름이 이어지는 듯하다. 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열리는 다양한 맥주 축제와 박람회는 이제 대중들에게도 익숙해져 문화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맥주를 대하는 대중들의 자세와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다양한 맥주 플랫폼이 운영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제는 수제 맥주 브루어리들이 전국 도처에서 생겨나고 있다. 자신들만의 독특한 특징을 갖고 대기업 맥주와 차별화된 맥주를 생산하는 것이다. 그중에는 대규모 투자를 받아서 빠른 속도로 전국단위 판매를 시작한 맥주기업도 생겨나고 있다. 그만큼 대중도 맥주라는 컨셉의 스펙트럼을 넓혀가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국내 수제 맥주 기업 중 어메이징 브루어리는 누구보다 한 발 앞서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자체적인 맥주를 생산하며 인지도를 넓혀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어메이징 브루어리 아카데미라는 맥주 교육으로도 사업영역을 확장시키고 있다.

위의 포스터를 보면 어메이징 브루어리 단독으로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국내 맥주 업계에서 활약 중인 인물들을 한 곳에 모아서 강의를 진행한다. 이는 어메이징 자체 플랫폼으로의 발전이라고 해석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약 어메이징 브루어리 아카데미 사업이 성공적으로 안착한다면 이제 맥주를 배우고 창업하고 맛보는 곳은 어메이징이라는 소비자의 인식의 저변으로 확대될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렇듯 맥주의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한 움직임은 이미 태동하고 있다. 그 패권을 누가 잡아갈 것인가에 따라서 맥주의 새로운 혁신이 빅뱅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가장 중요한 것은 기본적인 건강한 생태 환경

우버, 에어비앤비, 그리고 배달의 민족은 전통적 소비 방식과 인식을 변화시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택시와 호텔과 맛집이 사라지지 않았다.


맥주 또한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맥주 자체에 대한 다양성과 좋은 품질을 갖춘 브루어리들이 일정 수준 성숙해지지 않은 시장에서는 아무리 혁신적인 맥주 플랫폼이 나온다고 해도 무용지물이다.


마찬가지로 소비자들의 소비방식과 인식을 바꿔 줄 수 있는 혁신적인 맥주 플랫폼이 나오지 않는다면 맥주 자체의 혁신적인 성장도 분명히 한계가 있을 것이다.


시장에서 제조사와 플랫폼 중 누가 패권을 가져가느냐의 싸움이 아니라 맥주 시장 자체가 다양한 방면에서 성숙해지는 계기가 되는 구조로 차세대 맥주의 빅뱅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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