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의 자리

#1. 존재

by 삶예글방




영은 라면을 끓이는 중이었다. 내가 먹고 싶다는 말에 그는 옆 동네 마트까지 총 세 군데를 돌아, 식물성 라면을 구해왔다. 영은 머리가 길었다. 머리의 길이는 그에게 그다지 중요한 속성은 아니었으나, 그를 처음 보았을 때 민머리였던 걸 감안하면 지금의 달라진 외형이 두고두고 낯설었다. 화장실에서 나올 때, 이제 막 귀가를 마쳤을 때, 자고 일어난 후 영과 마주치면 나도 모르게 놀라 숨을 삼켰다. 내색하는 게 무례한 것 같아 매번 재빨리 시선을 거뒀지만, 영의 눈은 나보다 훨씬 인체공학적이라 이미 눈치를 챘을 거라 짐작했다.


“두부는 넣을까 말까.”

“넣어.”

“버섯은?”

“다 넣어줘.”


영은 너무 쉽게 등을 보였다. 그 덕분에 나는 지금처럼 하릴없이 방구석에서 그의 뒷모습을 가만히 응시하거나 관찰할 수 있었다. 어쩌다 뒤를 돌아본 영과 눈이 마주치면 그는 나의 시선을 개의치 않고 마저 하던 일을 이어갔다. 이번에도 영은 원룸 모서리에 몸을 욱여넣은 채 누워있는 날 흘끗 돌아봤다. 보글보글 국물이 끓는 소리와 함께 점점 라면 냄새가 풍겼다. 간이 책상 위의 책과 물건만 아래로 내려놓은 걸로 상차림은 끝이 났다. 영은 싱크대 하부 장을 열어 부엌 가위를 꺼내, 순두부 봉지 윗단을 잘랐다. 그 가위마저도 마트에 들른 영이 사 온 새것이었다.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행주로 책상을 한 번 닦는 게 좋을 것 같아, 손에 물을 적시려 싱크대로 다가갔다. 영은 손에 순두부와 가위를 든 채로 서 있었다. 뭐 해? 나는 표정 없는 그에게 물으며 어깨너머를 바라봤다.


그는 여전히 가위질 중이었다. 자신의 손을. 기겁한 내가 그의 손을 내리쳐, 가위를 떨어트렸다.


“정신 차려!”

“......”


영은 넋을 놓았다. 그는 내가 아니라 허공 어딘가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여전히 오른손은 가위질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고장이 난 게 분명했다. 나는 우선 가스레인지 불을 끄고, 순두부도 도마 위에 내려놓고. 살갗이 너덜너덜해진 그의 손을 끌어당겼다. 딱딱한 영의 몸이 세게 부딪히며, 힘없이 엎어졌다. 바닥으로 나자빠지는 그의 목 아래에 팔을 받쳐 더 큰 상처가 남는 걸 막았다.



행주질 대신 책상 위에 노트북을 켰다.


‘드라이브 I를 연결하시겠습니까?’

알림창의 ‘예’를 마우스로 연타했다. 아니나 다를까. 어제 그가 자는 사이에 가동했던 백업 프로그램이 완료되지 못한 채 오류가 난 상태였다. 처음부터 다시 하면 된다. 그렇게 중얼거리곤 완전히 프로그램을 껐다가 다시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영의 가위질이 멈췄다. 잠시 굳은 채 바닥에 누워 있던 영은 잇새로 푸쉬-하는 소리를 내며 편안히 눈을 감았다.


영을 처음 만난 건 동네의 내천 굴다리 밑에서였다. 우리는 당근마켓 거래를 위해 오후 세 시에 만났다. 그날은 영하로 떨어진 기온 때문에 패딩을 입어야만 했다. 손이 시린걸 제일 싫어하는 나는 손목에 거래 물품을 덜렁덜렁 끼운 채 산책로를 따라 약속 장소로 걸어갔다. 할아버지 여럿이 바둑 두는 굴다리 앞 가로등 같은 괴상한 곳을 당근 장소로 잡는 사람이 어디 있나. 저 멀리 할아버지 무리가 보이기 시작할 때쯤, 이미 가로등 아래서 꼿꼿하게 선 채로 허공을 응시하는 사람을 발견했다.


“혹시 당근이세요?”

“네.”

“여기.”

“고마워요.”

“아, 예.”


민머리. 햇빛에 비쳐 아주 반짝거리고, 살갗이 투명하게 드러나는 모습. 티셔츠도 받치지 않고 입은 맨투맨 한 장에, 빛바랜 청바지, 앞코가 검은 컨버스. 살아 숨 쉬는 증기 기관차 같아서 나는 입을 벌리는 것도 신경이 쓰이는데 그는 입김 하나 없이 무미건조하게 날 내려다봤다. 사회성이 부쩍 떨어지는 듯 본인의 얼굴 근육에 단 한 번도 신경을 쓰지 않은 사람 같은 눈빛이었다. 그가 내게 건넨 건 한 무더기의 니트였다. 비에 젖은 낙엽처럼 차곡차곡 쌓아 올린.


“저기요. 내용물 확인 안 해도 돼요?”

“네.”


단호하게 대답한 그는 어디론가 떠나려고 찍은 좌표가 있는 듯 망설임 없이 멀어졌다. 무서울 정도로 타인과의 교류에 무감한 태도에 머쓱해진 나도 그의 손가락에 걸린 봉투를 바라보다 뒤돌았다 나 거래 끝낫어 . . 어 직접 만나서줫어 걱정하지마 자기랑 닮았냐고? 엉... 그건 모르겟고 쫌 사람이 차갑던데 진짜 자기 아는사람 맞아? 알바같이햇다고? 어케 그 알바를햇지.. 후 암튼 넘추워 나지금 집에간당...




서울의 끝자락, 지하철역에서 내려 굽이굽이 언덕을 타고 올라가면 빌라 중에서도 어둠과 가장 맞닿은 내 원룸으로 돌아왔다. 나에게 당근 거래를 떠민 연인은 햇반을 돌리며 그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의 이름은 영. 나이는 스물넷. 써브웨이에서 주말 알바를 하는 연인과는 직장 동료 사이였다. 친해지게 된 계기는 그의 핸드폰 케이스에 붙은 ‘안드로이드 해방 물결’ 스티커였다. 나는 그 대목에서 조금 당황했다. 연인의 적갈색 긴 머리칼로 지휘자 흉내를 내다 문득 멈췄다. 그 스티커는 연인이 재학 중인 대학교의 인문 동아리에서 제작해, 3년 전부터 이어지고 있는 안드로이드 연대 시위에서 무료 배포한 스티커였다. 연인은 스티커뿐만 아니라 다양한 굿즈 제작의 디자이너로 참여해, 그것을 도무지 모른 척할 수 없었다고 했다. 영은 31차 연대 시위에서 스티커를 얻어 그 이후로 쭉 케이스에 붙인 채 지냈단다. 그의 말버릇인 ‘암튼 대박이야’를 연발하며 연인은 영과 그가 ‘운명 같은 만남’을 가졌다고 신나 했고, 그래서 그를 기꺼이 도왔다. 연인이 말하는 ‘도움’의 종류를 몰랐던 그때의 나는 일단 착한 일 했다고 품에 꽉 끌어안아 주었다.


연인과 내가 포옹을 멈춘 건 어느 마트에서 그의 신용카드 결제가 막혔을 때였다. 그 달 카드 대금 납부가 밀렸다며, 잔뜩 사려던 식재료를 도로 내려놓고 오는 길이었다. 체크카드 사용이 불가능하다는 연인의 말에 꼬치꼬치 캐묻다가 언덕배기 앞에서 그날 내가 영에게 건네준 물건들의 정체를 알았다. 내 연인이 영에게 주었던 건, 그의 신분증과 달마다 월급이 들어오는 주거래 체크카드, 그리고 통장 사본이었다. 나는 연인과 두 뼘 떨어진 채로 마주 보고 서서 한동안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영은 어느 중산층 가정의 경호용 안드로이드로 제작되었다. 부족함 없이 사는 집안의 딱 한 가지 걱정거리는, 그들이 아이처럼 데리고 살던 반려견이 심장병을 앓고 있다는 점이었다. 전문직 딩크 부부가 으레 그렇듯 워낙 바빠, 강아지를 제때 병원에 데려가거나 품에 안고 산책을 시킬 인력이 부족해 그들이 ‘고용’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사람 좋은 체를 할 줄 아는 상식적인 사람들이라, 영을 기계 취급하며 교육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늦추거나, 사람과의 교류가 원활하도록 프롬프트를 꾸준히 재설정해 주었다. 그러나 영은 단 한 번도 강아지를 병원에 데리고 가는 일 외에 사회적 교류를 해본 적 없는, 사회성 떨어지는 반인반계(械)였다. 강아지는 그 집에서 5년을 더 살았다.


그 부부는 또 다른 반려를 길러내는 방식으로 상실의 아픔을 이겨내려 노력했다. 그 ‘사회적 네트워크 맺기’ 일환으로 영은 자발적으로 집 근처 다양한 알바를 시작했다. 다행히도 인간형 안드로이드를 받아주는 지점이 몇 군데 있었다. 영이 사장으로 모시던 사람들은 영을 제법 좋아하면서도 어떤 기준 이상으로 영에게 기대하지 않았다. 자연 태생 사람들과 함께 근무하며, 영은 여러 곳에서 포스기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매장에 입장한 모든 사람과 한 번씩 말을 섞으면서도 손님이 컴플레인을 걸었을 땐 당연하게 뒤로 밀쳐지곤 했다. ‘기분’을 모른다는 이유였다. 그래도 같은 아르바이트생들은 착했다. 무엇이 이상한지 깨닫기 시작했을 때, 영은 처음으로 알바를 그만두었다.

영은 이후 여러 알바를 전전했다. 사회생활 3년 차에, 써브웨이에서 그는 나의 연인을 만났다. 나는 그날 나와 당근 거래를 한 사람이 그 ‘영’인 줄 몰랐다. 연인은 안드로이드 전문 제작 기업의 공정에서 스케줄 근무를 하는 나와 시간이 맞지 않을 때 종종 ‘영’이라는 사람과 연대 시위를 다녀오고, 둘만의 창작 모임도 가진다고 했다. 영은 일기를 보고서가 아닌 에세이 형태로 쓰는 법을 익히고 싶다 했고, 연인은 자신의 하루가 볼품없이 마모되는 게 싫어서 글을 썼다.




▶ 11월 18일

7시 기상 – 눈을 뜨자마자 소프트웨어 검진 시스템 가동. 30분 지속. 메모리 장치 및 기타 가용 프로그램 이상 없음 확인.
7시 30분 – 인공 피부 체크. 먼지 및 이물질 제거 완료. 피부 상태 양호.
7시 40분 – 거실 청소 시작. 어머니, 아버지 부재. 피아노를 닦고, 설거지를 함, 식탁 위 30만 원 확인. 금액 일정.
8시 30분 – 외출.
⋯⋯



내 연인은 프로파일링 기록일지 같은 영의 일기에서 감정적으로 읽어낼 수 있는 무감함에 여러 번 눈물을 흘렸다. 영의 기록에 ‘타인과의 대화’는 없었다. 그가 ‘응대’, ‘접객’, ‘서비스 제공’이 아닌 ‘대화’를 적는 대상은 내 연인 뿐이었다. 영에게 새로운 삶에 관한 영감을 주입했다. 그 둘은 ‘진짜 사람’이라고 모두가 인정하는 존재는 무엇인지, 인간의 정의는 뭐라고 할 수 있는지 , 인간을 닮은 존재에게 말하고, 어울리고, 생각하고, 능동적인 해결책을 내놓을 권리를 부여하면서 ‘진짜 사람은 네들과 다르다’고 선을 긋는 이들에게 제대로 엿을 먹일 아주 긴 상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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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