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의 자리

#3. 공허

by 삶예글방


영이 다시 눈을 뜬 건 라면 냄새를 빼기 위해 창문을 연 지 5시간이 지나고서였다.



나는 영의 머리 옆에 쭈그리고 앉아, 잠든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창문 밖에서 길고양이들이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이따금 근방의 어느 집 텔레비전 소음, 부부가 싸우는 소리, 쓰레기차가 오가며 경보음을 삑삑 울리는 것도 들었다. 형체도 없는 시간의 존재는 그렇게 타인의 개입으로 체감할 수 있었다. 눈을 뜬 그는 나와 아무 말 없이 오래 눈을 맞췄다. 영은 아주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나는 플라스틱 속눈썹이 달린 영의 쌍꺼풀진 눈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어제저녁에 충전기를 꽂아놓고 백업할 걸 그랬나 봐.”

“⋯⋯”

“체내 배터리가 부족해서 중간에 백업이 멈췄더라고. 충전기 꽂아놓고 다시 시작했어.”

“⋯⋯”

“나 밥 먹을래.”



일자로 곧게 누워 내 말을 듣던 영은 아주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목과 팔을 부드럽게 돌리고, 손목 스트레칭을 하려던 그가 본인의 검지손가락을 내려다보곤 잠시 멈칫했다.



“미안. 내가 손재주가 없어서.”

“⋯⋯ ”

“순두부 봉지 뜯다 말고 버퍼링이 걸려서 니가 손을 계속 자르는 바람에... 물 들어갈 일 없게 대충 꼬매놨어. A/S 예약하자. 내가 근무 일정 조정해 볼게.”

“괜찮아.”

“왜?”

“방수 밴드 붙이니까 티 안 나잖아. A/S는 내가 예약해서 혼자 갈게.”



우리는 라면 냄비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영은 내가 먹는 동안 뻘쭘하지 않게 국자를 저어 내 접시에 음식을 덜어주거나, 간혹 일상적인 대화를 시도했다. 우리는 내 원룸의 난방비 문제와, 새로운 이불을 사 올 방법, 영이 마트에 다녀오며 발견한 들개 무리와 야생 고양이들이 혹한을 견딜 수 있게 도울 대책 같은 걸 논했다. 영은 내 숟가락 위에 김치를 덜어주었다. 별 이유 없이 꽃무늬 이불을 좋아하는 내 취향을 간파해, 홈플러스에서 봐둔 게 있다며 그걸 사 오겠다고 했다. 마지막 면발을 다 먹고 젓가락을 내려놓자, 영이 국물을 떠 내 그릇 가득 담아줬다.


“몸에 안 좋으니까 이 습관 고치자.”


그러면서 영은 내가 국물을 다 마실 때까지 기다렸다. 빈 그릇을 책상에 내려놓자, 그는 군말 없이 냄비와 수저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싱크대로 향했다. 라면은 국물까지 다 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다 먹으면 곧장 치워야 하는 생활 습관, 라면 먹을 때 김치는 늘 배추김치의 이파리여야 한다는 내 취향. 영은 놀라울 정도로 나를 잘 알았다.



“우리 예전에 광화문 갔을 때 기억나? 몇 년 전이었어, 그게? 그거 끝나고 우리 뭐 먹었더라.”








우리가 처음 만났을 당시 다른 안드로이드들은 ‘사람’ 같아 보이도록 실리콘 피부에 가발을 꿰어 다니곤 했다. 그때의 영은 피부의 광택, 투명도 같은 점을 전혀 개의치 않는 듯 본래의 피부를 드러냈었다. 나는 그 이후의 시간 동안 간간이 그날의 영을 생각하며 너무 당당했기에 낯설었던 그를 자주 곱씹었다.




“아. 샐러드 먹었지. 그 가게 아직 있으려나?”




내가 영을 다시 만난 건 지난해 1월이었다. 영과 내가 굴다리 밑에서 마주친 지 3년째 되는 시기였다. 그는 적갈색 가발을 쓰고, 마지막으로 열린 지 3개월도 넘은 이 원룸의 현관문을 두드렸다. 끈질긴 회피 끝에 문을 두드리는 소음에 못 이겨 용기를 낸 나는 문을 열자마자 등장한 그의 모습에 주저앉았다.




“왜 대답이 없어? 나랑 갔었던 그 가게, 기억 안 나냐니까...”




신발장 앞에 주저앉아 넋을 놓은 나를 아무런 말 없이 응시하던 영은 이곳으로 성큼 걸어 들어왔다. 그는 나를 가로질러, 쓰레기와 생활 도구가 뒤섞여 난장판이 된 집의 한가운데 서서 주변을 둘러봤다. 나는 갑작스레 타인에게 노출된 집의 내부에 창피함을 느끼면서도 도무지 내쫓을 수 없는 그의 뒷모습 때문에 혼란스러웠다. 입술을 달싹이며 이름 하나를 혀끝으로 굴려보던 나는 결국 달려가 그를 껴안았다.


등허리를 끌어안자마자 느껴지는 차원이 다른 무게와 딱딱한 몸을 느끼곤 화들짝 놀라며 떨어졌다. 나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내 연인, 원이 아니었다.


3년 전 마지막으로 마주쳤던 영이었다.



내 연인과 똑같은 머리칼을 하고, 내 연인처럼 옷을 입고, 내 연인이 쓰던 향수를 걸친 채, 내 연인과 했던 약속을 지키러 돌아온 그. 영이 되어 나타난 원. 영은 다시 나를 끌어당겨 마주 안고 아주 오랜 시간 포옹을 나눴다.





“기억이 안 나겠구나. 그치.”


“... ...”


“나랑은 가본 적이 없으니까.”


“... ...”


“이건 원의 기억이니까.”



내가 착각했어. 미안해. 설거지하려다 말고 모든 동작을 멈춘 채 영이 날 돌아봤다. 혼란스러운 기색도 없이 영은 내게 사과했다.






다시 돌아온 그날, 영은 자신의 모든 짐을 우리 집에 풀었다. 그는 원의 신분증, 카드, 통장 사본 등 자신이 갖고 있던 원의 모든 물건을 내게 돌려주었다. 나는 그것을 받아들고 길게 울었다. 주민등록증 속에 박힌 원의 사진을 한참 어루만졌다. 그제야 나는 원의 물건을 긁어모으는 일을 그만두었다.


며칠을 우는 나를 두고, 영은 나대신 많은 것을 처리했다. 새집처럼 청소를 했고, 식재료가 썩어가는 냉장고를 정리했고, 공과금까지 납부했다. 내가 너무 길게 울다 지쳐 쓰러진 날에는 나를 들쳐 업고 병원으로 데려갔다. 보지 못한 새에 영은 능숙해졌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정말이지 영을 단 한 순간도 생각하지 않았다. 마치 다른 차원의 존재처럼 영과 말을 섞지도, 그에게 고마움을 표하지도, 그가 내 집에 머물고 있다는 걸 인식조차 하지 않았다. 그가 가져다준 영의 추억으로, 나는 오래 신음하기에 바빴다.


그가 우리 집에 머문 지 두 달이 되었을 때. 영은 청소를 마친 후 나를 앉혀놓고 아주 무덤덤하고 정직하게 제안했다. 원이 자신의 기억 메모리를 남겨둔 걸 알고 있으니, 그걸 자신에게 달라고.


영이 내 앞에서 무얼 하든 넋 나간 멍청이처럼 굴던 내 가슴이 순식간에 홧홧해졌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나도 모르게 달려가 노트북을 품에 안았다. 그리곤 영에게 소리를 질렀다.


니가 뭔데 이걸 나한테 달라고 해. 니가 뭔데 나한테 원의 기억을 가져가겠대. 대체 니가 뭔데. 원이 살아있을 때 너는 그 애의 이름까지 가져갔으면서. 원은 자기가 빌려준 거라고, 네가 다시 돌아올 거라고 했는데 넌 안 돌아왔잖아. 걔가 죽을 때까지 너는 그 애 이름으로 살았잖아. 걔는 걔처럼 살지도 못했는데. 할 수 있는 걸 못 하고, 하지 못하게 된 것 앞에서 화도 못 내면서. 원은 너한테 자기 생을 빌려 준거야. 니가 뭘 알아. 니가 뭔데 이제 원이가 있어야 할 자리까지 다 가져가겠다는 거야. 그 애한테 특별했다고 착각하지 마. 걔는 내가 알아. 니가 모르는 걔의 시간도 다 내가 안다고. 너는 고작 원이 이름 하나 빌려간 것뿐이지만 원이는, 원이는...



분에 못 이긴 내가 무작정 악을 쓰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하자 영은 다가와 나를 끌어안았다. 나는 온몸으로 그를 구타했다. 내 손과 발에 멍이 들 걸 알았음에도 나는 그를 마구 밀치고, 때렸다. 영은 나를 안으려던 걸 포기하고 양팔을 단단히 붙잡아 벽에 내 몸을 고정했다. 화를 낼 수 없으니, 눈물이 터져 나왔다.


영은 울분에 휩싸여 아무것도 인지하지 못하는 패닉 상태인 나에게 연거푸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그 애 기억을 나한테 줘.
그 애의 기억을 내가 영원히 저장할게.

이 세상에 너만큼 그 애를 온전히 기억하는 사람은 없어. 내가 가져가는 게 아냐. 너한테 그애의 존재를 돌려주는 거야. 기억이 흐려지는 게 싫어서 그 애의 머리카락도 버리지 못하는 거잖아.

내가 간직할게.
내가 저장해서 영원히 기억할게.

절대 잊지 못하게 내가 원이 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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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