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구속
“한아.”
“어?”
“나 갔다 올게.”
등받이 쇼파에 몸을 파묻고 있다, 영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인기척에 고개를 들었다. 며칠 째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시야가 뿌연 상태였다. 습관처럼 인상을 찌푸리며 엄지손가락으로 눈가를 꾹 누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내 손을 영이 가볍게 감싸 쥐어 눈가에서 떨어뜨린 후 시술자 대기 명단에 뜬 호실로 걸어갔다.
반듯한 듯 뒤꿈치를 끌며 걷는 영의 걸음걸이를 살펴 보다, 다시 눈을 감았다. 실리콘 피부 살갗이 벗겨졌는데, 살점이 떨어져 나간 게 아니라서 봉합술로도 충분할 것 같다는 수리 기사의 소견 덕분에 예상보다 시술 시간이 30분은 단축되었다.
평일 오전임에도 A/S센터는 붐볐다. 삼삼오오 함께 방문한 이도 있었고, 심각한 상태의 시술이 필요한 이들도 보였다. 나는 주변의 대화를 백색소음으로 여기며 조용히 대기실에 앉아있었다.
영을 백업한 이후로 자꾸 잠을 설쳤다. 눈을 뜨면 극심한 피로에 머리가 아파서 몰래 타이레놀을 삼켰다. 눈을 감으면 악몽을 꿀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고, 눈을 뜨면 원과 똑같은 잠버릇을 갖게 되어 등을 돌리고 누운 영의 뒷모습이 보였다. 원룸이라 그를 어디로 내몰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진퇴양난이로구나. 마음이 복잡한 걸 내색하지 않고 속으로만 푸념했는데도 뒤척임과 한숨은 어쩔 수 없었는지, 영은 쉽게 잠에 들지 못하는 내게 몇 번 말을 걸기도 했다. 어떻게 하면 잘 잘 수 있겠냐고. 난 그런 거 모른다고 답했다.
영은 이 집에 처음 들어온 날부터 꼬박꼬박 나와 함께 잠을 잤다. 안드로이드인 그는 잠을 청한 게 아니라 그런 ‘척’을 해준 거지만. 잠옷으로 갈아입고, 이불을 펴고, 불을 끈 다음 잠자리에 누워 편안한 호흡에 달할 때까지 영은 그 모든 규칙을 함께 이행해 주었다. 우린 좁은 이불보에 나란히 어깨를 맞대고 누웠는데, 원의 기억을 백업한 이후로 그는 며칠 째 내게 적갈색 머리칼을 보이며 돌아눕기 시작했다. ‘원이 되어줄게’라는 스스로의 약속을 지키기 위함인지, 원의 기억까지 갖게 되어 무의식 중에 그 모습을 복사하는 건지. 내가 알 수는 없었다.
나는 항상 원이 돌아누워 잠을 청하면 등 뒤에 가까이 다가가 원의 허리에 팔을 감았다. 흉부에서 골반으로 이어지는 허리께가 깊고 동그랗게 파여, 손을 두르면 안정적인 잠들기 자세에 돌입할 수 있었다. 나는 자주 원의 형체를 시선으로 따라갔다. 등 위로 흐트러진 적갈색 머리칼, 조금 야위어 보이는 어깨, 헐렁한 잠옷 티셔츠는 같았지만 그의 허리는 판판했다. 머리칼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던 나는 힘겹게 허리 부근까지 생각을 돌리고 나서야 코끝을 욱신거리게 하는 그리움에서 해방되었다.
‘너는 요새 뭐하고 다녀?’
영이 손을 다치고 며칠 후. 여느 때처럼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속이 울렁거렸다. 늦은 저녁을 먹느라 아직 소화가 덜 된 탓도 있겠지만 누적된 피로를 덮치는 감정 변화가 물리적으로 나타났다. 흉부를 손바닥으로 문지르며, 천장을 보고 돌아누운 채로 영에게 물었다.
‘카페 알바해. 마포구청 근처에서.’
‘카페? 무슨 카페인데?’
‘안해연* 알지? 그 건물 1층에 재단에서 운영하는 카페가 있어. 거기서 알바 해. 주6일.’
‘그래? 나 왜 몰랐지.’
‘구한 지 얼마 안 됐으니까.’
‘거긴 면접 보고 들어간 거야?
‘아니.’
원이 덕분에 아는 사람이 있었어. 오랜만에 연락했더니, 일자리 있다고 소개해 주더라.
원이 덕분에. 영의 입에서 나오는 그의 이름이 낯설었다. 우리 사이에 그 이름이 금기는 아니었지만 덤덤한 영의 말투와 음성은 익숙한 단어도 낯설게 들리게끔하는 재주가 있었다. 그렇구나. 나는 짧게 대답하고 눈을 감았다. 그날은 아무 꿈도 꾸지 않았다.
영의 등장으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다시 일자리를 구했다. 안드로이드 생성 기업에 납품할 부품을 만드는 공장이었는데, 안드로이드를 제작하는 4개의 기업체에 모두 부품 조달을 도맡는 곳이라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파트를 나눠 배송했다. 나는 그중에서도 하복부 안쪽에 장치하는 모터와 엑추에이터를 수량에 맞게 분류하는 작업 파트의 구성원이었다. 모터로 인해 안드로이드는 팔, 다리, 손가락 등을 움직일 수 있게끔 했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과 빠른 반응속도 덕분에 공압식 엑추에이터를 쓰는 경우가 다수인데, 영을 제조한 A 기업에선 손과 표정 등 정밀 동작을 가능케하는 전기식 엑추에이터를 사용한다. 가정용-실제 사람과 유사하고 정밀한 행동양식과 표정 구현이 가능하여 사용자(인간)이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형태의-안드로이드는 A 기업이 시장 점유율을 독점하고 있었다. 세밀한 공정이 필요한 작업의 경우에 사용하는 공장 기계도 대체로 A 기업 제품을 사용하고 있었다.
일하던 도중 공장의 기계 결함으로 작업이 중단되었다. 세척을 담당하는 3층 라인에서 오작동으로 인한 누수가 발생한 듯했다. 연결되었던 전기가 일시적으로 차단되며 공장의 모든 기계가 멈추었다. 한창 A 기업에 납품할 엑추에이터를 분류하던 중이었던 나와 동료들은 일시적으로 멎은 장내 기기 소음과 트레드밀을 보며 어리둥절한 채로 시선을 섞었다. 시공간이 어그러진 기분을 느끼고 있을 찰나, 층계에 가까운 옆 라인에서 작업을 하던 기정이라는 이름의 친구가 3층을 들렀다 내려오며 사람들에게 일렀다.
재가동 할 수 있는지 살펴 봐야 한다고, 잠깐 작업 멈추래요.
같이 엑추에이터를 분류하던 동료들과 작업장을 나서며, 입구에 있는 자판기에서 캔커피를 뽑아 마셨다. 작업장 문을 열자 세상이 하얗게 빛났다. 아무리 실내 조명을 밝혀도 자연스러운 햇빛이 발광하는 건 어쩔 수가 없다며, 다들 눈을 찌푸렸다. 전례 없는 쉬는 시간을 즐기자고 무작정 작업장 밖으로 나왔지만 마땅히 할 게 없어 다들 공장 벽에 기대거나 시멘트 바닥에 주저앉아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나도 캔커피의 뜨끈함을 양손에 담고 벽에 기대 쭈그리고 앉았다.
“기계 하나 멈췄다고 이 큰 공장이 일을 다 쉬네.”
“그러게.”
“그렇다고 사람 손을 써? 그걸 다 언제 옮기고, 나르고, 싣고 할 거야. 허리 부러져.”
“예전엔 그랬대잖아. 근데 지금은 쟤네가 알아서 다 하니까 우리가 이렇게 쉬는 거지, 뭐. 좋네.”
저마다 한 마디씩 섞으며 하는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 이야기는 곧 고장난 3층 기계로 옮겨갔다. 원래부터 3층 기계 보수를 제대로 안 하더라, 돈 아끼려고 그런다더라, A 기업이 원래 A/S 비용이 비싸기로 유명하지 않느냐. 밀물과 썰물처럼 대화가 허공을 부유했다. A/S 비용 이야기가 나오자 곧바로 영의 손가락이 떠올랐다.
실리콘 피부를 봉합하고 내가 받은 청구서는 15만 원. 간편한 수술이었다고 함에도 불구하고 ‘진짜’ 피부처럼 재생 능력이 없어 ‘진짜’처럼 봉합하기에 드는 비용이랬다. 친절하고 나긋한 상담원과 마주앉아 청구서를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상담원에게 마지못해 카드를 건네며 나지막이 드는 의문을 애써 눌렀다. ‘진짜’이든 아니든 상관없지 않느냐고. 그렇지만 상담원은 그 질문에 대답할 의무가 없다는 걸 알기에 조용히 영의 손을 붙들고 센터를 나섰다. 얼마 후 퇴근한 영이 식탁 위에 안해연에서 배포한 전단지를 식탁 위에 올려두었다.
‘안드로이드에게도 의료 보험을!’ 그 문구가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근데 A/S 비용도 실비 대상에 포함한다, 만다 얘기가 나오던데.”
“포함해야지. 의료보험 청구 안 돼서 우리 사촌 집에 사는 애도 얼마 전에 팔 부품 교체하는데 150만 원 들었대.”
“어우, 너무 비싸다.”
A/S 센터에서 받은 인상이 잔상처럼 나를 따라다녔다. 어릴 때부터 평생을 함께한 안드로이드와 결혼식을 올린 사람, 안드로이드에 적합한 장례 서비스를 제공하는 상조 회사들, 안드로이드용 충전 콘센트를 테이블마다 부착한 식당, 안드로이드 실리콘 피부 윤활제를 파는 화장품 회사들. 길거리에서 고개만 돌려도 볼 수 있는 안드로이드 배우의 전광판 광고 등. 이미 우리는 그들과 익숙했다. 살을 부대끼고 있었다.
몇 해 전, 너나 할 것 없이 쏟아져나와 거리에서 안드로이드의 사유화를 반대하고, 인권이 적용되는 존재로서의 해방을 외치던 사람들이 손가락질 받던 시대도 지나간 채였다. 영은 그 세월을 견뎠다. 영은 그 시대를 지나왔다. 이제 영을 두고 수군거리는 이들도, 시스템 오류로 말을 더듬거나, 반박자 느린 행동 반응을 두고 기괴하게 여기면 비판을 받는다. 모두는 존재하며 어울렸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을 바랐던 사람들의 염원이 모두 해소된 걸까?
문득 이 질문이 떠오를 때마다 나는, 시위대 왼편에서 다른 안드로이드를 잡아 인도로 내던지던 경찰에게 달려들어 코가 부러질 정도로 주먹을 휘둘렀던 영을 상상했다. 그때도 영은 무감한 표정을 지었으려나. 아니면 분노로 형형한 눈을 했을까.
둘 중 어느 것도 구체적으로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았다. 그보다 선명한 건, 공장에서 퇴근 후 귀가한 내 옷가지를 받아 옷걸이에 걸어주는 모습. 뜨거움을 모르는 그가 나대신 텀블러를 열탕 소독하는 모습. 경찰의 코에서 튀긴 피가 묻었을 그 손으로, 원을 기억하며 품으로 무너지던 내 어깨를 꽉 쥐었던 모습이었다.
우린 두 몸을 가진 타인이었지만 나에게로 넓힌 영의 세상이 나와 아주 강하게 얽혀, 마치 어디서든 그와 내가 휘감아진 듯한 느낌이었다.
캔커피의 입구를 만지작거리며, 꿰맨 흔적이 희미하게 남은 영의 손가락을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