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의 자리

#11. 잔량

by 삶예글방


영은 돌아오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나와 같이 생활하지 않았다. 영이 집을 들르기만 한 게 일주일이 넘자, 나는 전류가 흘러 웅웅 소리가 들리는 새벽보다 무거운 솜으로 귀를 틀어막은 것처럼 묵직한 어둠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혼자 일어나는 아침이 늘어나니, 나도 모르게 옆자리 베개를 살피는 습관이 생겼다. 여느 때처럼 상체를 반만 일으키고 손을 뻗었다. 차가운 감촉의 베개를 꽉 쥐었다.


영이 집을 나갔다. 어디에서, 어떻게 지내는 줄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어느 날은 안드로이드 충전 콘센트에 불이 켜져 있거나 어지러운 싱크대가 정리되어 있고, 샤워 후 그대로 닫아놨던 화장실 창문이 활짝 열려있는 걸 발견하는 걸로 영이 아주 집을 떠난 건 아님을 확인했다. 나는 여전히 오전에 출근해 늦은 시간에 귀가했다. 밖을 떠도는 시간은 점점 길어졌다. 매일 편의점에서 맥주 네 캔을 사서 봉투를 손목에 건 채 아무렇게나 휘두르며 내키는 대로 취한 채 쏘다녔다. 후련했다. 밤공기를 가득 마시고 취기에 정신을 맡기면 도로의 소음도 음악 같았다. 엉킨 생각이 흐릿해지자 그건 그것대로 하나의 예술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얼큰한 기분으로 현관을 열면 집안의 온갖 문을 다 열어보았다. 화장실, 간이 창고, 옷장, 선반, 주방 수납장 등. 문이란 문은 전부 열어둔 채 잠에 들어야 마음이 편했다. 내가 열어젖힌 마음의 빗장은 아침의 내가 다시 닫아놓는 걸로 만족했다.



생활의 공허를 깨기 위해 아침마다 팟캐스트를 들었다. 잠을 깨우기 적당한 수준으로 낭랑한 목소리를 가진 전직 아나운서 출신 진행자가 그날의 주요 이슈를 자신의 견해를 섞어 전달했다. 월요일엔 10년 넘게 사람의 반려로 지낸 안드로이드가 별다른 동기 없이 동반자를 살해했다는 소식이 있었다. 바로 다음날엔 무허가 안드로이드 제조 공장이 발각되어 최소 1만여 명의 미등록 안드로이드가 주로 유흥업계 사업주들에게 납품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리고 지난주 금요일엔 드디어 안드로이드의 개인 의료보험 가입이 가능한 법의 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그날 그 소식을 듣는 아침 버스에서 나는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만약 코피를 쏟고 실신 직전까지 간 게 내가 아니라 영이었다면 그는 혼자서 응급실 문턱도 넘지 못하고 비싼 돈을 내며 A/S 센터에서 순번을 기다리느라 영구 손상을 입었을지도 모른다. 안드로이드의 시술도 의료법의 보호를 받게 된 이상 더는 A/S 센터의 길고 긴 예약자 명단을 기다리느라, 천문학적인 비용을 감당할 재량이 없어 유기되는 안드로이드는 없을 테니 이 소식은 안드로이드 반려를 가진 모든 이에게 희소식이었다.


세상은 그랬다. 여전히 사람은 사람을 해하고, 사람이 안드로이드를, 안드로이드가 사람을, 사랑하고 죽이고 미워하고 짓밟고 싶어 했다. 동시에 구원하고 돕고 보듬고 같이 나아가길 선택했다. 개인은 끔찍하고 사회는 잔혹하지만 여전히 세상에 존재하는 사랑을 보며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마지막으로 보았던 영의 얼굴을 떠올렸다. 문득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내가 안드로이드를 혐오하는 사람으로 그에게 비쳤을까. 영의 존재가 싫었던 게 아닌데. 혹시 그 애가 그런 오해를 하고 있다면 나는 어떻게 해명해야 하지. 해명할 기회가 영영 없을지도 몰라. 그럼 나는 영과 이대로, 이렇게 헤어지는 건지 묻고 싶었다. 아침 버스에서, 퇴근하는 길 정류장 앞에서, 계단을 올라가며, 끼니를 대충 때우며 계속 생각했다. 영은 지금 나와 작별할 준비를 하고 있는 건지. 작별은 창문을 넘는 바람처럼 불어 닥쳐야만 하는 건지 묻고 싶었다. 그 물음에 답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영뿐이라 똑같이 퇴근 후 맥주를 사서 길을 거닐던 나는 충동적으로 택시를 잡아탔다.



도착한 곳은 안해연 앞이었다. 저녁까지 운영하는 안해연 카페의 입구를 멀찍이 바라봤다. 처음부터 들어갈 의도로 찾아온 건 아니었다. 길목에서 혼자 덩그러니 서서 눈으로 카페 안을 열심히 좇는데, 테이블을 닦으며 부지런히 움직이는 빨간 머리가 보였다. 그 순간 심장이 가라앉았다. 들어가서 영을 부르고, 사과하고, 내 마음을 정제된 언어로 솔직하게 말하면, 어쩌면 관계가 이대로 끝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희망이 있었다. 용기를 내서 유리문 가까이 다가갔다. 그 사이 영은 카운터 뒤에 있는 창고로 들어가 보이지 않았다. 카운터 정면에서 나를 볼 수 없게, 그러나 그가 날 본다면 들어가고야 말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입구에서 비켜선 채 망설였다. 영이 나오길 기다렸다. 드라마처럼 그가 날 발견하는 장면을 상상했다. 한참을 기다리는 사이, 영이 정말로 창고 문을 열고 박스를 품에 한가득 안은 채 등장했다. 그는 카운터 왼편 홀 구석에 박스를 하나씩 쌓았다. 그에게 누군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영이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미소 지었다. 이상했다.

집에 돌아가는 내내 영의 웃는 모습을 곱씹었다. 영은 미소 그 자체로 충만해 보였다.



정말 웃기게도 그날부로 나는 매일 퇴근 후 안해연 앞을 서성였다. 안해연에서 집으로 돌아오려면 버스로 40분을 더 돌아와야 했음에도 기어코 출석도장을 찍었다. 한 번도 들어가진 않았다. 자연스레 안해연 근처의 프랜차이즈나 늦은 저녁 식사가 가능한 식당을 알게 되었다. 그 근처에는 간이용 안드로이드 충전소가 많았다. 혹시라도 그곳에서 충전하는 영을 마주칠까, 안해연 입구에서 서성이는 모습을 그에게 들킬까 두려워 매번 주위를 살폈다. 뭘 원하고 가는지 스스로 알 수 없었지만 하루 끝에서 영을 보아야 안심했다. 전당포에 맡긴 물건이 잘 있는지 확인하는 사람처럼 굴다가 흉부를 꽉 메운 자기혐오가 극심해지면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면 어김없이 집안의 한 구석이 바뀌어있었다. 나는 영의 영역으로, 그는 우리의 영역으로. 내가 영을, 영이 나를 인식했다.



평소처럼 퇴근 후 안해연을 들리려고 했던 어느 날이었다. 왠지 옷을 갈아입고 싶었다. 전날 머리를 비우겠답시고 새벽까지 드라마를 시청하느라 기상 시간이 늦어져 손에 닿는 대로 주워 입었더니 웃긴 모양새였다. 우연히 영을 마주치더라도 우스워 보이고 싶진 않았다. 오랜만에 공장에서 바로 귀가했더니 계단을 적신 햇빛이 반짝이는 게 예뻐 보였다. 더 어두워지기 전에 안해연 앞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현관문을 열었다.

그때 내가 마주친 건 충전 콘센트를 등에 꼽은 채 바닥에 엎어진 영이었다. 훤히 드러난 그의 상체와, 주위로 두루마리 휴지, 쓰레기통, 아침에 책상에 두고 갔던 내 필통이 엎어져 필기구가 나뒹구는 모습에 경악했다. 신발을 집어던지다시피 벗으며 뛰어들어갔다. 기절한 사람처럼 영의 몸은 무겁고 축 늘어져있었다. 오랜만에 노트북의 안드로이드 점검 프로그램을 작동해 충전 상태를 살폈다. 42% 정도로 배터리가 충전되고 있었고, 최근 충전 기록을 보니 이미 충전기를 꽂을 당시 5% 미만이었다. 그 상태에서 움직임이 많으면 지금처럼 충전을 꼽은 채로 수면 모드에 빠질 수 있었다. 프로그램을 작동시켜 전원을 켰다. 성대 부근이 잘게 진동하자 곧 영이 눈을 깜빡이며 정신을 차렸다.


“영아.”

“......”


아직 어떤 상태인지 감이 오질 않는 듯 그는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봤다. 내가 한 번 더 그의 이름을 부르자 영이 고개를 돌렸다. 내 무릎을 베고 누운 영은 꼼짝도 하지 않은 채 나를 응시했다. 얼마간 말없이 그와 눈을 맞추던 내가 마치 혈액순환을 돕는 양 그의 팔을 주물렀다.


“언제, 어떻게 온 거야.”

“......”

“안해연에 있을 시간 아니야?”


안해연을 듣자마자 영이 눈을 깜빡이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정신이 없는 사람처럼 얼떨떨한 표정으로 잠시 굳어 있다, 다시 내게 고개를 돌렸다.


“맞아. 오늘 오후 반차 내고 왔어.”

“왜?”

“집을 좀... 치우려고.”


그러다 너를 만날 줄은 몰랐네. 영이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했다. 그가 바닥에 나뒹구는 휴지를 주웠다. 식탁에 맥주 자국이 있길래 그걸 치우려고 했어. 배터리가 부족한 줄은 알고 있었는데, 충전을 너무 늦게 해서 소용이 없었나 봐. 영이 휴지를 뜯고 간이 책상을 끌어왔다. 그 위를 닦는 영을 말리고 싶었다.


“너 맥주 너무 많이 마시더라.”

“나한테 그 말이 하고 싶었어?”

“되도록이면 버릴 때 캔 안을 세척해 줘. 안 그럼 냄새 나.”

“그냥 이러지 마, 영아.”

“맥주 캔 버리는 것 정도는 알아서 할 수 있잖아. 여러 번 알려줬는데.”

“이런 거 하지 마.”

“이부자리도 내가 갰어. 오늘 아침에 급하게 나간 것 같길래.”

“영아. 그냥 나를 돌보지 좀 마.”


그 말에 영이 책상을 닦던 걸 멈추고 빤히 바라봤다. 한 번 더 힘주어 말했다. 나를 돌보지 말라고. 무표정한 영의 시선에서 아무것도 읽을 수가 없었다. 그는 난생처음 그런 문장을 듣는 사람처럼 날 보고 있었다.


“정말 미안해. 지지난 주에 내가, 너무 심하게 말했어. 도둑질을 한다느니, 너한테 그럴 자격이 있다느니. 그런 얘기는 하면 안 됐는데.”

“그렇게 말하는 건 괜찮아.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게 충격이었던 거지.”


영은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리고 천천히 집을 돌아보며 답했다. 그의 가슴팍이 크게 오르내렸다.


“왜 그런 말을 들어야 했을까. 왜 나를 그렇게 여겼을까 생각을 많이 했어. 우연히라도 마주치면 물어볼 수 있을 것 같아서 매일 집에 왔는데 넌 없더라. 왔는데 눈에 보이는 게 집안 상태라서... 조금 치웠고, 오늘도 그냥 그렇게 치우다가 조용히 나갈 생각이었어.”

“어디서 지냈니? 본가로 갔어?”

“본가는 못 가. 거긴 이제 내 자리가 없거든. 안해연 건물에 숙직실이 있어. 거기서 지냈어.”

“그럼 너랑 나 사이에 무슨 일이 있는 줄 사람들이 알았겠네.”

“아니.”


나는 그의 앞에 쪼그려 앉은 채, 팔에 얼굴을 묻었다. 영의 목소리는 어항 속에 잠긴 듯 먹먹하게 들렸다.


“한아. 아무도 몰라. 우리 그러기로 했잖아.”

내가 원의 기억을 갖고 있는 거, 원이 자기 기억을 모조리 백업해 뒀던 거. 아무도 모르는 비밀로 하기로 했잖아. 나는 그걸 지켰어. 영이 쉼 없이 말했다.

“그래.”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제일 걱정됐어? 죽은 연인의 신분을 가져갔던 안드로이드와 함께 사는 게?”


고개를 저었다. 영이 잠시 입을 다물었다.


“이런 거 이제 하지 말라는 말은, 그러니까 네가 원이를 뺏었다고 단정하고 소리 질렀던 이유를 말할게. 나는 아직 원이가 그리워. 보고 싶어. 너무 보고 싶어서 말도 안 되게 너한테 원이를 덧씌웠어. 원이 기억을 저장하겠다는 너한테, 그러라고, 허락하고 나선 모든 게 괜찮을 줄 알았어.”


여전히 무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영을 찬찬히 훑었다. 빨간 머리, 원이 입던 니트, 겉옷과 못 보던 바지. 언제 샀는지 모를 반지가 끼워진 검지. 원의 형상을 한 영을 마주 봤다.


“네가 나를 돌보는 것도, 네가 원의 대체라서 마땅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 원이는 그랬으니까. 나한테 너는 동등하지 않았고, 실은 원이의 기억을 너한테 심겠다고 고민했던 순간부터 우리는 기울어진 관계였던 것 같아. 그걸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네가 잡지 인터뷰를 한 이후로 자꾸 스스로의 생각을 펼치는 너를, 원은 과거의 인물인 양 말하는 너를 견딜 수가 없었던 것 같아.”


모든 순간 원을 떠올렸다. 그의 머리카락을 땋아주던 것, 능숙하게 화장실 청소를 하고, 장난스럽게 내게 물을 뿌리던 모습, 바짝 말라죽어가는 사람의 모습을 하고서도 저녁만 되면 내 품으로 파고들던 원. 내가 사랑했던 원. 나한테선 자꾸만 잊히는 원.



“이제 와서 정말 미안하지만, 진짜 너무 미안해, 그렇지만, 너는 걔가 아니라서 걔랑 똑같이 행동하는 너한테 같은 마음과 행동을 기대하게 돼. 그게 스스로 너무 버거워. 동시에 외면하고 싶어.”


사소한 다툼이 말싸움으로 번지면 늘 원이 먼저 눈물을 쏟았다. 참아지지 않는 눈물을 닦으며 뒤를 도는 원의 등을 감싸 안으며 화해를 했다. 하지만 더는 그런 원은 없었다. 영은 울지 않았고, 울 수 없었고, 나는 그의 허리를 안을 때마다 벽을 느꼈다.

영은 잠자코 내 이야기를 들었다. 말이 끝난 이후, 억지로 눈물을 참느라 입술을 씹는 나를 보던 영이 작게 중얼거렸다. 입술 뜯지 마. 깊은 생각에 빠진 듯 영이 한참 벽을 응시했다.


한아. 실은 나도 울고 싶어. 그렇게 집을 나가고선 너무 울고 싶은데 그럴 수 없어서 얼마나 괴로웠는지 몰라. 영이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네가 불편하면, 의 기억을 바탕으로 행동하지 않을게. 머리카락 색도 바꾸고, 완전히 기억을 지운 것처럼 행동할게. 그 정도 구분은 나도 할 수 있어. 하지만 너를 챙기지 말라는 말에 약속은 못 해. 그건 원이의 기억 때문에 그러는 게 아니거든. 원이의 신분을 갖고 도망쳤을 때, 어디로 향해도 환영받지도 못하고 떠돌았을 때, 나도 사람들한테 이런 보살핌을 받았어. 나는 그냥 배운 대로 너에게 해줄 뿐이고, 그건 원이도 마찬가지였을 거야.


그런데 말이야. 내가 느끼기에 너는 길을 잃은 것처럼 느껴져. 상실은 극복하는 게 아닌 것 같아. 곁에 둔 채 사는 거지. 나도 원이를 잃었어. 원이를 생각하면 나는 어떤 방식으로 애도해야 하는지 조차 모르겠어.


영이 내 무릎을 바라보며 조용히 손을 맞잡았다.


우리, 어떻게든 갈피를 잡을 때까지 같이 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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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