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 중 아픈 순간, 참을까 멈출까? 통증의 의미
'아.. 이런.. 또 말썽이네. 이번 바퀴까지는 어떻게든 돌아보자.‘
남산 북측순환로를 달리고 있었다. 왼쪽 무릎 바깥쪽이 아파오기 시작한다. 겨우내 오른쪽 무릎 통증으로 고생했던 나다. 조금 좋아졌다 싶었더니 이젠 왼쪽이 말썽이다. 힘이 툭툭 빠진다. 30km를 달리기로 한 약속인데 9km 달리고 시작된 통증. 직감이 멈추라고 말하고 있다. 작년 겨울, 이런 고통에도 참고 뛰었다. 덕분에 통증과 많이 친해졌고 그는 내 곁에 오랫동안 머물렀다. 이번엔 그렇지 않기로 마음먹는다. 나는 과감하게 멈추고 함께 달리던 친구를 응원하기로 했다. 멈추고 나니 생각에 공간이 생겼다. 참 날 오래 괴롭히고 있는 이 통증이라는 녀석은 어떤 녀석일까? 떠오르는 생각을 그저 따라가 보기로 했다.
'지금 내게 통증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가장 먼저 다가온 생각의 조각. 하나의 생각이 뒤따른다.
'그럼 과거엔 내게 통증이란 무엇이었을까?'
통증은 내게 두 가지로 다가왔다. 첫 번째 내가 공부해야 할 것. 두 번째 나를 괴롭히는 것.
나는 이왕 트레이너가 되는 거 최고가 되고 싶었다. 체대 중에선 최고로 꼽히기도 하는 경희대 스포츠의학과를 나왔다. 이왕이면 '재활'트레이너가 되었으면 했다(지금은 재활이라는 단어를 싫어한다.)*. 다이어트, 근육량 증가를 다루는 트레이너들보단 특별해 보였기 때문이다. 재활을 하려면 통증을 알아야 했다. 좋은 재활 트레이너는 빠르게 통증을 잡아내는 트레이너라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통증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빨리 없앨 수 있다고 생각했다.
'통증은 실제적·잠재적인 조직 손상과 연관된 불쾌한 감각적·감정적 경험이다.' 세계적인 통증학자들이 모여 만든 통증의 정의다. 조직 손상과 연관된 불쾌한 경험이 통증인 것이다. 쉽게 말하면 통증은 경험이라는 것이다. 경험을 떠올려보자. 같은 사건이 벌어져도 사람마다 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럼 이걸 통증에 빗대어 보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윽!' 하는 자극이 들어오면 무조건 '윽!' 하는 통증이 찾아오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조직 손상 그리고 자극이 통증이라는 결과로 가는 길목에 수도 없이 많은 변수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런 복잡함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통증의 생물심리사회 BPS 모델이다. 통증은 생물학적 Biological, 심리적 Psychological, 사회적 Social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우리 몸의 영향, 마음의 영향, 그리고 외부의 영향을 받아 통증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참 복잡 미묘하지 않은가? 그래서 공부하다가 힘이 많이 빠졌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내가 세우는 가설이, 내가 한 운동 중재가 핵심을 찌르기보단 어떤 영향 요인의 극히 일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방향을 틀었다. 필요하다면 재활을 하지만 운동 자체를 더 잘 가르치는 트레이너가 되자고 마음을 먹었다. 그게 더 내가 끼치는 영향이 확실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쁜 녀석'. 통증에게 내가 처음 주었던 꼬리표였다. 내 운동을 멈추게 했던 녀석이니까. 중학생 때 유도를 그만두게 했던 허리 통증, 고등학생 때 입시를 망치게 했던 햄스트링 파열과 통증, 대학생 때 야구를 할 때마다 발목을 잡았던 팔꿈치와 왼쪽 무릎 통증, 파워리프팅을 할 때 앉을 때마다 뜨끔하게 만들었던 고관절 통증, 그리고 겨우내 나를 괴롭혔던 무릎 통증 등. 뭐든 내 운동을 멈추게 했다.
내 통증뿐만 아니다. 회원님들의 통증도 내겐 너무나 나쁜 녀석이었다. '쌤 아파서 한 달만 쉴게요.', '쌤 오늘 여기 아픈데 쉬어도 될까요?' 통증은 우리를 계속 멈추게 만들었다. 생각도 부정적으로 만들었다. '이 운동 나한테 안 맞나 봐.' '나는 평생 아플 인생인가 봐..' 그 부정성은 또 통증을 만들었다. 신경 쓰이고 짜증 나게 하고, 그것은 예민도를 높이고, 우리가 자극을 너무 과하게 해석하게 하고 그렇게 통증이 또 생기고. 통증은 내게 악의 순환고리를 만드는 인생의 악역이었다.
'지금 내게 통증은 어떤 의미지?'
다시 생각은 현재로 되돌아온다. 왼쪽 다리에 푹푹 빠지는 힘, 괜히 올라오는 것 같은 뒤쪽 허벅지 근육들은 내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고 있을까? 괜히 오래 내 몸에 남아 있을까 두려운 마음이 보인다. 하지만 더 크게 느껴지는 점들은 꽤나 긍정적이다. 지금 내게 통증은 전과 같이 하지만 다른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첫 번째, 통증은 나를 알게 해 준다. 두 번째, 통증은 나를 멈추게 한다.
'윽!'하고 통증이 올라오면 나를 돌아보게 된다. 예전 같았으면 짜증부터 냈을 것이다. 하지만 짜증내면 흥분되고 통증에 더 민감해지는 결과만 불러온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요즘은 다르게 생각해 본다. 운동 시 통증과 연관된 가장 큰 요인은 개인적으로는 운동량이라고 생각한다. 절대적인 운동량이 많아지면 내 몸이 견디지 못하고 통증으로 아우성치는 것이다. '윽!' 소리가 나면 '나 지금 좀 운동 줄여야 하는구나.'를 먼저 떠올린다. 그다음은 '균형과 자세'를 떠올리게 된다. 좌우의 균형, 앞뒤의 균형, 겉과 속의 균형 등이 지금 무너졌음을 통증을 통해 깨닫는다. 균형이 무너졌고 지금 자세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좋지 않은 자세로 몇천 번, 몇만 번 다리를 내딛고 구르다 보니 아픈 것임을 알게 된다. 이는 내 몸에서만 느껴지는 앎은 아니다. 회원님들께서 통증을 느끼고, 통증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선생님 저 여기가 아파요.' 할 때마다 운동량, 균형과 자세를 떠올린다. 회원님께서 절대적으로 운동을 많이 하고 있지는 않을까 돌아본다. 일상에서 많은 짐을 지고 있는데, 운동에서도 너무 많은 짐을 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균형이 맞지 않은가를 확인해 본다. 허벅지 앞이 뒤보다 너무 강한 것은 아닐까? 등의 힘이 너무 없어 가슴 앞쪽만 너무 자기주장이 강한 것은 아닐까? 오른쪽으로만 서 있어서 왼쪽으로 서는 방법을 잊은 것은 아닐까? 그렇게 해서 지속적으로 좋지 못한 자세를 만들어 내 우리 몸 어느 한 군데에 큰 부담을 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떠올려보고 조언을 드린다. 회원님들도 통증을 통해 '나'를 알기 바라는 마음이다.
'참고 달리자. 참고 하자.'
이전에 내가 가지고 있던 마음가짐이다. 매번 100%이고 싶던 마음이었다. 하지만 이젠 다르다. 내 머릿속에서 통증과 힘듦의 구분이 끝나고, 통증임이 명확해지면 과감히 멈추고 다음을 기약한다. 통증은 알람이니 말이다.
'야 멈춰!'
라고 말하는 경적이니 말이다. 야구할 때 이 신호를 무시했다. 그렇게 30대에 접어든 내 양 어깨는 아직도 불편함을 자주 느낀다. 겨우내 불편했던 무릎도 통증이 처음 소리를 냈을 때 무시하고 달렸다. 그렇게 내 오른 무릎은 4개월 동안 소리쳤다.
'멈추던지 조치를 취하던지 둘 중 해라 이 녀석아.'
처음 소리쳤을 때 쉬거나 했으면 좋았으련만 2달 정도는 그냥 달린 탓에 병원비도 많이 지불하고, 보강운동도 오래 했어야 했다. 이제는 이러고 싶지 않다. 아플 때 멈추면 자존심 상하는 것은 잠시지만, 아프더라도 계속 달리면 내가 좋아하는 것을 오래 불편하게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그래서 이젠 멈춘다. 그리고 주변도 멈춰 세운다. 아프면 조금 쉬어보거나 대안을 찾아서 다른 방향으로 진행하자고 말한다. 높은 무게를 드는 운동을 할 때 아프다면 조금 무게를 줄여서 진행해 보자고 말한다. 대신 그동안 평소에 소홀했던 유연성, 가동성, 심폐 능력을 길러보자고 말한다. 그리고 조금 괜찮아짐을 느꼈을 때 다시 내가 좋아하는 운동으로 돌아가보기로 한다. 그렇게 통증과 멀어진 뒤에 다시 걸어가 보도록 한다.
'언제쯤 오려나..?’
떠나보낸 친구가 언제쯤 1바퀴를 더 돌고 도착하나 싶어 가볍게 걸어 마중을 나간다. 1km 정도 걸어갔을 때 친구가 나타났다.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길, 같이 달려본다. 아니나 다를까 통증 신호는 다시 나를 멈춰 세운다. '네 햄스트링 지금 힘들어 이 친구야. 더 가면 알지..?' 예전 같았으면 많이 좌절했을 나. 하지만 이젠 통증이 가져다주는 메시지를 안다. 3일 간 고생했다고 말하는 위로의 알람, 이제는 조금 휴식해 주고 다시 달려 나가라는 신호임을 알기에 멈춘다. 오늘의 달리기는 여기서 끝. 하지만 통증 덕분에 내일 혹은 모레에 기분 좋게 달릴 나를 상상하며 장충동으로 족발을 먹으러 간다.
*재활은 치료 계통에서 쓰는 용어다. 트레이너들에게 재활이라는 단어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치료, 재활이라는 용어를 트레이너들이 남용하는 것이 물리치료사들과 트레이너의 분쟁을 조장했었다. 나는 싸움보다 협력을 원한다. 그래서 이 단어를 내가 사용하는 것을 선호하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