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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거운 사라 Jun 22. 2021

[소설] 이십대 여자, 기자 (3)

연재소설 제 3화

#3          




노 부장님이 점심 먹자며 법원 앞으로 불렀다. 식당에 들어가니 네 명 상차림이 된 방으로 안내했다. 이어 두 명의 남성이 들어왔다.     


“권변! 잘 지냈는가.” 노 부장이 권 변호사라는 사람과 악수하며 인사한다. 


“노 부장님은 여전하십니다. 오늘은 아름다운 분을 소개해주시는 겁니까?” 

권 변호사라는 사람이 나를 보며 물었다. 


“여기는 내 새끼. 한 기자야. 잘 부탁해. 여기 두 분은 잘나가는 변호사분들이다.” 

부장이 서로를 소개해줬다. “안녕하세요. 한 니나 기자입니다.” 


명함을 건네며 인사했다. 보자 하니, 권 변호사는 부장님 지인이고 조금 젊은 남자는 지난번에 삼거리에서 브레이크 안 밟고 사고 낼 뻔한 횡설수설하던 차주다. 

     

노 부장과 권 변호사가 대화한다. 나랑 차주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대화를 듣는다.     


“다들 앉자고. 식사는 주문해 놓았네.”


“노 선배. 한 기자는 어디서 데려왔어요? 선배 능력도 좋아. 이렇게 젊은 기자도 데리고 있고.”

“어디서 데려오긴 회사에서 뽑아서 내가 데려왔다. 나는 이제 젊은 기자 가르치기 늙었다는 거냐.”

“선배도 참. 이제 편히 일하셔도 되는데 하는 말입니다.”

“편해. 얘가 알아서 잘해.” 나를 가리키며 하는 말이다. 

“반주 한 잔 하시죠. 이 집 인삼주를 직접 만들어요.”

“요즘 치과 다닌다. 술 자제해야 해.”

“그럼 요즘 술 끊으신 거예요?”

“끊기는. 저녁에 마시지.”

“허허허. 그럼 맛만 보세요. 인삼주 맛이 깔끔해요.”     

권 변호사는 식사를 내오는 직원에게 인삼주를 주문했다. 밥이 다 차려지기 전에 모두 한 잔씩 건배했다.

     

“자, 오늘 처음 본 한 기자를 위해 한 잔!”

“감사합니다.” 나를 위해서라니 민망하다. 입을 옆으로 찢으며 웃어 보이며 인삼주를 삼켰다. 모두 잔을 비우니 잠시 침묵이 찾아왔다. 그때, 차주 정선우가 말을 꺼냈다.


“한 기자님. 우리 처음 보는 거 아니죠? 이제야 정식으로 인사하네요.” 

이 녀석. 이런 자리에서 아는 척하면 어쩌란 말이냐. 들러리로 왔으면 조용히 밥이나 먹고 가야지. 굳이 나까지 주목받게 하다니.

     

“둘이 앞면이 있어? 어디서?” 

노 부장이 권 변호사가 말을 꺼내려 입을 열자마자 선수 치며 묻는다. 목소리 톤이 조금 낮다. 좋은 신호는 아니다.     


“한 기자님은 기억 못하시려나. 제가 지난번에 운전하다가 한 기자님 칠 뻔했거든요. 그때 바쁘신지 괜찮다고 서둘러 가더라고요.” 정선우가 말했다. 나는 놀란 척해야 했다. “전혀 몰라 뵀어요. 눈썰미가 좋으시네요.” 괜한 관심을 받는 상황에 최선은 모른 척하기다.     


“그랬어? 고담시가 참 좁아. 잘못해도 다 나중에 만나게 돼 있다니까.” 권 변호사가 말했다. 노 부장은 나를 보며 “너는 왜 기억 못하냐? 기자가 돼서 눈썰미는 네가 더 좋아야지.”라며 한결 가벼운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곧 “걸어 다닐 때도 조심하고 다녀.”라고 말하는 거 보니 괜한 오해 사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거 같다.   

   

“정변. 우리 기자를 차로 치려고 했는데 합의도 안 보고 그냥 갔어? 변호사가 그래도 돼?” 노 부장이 농담조로 정선우에게 말한다.


“노 부장님 식구인 줄도 모르고 제가 실례가 많았습니다.” 정변이 받아치고 노 부장도 계속 장난을 멈추지 않는다. “둘이 합의해. 얼른.” 나는 그저 웃음으로 호응할 뿐이다. 말은 정변과 노 부장만 한다.     


“제가 다음에 식사 대접 제대로 하겠습니다.”


“식사로 되겠어. 정변이 빚진 거야. 잘 도와줘.” 노 부장이 알아서 합의를 본다. 도와주란 얘기는 필요한 정보를 달라는 말이다. 법원, 검찰 동네 소식은 출입 기자와 다르게 조금 다른 분야의 정보는 변호사들이 빠르다. 내 얘길 빌어 결국 일에 대한 협조다.     


“합의했으면 정변이 한 기자님 한 잔 따라드려.” 권 변호사가 술을 권한다.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니 연거푸 정선우와 세 잔을 마셨다. 그리고 넷이 건배를 두어 번 하고 나니 밥 먹으면서 남은 술을 다 마셨다.    

 

노 부장과 권 변호사는 부동산 얘기를 나누더니 식사를 마치고도 계속 이어갔다. 식당에서 나와서도 둘이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는지 노 부장은 나에게 일하러 가라고 일렀다. 그 자리에서 인사를 나누고 먼저 고담시청으로 향했다.     


고담시청 근처 카페에 가서 커피를 시키고 노트북을 켰다. 홍 선배가 PC톡을 보냈다.     


- 어디야? 밥은 먹었지?

- 시청 옆에 흡연 카페요. 밥 먹고 커피 땡겨서.

- 그래? 나도 믹스커피 싫어서 커피 안 마셨는데. 혼자야?

- 네. 어디신데요?

- 밥 먹고 이제 파했어. 일하려고. 거기 가서 일해도 되고.

- 그럼 여기 오세요.     


홍 선배가 커피를 들고 내 앞자리에 앉는다. “점심은 잘 먹었어? 누구랑 먹었는데 밥만 먹고 왔어?” 나는 타이핑을 멈추고 홍 선배 쪽으로 어깨를 빼 다가갔다. “노 부장이 변호사 후배 소개해준다고 해서 식사하고 저는 일해야 하니까 바로 왔어요.” 쭉 뺀 턱에 손을 괴고 대답했다. 선배도 의자를 끌어당기면서 말했다.     


“아 권 변호사?”

“네. 그리고 다른 후배 변호사도 나왔어요.”

“그래. 노 부장님 법대 출신인 거 알아? 대학교 후배야.”

“몰랐어요. 그래서 후배구나. 선배는 무슨 과 나왔어요?”

“나는 국어국문학과 나왔지.”

“선배 이미지랑 어울려요.”

“이미지가 어떤데?”

“그냥 깔끔하고 인문적이랄까. 그냥 잘 어울린다고요.”

“나 대학 때 같은 과 애들 별로 안 깔끔했는데. 나도 그렇고. 평범하거나 가끔 특이한 애들 있고 그랬지.”

“그럼 선배는 평범에 속했어요, 아님, 특이한 사람에 속했어요?”
 “난 평범했지. 지금도 평범하잖아.”

“그건 그러네. 재미없다, 선배.”
 “그래서 내가 재미있는 사람을 좋아하잖아. 재미는 네가 있지.”

“아, 오늘의 이야기거리가 있죠.”

“무슨 일인데?”

“오늘 같이 식사한 권 변호사 후배를 지난번에 마주친 적 있거든요. 나 신호에서 걸어가는 데 그 사람 차에 치일 뻔했어요. 나는 모른 척하고 앉아있는데, 그 사람이 아는 척을 먼저 하는 거 있죠. 노 부장님도 있는데.”

“권 변호사 후배면 그 사람도 변호사야?”

“네 같은 사무실 변호사인가 봐요. 짧게 정변이라고 말할게요. 대뜸 앞면 있다고 식사자리에서 말하니까 민망했죠. 다들 놀라고. 분위기 나한테 쏠리잖아요.”

“그래도 희한하다. 어떻게 그렇게 또 만나냐. 너도 아는체 했어?”

“아뇨. 모른 척했죠. 분위기 더 집중될까 봐. 그냥 놀란 척하고 있었어요.”

“잘했네. 노 부장과 권변이 만든 자리인데, 화제가 네가 되면 곤란하지.”

“그 정변이란 사람은 잘생겼어? 나이는 얼마나 먹었는데?”

“나이는 서른 중반으로 보여요. 깔끔한 외모이긴 한데, 키가 작더라고.”

“괜찮으면 만나봐. 우연치곤 잘 겹쳤잖아. 연락처 주고받았을 거 아냐.”

“에이, 노 부장 아는 사람인데 엮여서 뭐가 좋겠어요.”

“뭐 어때. 노 부장 후배의 후배인데. 변호사에다가. 만나면 재밌는 이야기가 생길 거 같은데.”

“내가 만나볼까 하는 것도 김칫국 마시는 거다. 선배.”     


홍 선배는 내 사적인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한다. 특히 성적 활동에 대해 서로 공유하는 사이다. 홍 선배는 내게 새로운 상대가 생길 수도 있을 거라고 은근히 떠보는 거다.               


- 식사 때 뵀던 정선우입니다. 조심히 잘 들어가셨나요?

아까 당황스러우셨죠. 저도 당황했는데, 이렇게 알게 되어 반가워요.      


퇴근 무렵 정변에게 문자가 왔다. 생각보다 빨리 연락해왔다. 신경 쓰이긴 했지만 내가 연락하기 머쓱했는데 먼저 연락이 와서 다행이다.      


- 네. 고담시가 참 좁죠? 우연이 겹치니 저도 신기하고 반가웠어요.     


이제 만나자고 문자를 해라. 커피값이라도 갚고 싶다고 해라. 이렇게 먼저 연락이 온건 역시 신경 쓰이니까 한 거다. 문자로 끝나는 게 더 이상한 일이다.     


[아메리카노 한잔 쿠폰이 선물 왔습니다.]


커피 기프트 메시지를 보내왔다.     


- 커피 좋아하시죠?

- 좋아하죠. 고마워요. 잘 마실게요.     


설마 커피 쿠폰으로 때우려는 건가? 이렇게 정변은 떠나가는가. 만나서 커피를 마시자고 해야지. 커피 쿠폰을 보내? 아무래도 노 부장이나 권변 중간에서 알게 된 사이이니 적극적으로 만날 수는 없는 건가. 한참 답장이 안 온다. 아쉽다가 안달나기 시작했다. 퇴근해도 되는데 집으로 향하지 못하고 컴퓨터를 두들긴다.     


‘신경 쓰지 말자.’     


- 퇴근하셨나요?


포기하려고 속삭이는 순간 정변 문자가 도착했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만남을 유도해보자.     


- 네. 이제 하려고요. 정 변호사는 바쁘셔서 퇴근 시간이 대중없죠?

- 바쁠 때는 그렇죠. 오늘은 일찍 퇴근해요.


 ‘나이스!’     


- 저녁이 있는 하루네요. 대신 차가 막히는 시간이지만....... 사는 곳은 먼가요?

- 가까이 살아요. 오늘은 선비동에서 선약이 있어서 가요. 푹 쉬는 하루는 아니네요.     


창피하다. 내가 만나자고 유도한 게 훤히 보이는데 거절당했다. 이제 진짜 신경 쓰지 말자.     


- 내일 점심이나 저녁에 시간 되세요? 제가 밥 한 끼 대접해야죠. 아까 선배님들도 그러셨잖아요.

- 점심은 선약이 있고, 저녁은 오후에 미리 일정보고 다시 연락드릴게요.     


그래도 내일 보잔다. 희망적이다. 혼자 속으로 포기가 빨랐다. 내일 저녁에 만나면 된다. 오히려 잘됐다. 성급한 마음도 가라앉을 거고, 옷이나 화장도 신경 쓸 수 있다. 오늘 검정 브라에 민트색 삼각팬티를 입었었는데 다행이다. 




- 이후 [이십대 여자, 기자.] 4화가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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