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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거운 사라 Jul 03. 2021

[소설] 이십대 여자, 기자 (4)

연재소설 제 4화

#4          




“사람을 새로 하나 써야 하나. 일손이 부족해.” 홍 선배는 이석규 부장과 인터넷신문을 운영한다. 사무실은 1.5룸 형태로 사무실 안에 또 다른 방이 있다. 그 방이 우리 아지트다. 이 부장은 주로 광고 일을 맡아 같이 일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리고 아지트 방은 흡연공간이라 비흡연자인 이 부장은 밖에 있는 사무실을 사용한다.      


“하긴, 편집이며 취재며 거의 홍 선배가 하시니까 힘드시죠. 보도자료라도 처리할 사람이 있으면 수월하죠.” 다들 눈은 홍 선배를 향하는데 입을 다물고 있어서 장단에 맞춰 거들었다.     


“편집일도 돕고, 보도자료 돕고, 총무 일도 할 만한 다능한 인재가 필요한데 말야. 알바 광고라도 올려야 하나?” 홍 선배가 말에 김 선배가 끼어들었다. “선배 아무리 그래도 그런 걸 맡기는데 알바는 좀 그렇죠. 양심이 있으면 직원 뽑아야지!”     


“어차피 알바나 직원이나 임금 차이는 별로 안 나요. 근로계약서도 둘 다 쓰는 거고, 별 차이 없는데 이런 경우는 사실 이름 차이죠. 이왕이면 직원이 나은 게 작은 사업체니까 정부에서 지원하는 사업도 있을 거고. 총무든 편집이든 기자든 선배 원하는 대로 뽑으셔요.” 나는 항상 오지랖을 부린다. 그래도 쓸모 있어 보이는 게 좋다.     

“나도 지원 사업 들어봤어. 다들 신입사원은 그렇게 고용하는 거 같더라? 역시 한 기자가 똑똑해. 난 그거 생각도 못 했네.” 홍 선배는 누구에게나 호의적이고 상대를 대할 줄 안다. 그래서 우리 모두 홍 선배 주축으로 모여 있는 거 아닌가.     


“그런데 기자를 뽑는 게 나을걸요. 부담스러우면 수습기자로. 신문지 뽑는 것도 아니고 편집 멤버가 꼭 필요한건 아니잖아요? 수습기자한테 이것저것 가르쳐주면서 이것저것 시키세요.” 나는 지금 고용자 입장에 맞춰서 말하고 있다. 어쩌랴. 나는 노동자라 노동자 편이고, 약자편이지만 그것도 상황에 득에 맞게 행동해야 하는 거지. 내 신념을 이연사 외칩니다, 할 수도 없으니 말이다.     


“수습기자 데려와서 가르치는 게 더 일이야. 한 기자 현재 월급대로 줄 테니까 네가 올래?” 홍 선배가 농담조로 말한다. “신입보다 제가 더 힘들게 할걸요. 노부장님한테 툭하면 혼나는 거 아시잖아요.” 내가 답했다. “너 데려오면 내가 노 부장님한테 혼나.” 노 부장이 이 동네 오래 있다 보니 왕선배 축에 든다. 홍 선배의 선배이기도 하고 둘은 사이가 좋은 편이다. 그러니까 나도 홍 선배 사무실 오가는 게 가능한 거 아닌가. 

    

사용자인 홍 선배의 입장에서는 수습기자를 가르치는 게 투자이며, 일거리가 느는 것일 수 있다. 그런데 신입의 입장에서는 일을 배우면서 동시에 일을 한다. 조직에서 인력에게 투자만 행해지는 구조는 없다. 투자에 따른 결과 값 비율이 얼마인가의 차이다.     


고용노동부에서 취업을 늘리기 위해 사용자, 노동자 모두에게 조건 안에서 돈이 지급되는 사업이 있다. 노동자보다 사용자를 위한 사업으로 보이는 게, 어차피 기업은 필요한 노동자를 고용하는 거다. 거기에 조건 안에서 돈을 준다니 얼마나 좋은 제도인가. 저렴하게 노동자를 사용하는 거다. 그런데 대한민국 청년들 초봉은 얼마 안 된다. 고졸과 대졸의 차이점도 있지만, 대졸자는 넘쳐난다. 명문대(명문대라고 해서 취업과 고연봉이 보장되지도 않는다)를 졸업하지 않거나 특히 문과인 경우 별 소용이 없다. 학자금 빚을 진 채로 연봉 2천만 원(대부분은 이마저도 못 받는다)을 받는다고 가정하면 돈 모으기도 힘들고, 집세를 감당하지 못해서 부모님과 같이 살아야 한다.     


고용촉진을 위한 사업이지만 단편적이다. 지원금이 나온다고 해서 여러 명을 고용하지 않는다. 인력을 싸게 사용해서 좋을 뿐이다. 현재 백만 명의 청년실업이 크게 나아지지 않는 것과 오르지 않는 낮은 임금을 생각하면 그렇다.     


나는 노동자 입장에도 불구하고 사용자 입장에 맞게 홍 선배에게 사업 내용을 전했다. 지원 사업을 비판적으로 생각하지만 우습게도 입장에 따라 내용이 달라진다. 윗분들은 아마 지원 사업 참여가 증가하는 것만 보다가 뒤늦게야 장기적으로 취업안정이 안 되는 꼴을 보고야 말 것이다. 바로 나처럼 겉으로 비판하지 않는 사람들도 한몫하는 셈이다.      


“명색이 기사 편집이 가능한 사람은 최저임금보단 많이 줘야 할 텐데.” 홍 선배가 미간을 살짝 구기면서 말했다. “그럼 기자 뽑지 말고 직원으로 고용해서 파트타임 시켜요. 신문처럼 편집 일 하는 것도 아닌데요.” 내가 대꾸했다.     


“정직원인데 파트타임이 되나?” 홍 선배는 아까부터 내게 답을 듣고 싶은 모양이다. “되죠. 협의하고 근로계약서 쓰면 되는 거죠.” 간단한 문제다. “그래? 일단 이 부장한테 사람 좀 알아보라고 해야겠다. 한 기자 그 지원 사업에 대해 잘 알아?” 내가 심부름해주길 바란다. “인터넷 찾아보면 자세히 나올 거예요. 제가 찾아보고 프린트할게요.”      


나도 이 지원 사업 때문에 교육을 다녀오는 수고를 해봐서 알게 된 건데, 그곳에 모인 사람들과 대화해보니 회사에서 거의 반강제로 보냈단다. 하루 정도 회사에서 벗어나 시간을 보내니 그걸로 위안 삼는다고 했다.     


“홍 선배. 여기요. 사업자의 경우 이렇게 신청하면 되고요. 보면 아실 거예요.” 인터넷 검색은 그리 어렵지 않다. 홍 선배는 “역시 젊으니까 빨라.”라며 만족한 모습을 보였다.      


내가 젊어서 빠르거나, 인터넷을 잘 다루는 것도 아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컴퓨터 과목이 있었는데 나는 소프트웨어를 거의 다룰 줄 모른다. 설치항목이 뜨면 NO, YES 중에 클릭하고, 인터넷 포털이 잘 진열해 둔 대로 클릭해 볼 뿐이다. IT, 모바일 시대에 안 맞는다. 인류의 새로운 혁명에 못 따라가는 사람이 바로 나다.               

오늘은 모두가 고담시청 브리핑에 참석했다. 오랜만에 보는 기자 선배들이 많았다. 전에 같이 일했던 황민영 국장님이 나를 보더니 “한 기자. 점점 성숙해지네? (다른 기자들 보며)예뻐 지지 않았어? 이제 시집 보내야겠다.”고 다른 기자들과 눈을 마주치며 얘기했다. 황 국장과 비슷하게 여성적인 칭찬을 하는 사람도 있고, 조금 민망한지 다른 일적인 안부만 묻는 사람도 있었다.      


이 세계에는 겉으로 기자는 남녀를 가리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여자 기자에게 가하는 차별은 신랄하게 존재한다. 성적인 칭찬을 칭찬으로 듣지 않으면 다른 차별을 가격당할 때 더 힘들다. 대놓고 여자는 일찍 그만둔다, 결혼하면 끝이라고 말한다. 회사를 그만두면 유독 여자만 뒤에서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우는 비난이 난무하다. 게다가 여자 기자를 안주 삼아 성적인 뒷담은 정도가 없다. 일반적으로는 젊은 게 맛있겠다, 지난번에 입은 옷 속을 보여주려고 입은 거다, 출입처에 가서 끼 부린다, 남자친구 없다는 데 나랑 잘 기회가 없을까, 라는 둥 더 심한 상상력을 더해서 누가 먼저 여 기자를 자빠뜨릴 것인지, 어떤 식으로 남자를 다룰지 그들의 상상 속에서 여 기자는 이미 꽤 음란한 이미지가 돼 있다.     


나는 웃으면서 정말 칭찬받은 표정을 지었다. 능청스럽게 “저 원래 예쁩니다. 이제야 아시는 겁니까?”라고 대답했다. 어차피 뒷담은 막을 수 없는 일이지만, 당황하고 대처하지 못하면 날 더 우습게 본다. 얕보이지 않으려면 여유롭게 굴어야 한다. “너 요즘 말하는 자뻑이구나?” 황 국장이 웃어넘긴다. 이걸로 누구든 성적 칭찬은 끝난 거다.     


사실 황 국장은 어른이 젊은이에게 칭찬한다고 생각할 뿐, 성적인 뜻이 없었을 것이다. 황 국장은 전에 나와 한솥밥 먹던 사이고 언제나 어른으로서 나를 대했었다. 하지만 의도를 떠나서 누군가는 성적인 이야기로 듣는다.     


실제로 어른만도 못한 기자들이 많다(젊은이도 마찬가지다). 내 뒷담화를 전해 들은 적이 여러 번 있는데 뒤에서 성희롱하는 사람 대부분이 앞면은 있어도 잘 모르는 사람이다. 그들은 특히 내가 만만해보여서 성희롱하는 게 아니다. 여자는 성희롱 대상일 뿐이다. 나 이전에 많은 여 기자들이 성희롱 안주거리였다. 새로운 여 기자가 등장하면 어김없이 상상과 대화 속 노리개가 됐다.     


앞에서 성희롱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기자랍시고 겉으론 체면을 지킨다. 뒤에선 어마어마하게 욕하고 성희롱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뒷담화의 주인공을 알게 되면 큰 실망감이 들고 만사가 위축된다. 내게 잘해주신 분, 조언해주신 분, 도와주시는 분, 응원하시는 분이 뒤에선 영웅담인 양 상상을 빌려와 나를 성노리개로 씹어 먹는다는 건 모두가 잠재적으로 뒤에서 성희롱한다고 보게 된다. 내가 아무리 일하며 능력을 보여도 결국 여성 상품화 속에 갇혀 나올 수 없다는 게 얼마나 절망적인가.          




- 이후 [이십대 여자, 기자.] 5화가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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