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티샵에서 값비싼 수업료를 지불하고 배운 것
바디프로필이 한창 유행하던 적이 있었다. 그전까지 헬스를 하더라도 으레 몇 분할로 하더라 하는 것에 맞춰서 했지 부위 별로 몸을 만들겠다는 의지는 없었다. 다른 운동도 마찬가지였다. 그냥 재밌어서 했고 당장 이 동작에 내가 성공하느냐 마느냐, 이 무게를 내가 들 수 있느냐 없느냐에 집중했지 이걸 해냄으로써 내 몸에 어떤 변화가 생기느냐까지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내 기분 좋음이 중요했고 결과물로 남길 생각은 안 해봤달까. 그러던 중에 주변에서 운동 좀 한다는 사람들이 너도 나도 바디프로필을 찍기 시작했다. 뚜렷한 목표 없이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운동을 해오면서 방향성을 잃고 살짝 느슨함을 느끼던 나는 바디프로필을 새로운 목표로 삼아보면 좋겠다 싶었다. 운동도 좋아하고 사진 찍는 것도 좋아하는 나에게 딱이라는 생각이었다.
아무래도 바디프로필을 찍기 위해서는 내 몸을 분석해서 부위별로 보완을 해나갈 필요가 있었다. 그러려면 크로스핏보다는 헬스가 필요했다. 뒷심은 부족해도 시작은 망설임 없는 나. 바로 회사 주변에 피티샵에 등록했다. 대형 헬스장이 아니라 피티를 전문으로 하는 소규모의 헬스장이었는데 상담해 보고 운동이나 식단뿐만 아니라 재활에도 개념이 잡혀있는 분 같아서 등록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매일 운동을 갔다. 피티는 일주일에 두 번이었으나 피티가 없는 날에도 매일 개인 운동을 갔다. 그때 절실하게 느꼈다.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것도 매일 가야만 하면 즐겁지 않아 질 수도 있다는 것을. 가기만 해서 끝인 게 아니라 성과까지 내야 한다면 즐겁지 않은 것을 넘어 힘들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왜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중에 잘하는 일을 업으로 삼는 게 낫다고들 하는지를. 취미처럼 가서 내 기분 좋을 정도로만 깨작깨작 할 때와는 차원이 다르게 버거웠다. 회사 다니다가 그만 다니고 싶어지면 운동이나 업으로 삼아볼까? 하고 내심 생각했던 게 얼마나 안일한 생각이었는지 깨달았다. 운동이나? 치열하게 노력해도 될까 말까였다.
그렇게 매일 헬스를 해나가면서 내가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공부도 하면 할수록 본인의 부족함을 자각하는 것처럼 운동도 마찬가지인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나 스스로 느끼는 부분보다 피티선생님의 지적에서 오는 게 컸다. 오랜만에 헬스를 다시 하는 나에게 그의 존재는 절대적이었다. 작은 공간의 피티샵에서 내 자세에 대한 피드백을 해줄 사람은 선생님뿐이었고 그의 의견이 클 수밖에 없었다. 매일매일 자세에 대한 지적을 받으니 나중에는 자존감까지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원래 나에게 운동이란 다녀오면 기분이 좋은 것이었고, 그러려고 하는 것이었는데 이맘때쯤에는 운동만 다녀오면 우울해졌다. 나는 왜 배워도 자세가 잘 안 되는가, 왜 근육량이 잘 늘지 않는가, 왜 이렇게 체력이 부족한가, 나는 왜 이렇게 못하는가 등의 자책이 이어졌다.
그러다가 내 랫풀다운 자세를 보기 위해 찍었던 영상을 sns에 올리게 되었는데, 당시 소위 ‘헬스광’이었던 지인이 내 영상에 댓글을 달았다. ‘자세에 결점이 없다. 등운동 잘하네.’ 이 댓글을 보고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내가… 잘한다고? 생각도 해보지 못한 새로운 평가였다. 그 순간 내가 이제껏 한 사람의 평가에만 의존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잘하고 있어도 못한다고 해버리면 그만인 공간에서 말이다. 피티선생님의 입장에서는 잘한다 잘한다 해줘 버리면 회원들이 '아 나 이제 혼자 할 수 있구나'하고 재등록을 안 하는 문제가 있겠구나 싶었다. 그러니까, '너는 아직 못하니까 내가 필요해'라는 가스라이팅이 일종의 영업인 셈이라는 걸 퍼뜩 깨달은 것이었다.
가스라이팅을 하는 사람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것은 어렵다고 한다. 그저 도망치는 것이 최선일뿐. 나도 약속된 기간만 채우고 그 피티샵은 도망쳐 나왔다. 그곳을 나오니 무력감과 우울감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나는 그 후로 가족이든 배우자든 직장 상사든 한 사람과의 관계에 깊이 매몰되거나, 둘의 관계에서 상대방에게 지나친 권력을 주는 것은 자제하게 되었다. 불가피하게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야 할 때는 제삼자의 시선으로 멀찍이 떨어져서 바라보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 그 피티샵에서 값비싼 수업료를 지불하고 배운 것 중 그 어떤 운동 자세보다 더 의미 있는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