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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유체이탈이었을까

꼴찌를 향해 보내는 응원이 한계를 넘어서게 하다

by 배아리


크로스핏 와드는 크게 세 가지 방식이 있다. AMRAP, EMOM, For time. AMRAP이란 'As many rounds as possible'의 약자로 정해진 시간 안에 최대한 많은 라운드를 수행하는 방식이고 EMOM은 'Every minute on the minute'의 약자로 1분마다 특정 운동을 수행하고 남은 시간은 휴식하는 방식이다. 마지막으로 For time은 정해진 운동 세트를 가능한 한 빠르게 완료하는 훈련 방식이다. AMRAP은 내가 그날의 운동 난이도를 높게 설정하더라도 정해진 시간이 지나면 운동이 끝난다. EMOM도 몇 분 동안 EMOM을 하자는 식으로 정해진 시간이 있다. 문제는 For time이다. 다음 수업을 위한 타임캡이 있긴 하지만 어쨌든 그날의 운동 분량을 모두 해내야 끝난다는 게 원칙이다. 운동 능력이 떨어져서 좀 느리더라도 끝까지 해내야 한다. 이게 힘든 건 둘째치고 다른 사람들은 하나 둘 끝나는데 마지막까지 나 혼자 하고 있어야 하는 게 최대의 문제다.


하루는 For time 팀 와드에 로잉이 있는 날이었다. 노를 젓듯이 로잉머신을 당기는 것인데 전신운동의 일종이다. 팀 와드는 보통 비슷한 수준의 파트너와 팀을 짜서 난이도를 정하여 운동하게 되는데 그날은 사람이 별로 없어서 가장 초보자 분과 팀을 짜게 되었다. 팀을 짤 때 이미 곧 드리워질 내 어두운 미래를 직감했던 것도 같다. 하이파이브로 비장하게 의지를 나누고 열심히 번갈아가면서 와드를 했는데도 결과는 역시나 꼴찌. 게다가 어쩌다 보니 내가 마지막 주자가 되었다.


이미 와드를 끝낸 다른 사람들이 점점 내 로잉머신 근처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꼴찌를 위한 응원의 시간이다. 이럴 때는 외향형인 나도 식은땀이 줄줄 난다. 제발 이런 별 자랑스럽지도 않은 걸로 나를 주목하지 말아 달라고 외치고 싶은 심정이다. 이 상황에서 벗어나는 가장 빠른 방법은 내가 와드를 빨리 끝내버리는 것이다. 인간은 궁지에 몰리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한다고 했던가? 그 이후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나를 둘러싸고 파이팅을 외치며 박수를 치던 사람들의 소리가 아득히 멀리 들리고, 로잉머신 기계에서 난생처음 보는 기록을 봤던 것도 같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와드를 끝내고 바닥에 쓰러져 거친 숨을 내쉬고 있었다. 이거 혹시 유체이탈인가 싶을 정도로 몸이 붕 뜬 기분이었다. 러너스 하이는 들어봤는데, 로잉 하이라는 것도 있으려나. 죽을 만큼 힘든 것에 비례하여 막강한 도파민이 찾아왔다. 저녁 운동이었으니 잠들 때까지도 제정신이 아니었고 다음 날도 실실 웃으면서 일어났던 기억이다. 어쩌면 크로스핏의 꼴찌 응원 문화는 창피함을 원동력 삼아 자신의 한계를 깨보라는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 도파민 다시 한번 겪어볼 테냐 하면 한 번 경험한 것으로 족하다 하겠다. 너무 힘들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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