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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이도 모르면서 반말하세요?

한층 더 견고해져 가는 운동 만능설

by 배아리


크로스핏 박스를 새로운 곳으로 옮겼을 무렵이었다. 나는 퇴근을 조금 일찍 하고 주로 6시 타임 와드를 다녔다. 6시 수업은 정시에 퇴근하는 직장인들이 몰려들기 전이라 항상 인원이 한 대여섯 명 정도였다. 늘 오는 분들만 오시는 타임이라 주 1~2회 정도만 다니던 나도 그분들과 인사나 스몰톡 정도는 하고 지냈었다. 그런데 한 여자분이 나를 처음 볼 때부터 너무 자연스럽게 반말을 하는 것이었다. 크로스핏이 보통 외향형인 분들이 주를 이루는지라 보통 통성명하고 나이 물은 후에 내가 한참 동생이면 점점 말을 놓는 것은 종종 있는 일이긴 하다. 하지만 처음부터 나이도 확인 안 하고 대뜸 반말을 하는 건 운동 구력이 오래된 나도 흔히 겪는 일은 아니었다. 내가 30대 중반인데 그분은 한 40 초반 정도? 나랑 크게 차이가 안나 보였다. 그래서 ‘아니, 나도 나이 먹을 만큼 먹었는데 이게 뭐지?’하고 속으로 생각했으나 또 워낙 친절은 하셔서 그러려니 하고 말았고 그냥 그렇게 적응이 되었다.


하루는 여느 날처럼 그분과 6시 수업을 같이 듣고 나서 혼자 박스 근처 서브웨이에서 샌드위치를 먹고 있었다. 그런데 그분이 어떤 스무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애랑 들어와서 나에게 인사를 했다. 나도 인사를 하고 옆에는 누구냐는 눈빛을 보내니 본인 둘째 딸이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너무 놀라서 ‘네? 둘째 딸이요?’하고 거의 빽 소리를 질렀다. 도대체 몇 살이신 거냐고 물어보니 52살이시란다. ‘52살이라고요?!’ 나는 또 한 번 아연실색했다. 지금 눈앞에 본인이 52살이라고 주장하는 이 분은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나도 못하는 핸드스탠드 푸시업(물구나무서서 푸시업 하는 동작)을 열몇 개씩 해내지 않았었는가. 50대면 우리 엄마뻘인데 반말이 문제가 아니라 ‘야 너 인마’가 나와도 할 말이 없는 수준이었다. 그분은 웃으며 이 박스에 본인보다 나이 많은 사람이 없다고 했다. 내가 그때 왜 반말하시는 거냐고 물었다면?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그만 등골이 못내 서늘해졌다.


집에 가서 친구들에게 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맛깔스럽게 풀어내자 여기저기서 무슨 시술을 받는지 꼭 물어봐달라는 요청이 쇄도했다. 그것은 나도 역시 궁금한 부분이었다. 그래서 박스에서 다시 만났을 때 잽싸게 물어봤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시술은 받은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럼 동안의 비결이 뭐라고 생각하는지 물어보니 아무래도 운동을 오래 해서 그런 것 같다고 답하셨다. 과연 그러고 보니 확실히 시술만으로 했다기엔 설명할 수 없는 반짝이는 생기가 있었다. 본인의 몸을 챙기고 거기서 오는 체력을 바탕으로 원하는 삶을 살아나가는 인간 특유의 생기와 총기 있는 눈빛. 젊게 산다는 말은 이런 분을 두고 하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저속노화가 유행인데 역시 운동의 지분이 크나 크다는 걸 다시 한번 느끼는 계기가 되었다. 이렇게 '나의 운동 만능설'은 한층 견고해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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