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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선배 h가 운동 메이트가 되기까지

운동의 세계로 인도하는 즐거움을 느끼다.

by 배아리


h는 내 회사 선배였다. 심플하게 회사 선배라고 칭하기에 당시에는 직급 차이가 꽤 났다. 나는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신입이었고 그녀는 다른 팀의 팀장급이었으니. 그때는 회사에 대한 개념이 별로 없고 해맑았던 터라 그냥 선배들도 동네 언니 오빠들 같았던 때였다. h는 대체로 기운이 없어 보이고 초점이 흐렸다. 회사에서는 스트레스받을만한 상황에 놓여있어 늘 버거워 보였다. 술 마실 때만 신나 했다. 그녀는 체구가 작았다. 하얗고 마른 데다가 생기도 없어서 꼭 인형 같았다. 162cm에 47kg. 날씬한데도 체중을 재서 500g만 찌면 곡기를 끊고 방울토마토만 먹는다고 했다. 마치 체형 관리에 무지했던 예전의 나를 보는 듯했다.


그녀와 친해진 건 물류 센터로 출장을 갔을 때였다. 어쩌다 보니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옆자리에 앉게 되었고 나는 운동 얘기를 꺼냈다. 아무리 말라도 군살 있는 거 나도 안 먹어봤는데 그걸로는 안되더라. 근력 운동을 해야 몸의 쉐입이 잡힌다고 열변을 토했다. 당시는 거의 10년 전이라 여자가 근력 운동을 한다는 개념이 생소할 때였다. h는 반신반의하면서 듣다가 이내 관심을 보였다. 어두운 버스에서 그녀의 눈이 반짝이던 게 아직도 기억난다. 실행력 하나는 끝내주는 그녀는 당장 내가 다니던 크로스핏 박스에 등록했다. 그렇게 h와 나는 운동 메이트가 되었다.


회사 선배와 운동을 다니는 건 나한테는 꽤 이득인 일이었다. 그 당시 우리가 다니던 회사는 지금처럼 칼퇴하는 경우가 잘 없었다. 신입이었던 나는 사실 운동을 가보겠다고 선배들보다 먼저 칼퇴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h는 퇴근 시간이 되면 운동 가자고 내 자리로 나를 데리러 왔다. 그녀는 내 상사보다 짬이 높았다. 동기들은 아무도 못하고 있는 퇴근을 h와의 친분을 앞세워 혼자 하는 기분은 짜릿했다. 아아, 이것이 권력의 맛인가? 나는 마냥 좋기만 했던 것 같다. 나중에서야 안 사실이지만 내향형이던 그녀는 그 당시 나와 심적 거리두기 중이었다고 했다.


나도 h도 크로스핏을 함께 하며 몸이 잡혀갔다. 사실 크로스핏을 시작하고 나서는 몸은 둘째치고 그냥 운동 자체에 빠져들었다. 같이 운동하고 먹는 저녁은 꿀맛이었다. 가끔 맥주까지 곁들이면 이 맛에 사는 거지 싶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녀에게 h대리님이라고 불렀다. 어느 날 그녀가 대리님이라고 부르지 말고 언니라고 부르라고 명령(?)했다. 너 때문에 다른 사람들까지 대리님이라고 부른다며. 그래서 h대리님은 h언니가 되었다. 말을 놓은 건 언젠지 기억이 안 난다. 그 무렵에 스멀스멀 놨겠지.


h는 나로 인해 운동의 세계에 입문해서 서핑까지 헤비하게 즐기게 되었고, 이내 회사도 그만두게 되었다. 내가 그녀의 인생을 바꿔놨다고 했다. 자존감도 높아졌다고, 고맙다고 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타인의 인생에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짜릿하고 그 무엇보다 뿌듯한 일인지 알게 된 것이. 그리고 언젠가 이런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고 꿈꾸게 된 것도. h가 전한 감사는 몇 년간 내 마음속 한편에 웅크려있다가 이제서야 운동에 관한 글을 쓰게 하는 근원이 되어주었다. 나 역시 그녀에게 감사를 전하며, 이제는 나의 독자들에게 운동의 즐거움을 알리고 싶다. 단 한 명이라도 내 글을 읽고 운동을 하게 된다면 나는 더없이 행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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