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챙이 시절 건너뛰고 바로 개구리가 된 사람들
한동안 나의 재능이 무엇일까 고민한 적이 있다.(지금도 고민 중이다.) 어디서 봤는데 재능을 찾는 방법 중 하나는 그 분야에서 나름 이름 있는 사람들이 그 일을 해나가는 걸 봤을 때 어라? 나도 할 수 있겠는데? 싶으면 한 번 도전해 봐도 괜찮다고 하더라. 심지어 이렇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는 생각까지 들면 천직일 수 있다고. 반대로, 봤을 때 뭐 도대체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겠으면 깔끔하게 포기하라 했다.
어떤 일에 타고났다는 것. 이 얼마나 미학적이고 짜릿한 일인가. 내가 사실은 어떤 분야에 천재였다면 어땠을까 상상해보곤 했다. 혹은 지금의 감각을 가지고 처음으로 돌아가 천재인척 한다면? 이런 돈 안 드는 상상은 늘 즐거웠다. 나만 이런 상상을 하는 게 아니어서 ‘회귀물’이나 ‘힘순찐’ 같은 스토리가 사랑받나 보다.
재능에 대한 갈망은 업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운동에서도 충족되지 않았다. 나는 운동을 시작하고 이내 운동에 재능이 없음을 인정해야만 했다. 근육이 빨리빨리 생기는 근수저도 아니었고, 재미를 느낄 만큼 중량이 드라마틱하게 늘지도 않았으며, 타고난 힘과 유연성도 부족했다. 그저 운동에 대한 나만의 지독한 짝사랑일 뿐이었다.
거듭 말하지만 나는 운동에 재능이 있는 사람이 아니기에 뭐든 배울 때 처음부터 차근차근 배워나가야만 했다. 내가 배웠던 선생님들은 다 해당 분야의 운동을 잘하는 사람들이었다. 운동을 잘하는 사람이 운동을 가르치는 사람이 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겠지마는 타고나길 운동에 재능이 있는 사람은 나같이 못하는 사람을 절대 이해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었다. 어떤 동작이 안되면 그는 그게 원래부터 됐던 사람이기에 그것이 되게 하는 방향으로 가는 길을 설명하기 어렵달까.(사실 그걸 잘 해내는 게 강사로써의 재능인 것 같긴 하다.) 일도 마찬가지였다. 처음부터 일을 잘했던 상사는 고군분투하는 신입을 이해하기 어렵다.
그래서 그 무렵은 회사 안팎으로 시달리던 시절이었다. 회사에서는 내가 몇 시간 동안 끙끙대던 일을 가져가서 몇 분만에 뚝딱 해결하던 사수가 있었다. 그는 갸우뚱하며 내게 물었다.
이게 어렵나?
퇴근하면 박스에 가서 또 고난이 이어졌다. 이미 크로스핏 선수이기도 했던 코치는 내가 두 손으로도 못 드는 무게를 한 손으로 번쩍 들며 물었다.
이게 안 돼요?
나는 어렵다고, 안된다고 소리를 빽 지르고 싶을 만큼 약이 올랐다. 개구리 올챙이 시절 기억해야 한다지만 올챙이 시절을 건너뛰고 개구리부터 인생을 시작한 사람들에게 나는 억울한 마음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어쩌겠어? 나는 나의 속도대로 해나가야지. 나는 느리지만 빨리 가다가 멈추는 것보단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아가는 게 나중에 돌아보면 더 멀리 와있지 않겠는가. 인생은 지루할 정도로 기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