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가르쳐준 기다림의 미학
나는 한 때 서핑에 매료되어 주말마다 바다를 찾아다니던 적이 있었다. 그때는 서핑이 지금처럼 대중적이지도 않았고 양양이 지금처럼 핫하지도 않았을 때다. 처음에는 함께 운동하던 사람들끼리 일박 이일로 양양에 서핑 체험하러 간 것이 시작이었다. 파도를 잡아타는 게 생각보다 재밌다고 느꼈던 나는 그 이후로 회사 언니 h를 꼬셔서 함께 양양, 부산, 제주, 발리 등 온갖 서핑 스팟을 찾아다니게 되었다. 물론 시간과 자금의 압박으로 가장 만만한 양양을 주로 다녔다. 금요일 퇴근하면 쏜살같이 양양으로 튀어가서 토요일과 일요일 서핑을 즐기고 일요일 밤에 서울로 돌아오곤 했다. 월요일에 지친 몸을 이끌고 출근해서 자리에 앉으면 육지인데도 파도의 넘실거림이 느껴지는 듯했다.
그렇게 몇 번 주말마다 서핑을 다니다 보니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점이 있었다. 다들 주말을 바쳐가며 바다에 와놓고 도무지 열심히 바다에 들어가질 않는 것이었다. 파도가 오는 때를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일주일에 이틀뿐인 소중한 주말을 항상 알차게 쓰려고만 노력해 왔던 나에게, 파도의 때를 기다린다는 개념은 너무 생경했다. 나는 이맘때쯤 파도를 타려고 온 건데 지금은 때가 아니니 기다리란다. 그러고는 아무 근심 걱정 없는 표정으로 스케이트 보드를 타고, 삼삼오오 모여 루미큐브를 하는 것이었다. 나는 입을 허 벌리고 생각했다. 시간 아깝게 뭐 하는 거지. 그러고는 나 혼자 바다로 들어갔다. 결과가 어땠을 것 같은가. 예상했겠지만 나는 파도를 하나도 잡지 못했다. 그뿐인가. 서핑 타기에 적합하지 않은 파도들과 쓸데없이 싸우느라 체력마저 다 소진되어 버렸다. 내가 탈진돼서 뭍으로 터덜터덜 나오니 다른 사람들은 그때서야 지금이라며 바다로 들어갔다. 나는 그저 거친 숨을 고르며 그들의 서핑을 어쩐지 분한 마음으로 바라봤더랬다.
그 이후에는 그저 개인에 불과한 나의 미천함을 인정하고 거대한 자연인 바다에 절대복종했다. 탈 만할 것 같아 바다에 뛰어들었어도 영 아니다 싶으면 굳이 힘 빼지 않았다. 이미 라인업으로 넘어왔으면 그냥 물에 떠서 기다렸다. 뾰족한 태양 아래 눈을 감고 누워있으면 잔잔하게 살랑이는 물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잘게 부서지는 파도 소리가 들렸고 코 끝에는 기분 좋은 바람이 닿았다. 그러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들었다. 땅에서는 왜 그렇게 아등바등 살았을까.
그 이후로 나는 흐르는 강물을 거슬러 오르려 하지 않는 인간이 되었다. 때가 아니라면 굳이 힘 빼지 않았다. 지금이 파도를 탈 때가 아니라면 나는 그저 묵묵히 물 밖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연습을 해나가면 된다. 때를 만나면 비축해 둔 힘으로 최선을 다해 노를 저어 앞으로 나아가면 그만이다. 기다리며 힘을 비축할 때와 남김없이 소진해야 하는 때를 구분할 줄 아는 것, 바다에서 물 먹고 구르며 배운 기다림의 미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