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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의 아쉬탕가 초급

‘초급’에 대한 입장 차이

by 배아리


비가 물폭탄처럼 올 거라는 예보가 있던 날이었다. 나는 전날부터 금요일의 아쉬탕가 초급 수업을 갈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해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민했다. 예전에는 아쉬탕가나 빈야사 수업을 좋아했던 적도 있었으나 몇 번의 강도 높은 수련을 하고 나서는 그 어떤 공포감이 생겨버렸달까. 이 아쉬탕가 초급 수업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초급이라는 말에 마음이 노곤해져 별 의심 없이 수업을 갔었으나 수업이 끝난 후에는 보란 듯이 배신당하고 초토화된 나의 가련한 몸뚱이만이 남았을 뿐이었다.


'초급'이라는 단어에 대해 나와 요가원의 해석 차이가 있었던 것일까. 나는 시간표에 적힌 ‘아쉬탕가 초급’ 수업을 보고 아, 그럼 아쉬탕가보다 덜 힘들겠구나? 하고 경쾌한 발걸음과 함께 요가원으로 향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수련 후 내가 느낀 ‘초급’ 수업은 고난도의 동작만 배제한 채 기본 동작으로 속칭 '빡쎄게' 굴려보겠다는 의미로 느껴졌다. 게다가 정석 아쉬탕가 수업 때는 고난도의 동작이 나오면 못한다는 핑계로 쉬는 시간이라도 있었는데, 초급 수업은 기본 동작만 반복하는데 못하는 척 쉬기도 머쓱했다. '아쉬탕가치고 초급이라고 했지, 안 힘들다곤 안 했다?' 사바아사나 하면서 뻘뻘 흘린 땀 닦으며 누워있으면 어디선가 저런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나는 주먹을 불끈 쥐며 생각했다. 속았구나. 어쩌면 ‘초급’이라는 달콤한 단어를 내세워 나 같은 피라미들을 낚기 위한 요가원의 고도의 전략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아쉬탕가 초급 수업인데 비까지 물폭탄처럼 내린다니 얼마나 가기가 싫었겠는가. 하지만 전 날에도 요가 수업을 째고 낮잠을 자버린 나. 오늘도 안 가면 주말까지 요가를 쉬는 건데 죄책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마지막까지 고민하다가 마침 비가 좀 덜 오길래 마음을 굳게 먹고 요가원으로 향했다. 요가원에 도착하니 나를 반기는 문구 ‘스트레스받을 땐, 요가로 힐링하세요.’ 너는 내가 어제부터 얼마나 스트레스받았는지 모르는구나. 이제 대충 어떤 요가가 어느 정도의 난이도인지 체감하고 있기에 그 강도에 따라 무의식적으로 스트레스를 받곤 한다. 힐링이나 테라피 수업이면 편한 마음으로 가고, 빈야사나 아쉬탕가 수업은 전날부터 마음 한편에 부담이 돌덩이처럼 얹힌다. 그래서 결국 난이도 높은 수업을 당일에 안 가버리게 되면 운동을 안 갔다는 죄책감에 전날 쓸데없이 스트레스를 받은 셈이 되는 억울함까지 더해진다. 그래서 꾸역꾸역 더 가게 되는 것 같다.


하지만 다행히(?) 수업에 아쉬탕가 수업이 처음인 분이 계셔서 내가 두려워했던 만큼 힘들지는 않았다. 평소보다 덜 힘든 수업, 평소보다 좋은 컨디션. 어제보다 조금 더 동작이 나아진 흔치 않은 하루임을 느끼며 온몸이 땀으로 젖었다. 집으로 돌아와 비와 땀이 뒤섞인 몸을 정갈하게 씻어내자 나는 이내 세상에서 제일 기분 좋은 사람이 되고 만다.


역시, 갈까 말까 할 때 가서 후회하는 법이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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