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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말로부터 자유로운 이유

약골에서 보통의 체력이 되기까지

by 배아리


30대 중반을 넘어서며 느끼는 노화란 무엇일까. 나는 가진 걸 잃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라는 여느 노래의 가사처럼 가진 지도 몰랐던 것을 차차 잃어가는 과정. 얼굴도 체형도 심지어 두뇌회전조차 20대 때가 찬란했던 것임을 깨닫고 있는 요즘, 딱 하나 소멸해 가는 슬픔을 느끼지 못하는 분야가 있다. 바로 ‘체력‘이다.


운동을 통해 남들보다 체력이 비약적으로 좋아졌음을 얘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에 가깝다. 대학생 때 나는 거의 종잇장에 가까울 정도로 얇은 몸을 갖고 있었다. 외국 친구들은 나를 워킹 스틱이라고 불렀다. 큰 키에 톡 치면 부러질듯한 마른 몸. 나는 근육은 물론 지방조차 모자랐던 저체중이었다. 체력이 얼마나 나빴는지 일상적인 삶을 살아낼 힘이 부족할 지경이었다. 주로 산과 같은 고지에 지어지는 대학교의 지리적 특성을 우리 학교도 피해 가지 못했어서, 상경관과 다른 전공관 사이에 헐떡 고개라는 것이 있었다. 뭣도 모르고 교양을 헐떡 고개 너머로 신청했던 스무 살의 나는 짧은 쉬는 시간 동안 그 고개를 넘을 자신이 없어 수업을 중도 포기했었다. 또 가끔 수강신청에 망해서 공강이 길어졌던 학기에는 기나긴 공강 시간 동안 도서관에 지친 몸으로 엎드려있다가 뒷수업을 포기하고 집에 간 적도 많았다. 그렇게 나는 평균에 한참 못 미치는 소멸 직전의 작은 불씨 같은 체력으로 나의 삶을 힘겹게 살아내고 있었다.


내가 성인이 되고 운동을 처음 제대로 시작한 건 대학 졸업을 앞둔 방학 때였다. 나보다 헬스를 먼저 하고 있었던 고등학교 친구를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그 무렵의 우리는 시간이 많고 돈은 없었으므로 버스를 타고 30분씩 걸리는 시에서 운영하는 저렴한 체육관에 다녔다. 그때의 내 하루 스케줄은 이랬다. 아침에 느지막이 일어나서 아침을 먹고 체육관에 도착하면 대략 11시. 유산소로 워밍업을 살짝 해주고 친구에게 요일별 분할 운동을 배우고 보조해 주고 마무리 유산소까지 타주면 약 1시~1시 반. 집에 와서 씻고 점심까지 먹고 나면 낮잠을 꼭 자야만 했다. 낮잠 한 타임 자주고 일어나면 대여섯 시. 저녁을 먹고 나면 얼마 안돼서 또 병든 닭처럼 꾸벅꾸벅 졸다가 일찍 잠에 들었다. 이런 하루의 반복이었다. 연약한 몸이 운동에 적응하려니 애처롭게 잠만 잤던 것 같다. 이때부터 그래도 서서히 일상생활 정도는 해낼만한 체력의 범주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다음으로 체력의 비약적 성장을 경험한 것은 크로스핏을 하고 나서부터였다. 일단 나는 유산소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헬스만 할 때는 유산소는 명목상으로 끼워 넣는 수준이었어서 거의 근력 위주로 했다고 보면 되는데, 체력이나 입맛에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었다. 하지만 크로스핏은 근력과 유산소를 합쳐놓는 타바타 형식의 운동이 많아서 나의 운동 스케줄에서 유산소의 비중이 높아졌다. 그러자 무슨 위장에 구멍 뚫린 사람처럼 미친 듯이 입맛이 돌기 시작했고, 태어나서 식단이라는 건 해본 적이 없었기에 그저 몸이 원하는 대로 먹고 쉬고 운동하는 나날이 이어졌다. 먹고 있어도 배가 고파서 다음 먹을 것을 생각하는 삶을 전에는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활발하게 도는 입맛은 자연스러운 증량으로 이어졌고, 나는 드디어 정상 체중의 범주에 들어오게 되었다.


그러자 제일 먼저 바뀐 것은 체력이었다. 에너지가 생기니 여러 활동에 참여하게 되었고, 여행을 가도 좀 더 야무지게 즐길 수 있었다. 밖에 오래 있어도 전보다 덜 지쳤으며, 사람이 체력에 여유가 생기니 짜증 날 일도 줄었다. 과연 다정함도 체력에서 나온다는 말은 너무나 정답이었다.


또 정상 체중이 되고 바뀐 점 중 하나는 연례행사처럼 걸리던 감기에 더 이상 걸리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입사 초에는 거의 두 달에 한 번씩 감기에 걸려서 나을만하면 다시 걸리고, 또 나을만하면 다시 걸려서 일 년 내내 감기를 달고 살았던 기억이 있다. 또, 이유를 알 수 없던 각종 질환들에서 해방되었다. 피부과에 가도 고쳐지지 않던 피부 질환, 미주신경성 실신, 한 밤 중에 찾아와 나를 고통스럽게 하던 발 저림 등등… 의학적 근거는 없지만 사람마다 정상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몸무게의 마지노선이 있는 것 같다고 느꼈다. 나에게는 그 마지노선이 대략 54kg 정도라는 것을 여러 과정을 거쳐 알게 되었다. 몸무게가 이 이하로 떨어지면 위에 열거한 증상들이 다시 나타나곤 했다.


앞서 작성한 글의 서두에서 나는 운동을 시작하고 남들보다 체력이 비약적으로 좋아진 게 아니라고 적었었다. 나는 아직도 체력이 좋게 타고난 사람에 비하면 한참 못 미친다. 하지만 비교는 남들과 하는 것이 아니라 어제의 나와 하는 것. 남들보다 무언가가 좋아질 수 없다고 해서 포기하는 삶은 멋이 없지 않은가. 나는 노력했기에 분명 20대 때의 나보다 좋아진 체력으로 일상을 살아내고 있다. 앞으로도 노화로 인한 체력의 상실을 비교적 덜 느끼는 것, 그것은 내가 태초에 약한 체력으로 태어났기에 누릴 수 있는 축복이자 앞으로 추구해야 할 방향성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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