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도티의 마술가게

주어진 삶이 한계를 규정하는 것에 대해

by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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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즘 들어 예전에 책에 표시해 뒀던 것을 필사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은 노트에 예쁜 글씨로 옮겨적지만, 난 성질이 급해서 도저히 그 많은 양을 직접 쓰지 못하겠다. 그래서 난 타이핑으로 필사를 한다.


며칠 전, <닥터 도티의 삶을 바꾸는 마술가게>라는 책을 필사했다. 몇년 전에 도서관에서 빌려 읽고서 너무 마음에 들어 구매했던 책이다. 그런데 왜 마음에 들었는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았다. 이번에 필사를 하면서 다시금 아팠던 기억이 떠올랐다.


도티는 문제가 있는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다. 아빠는 알콜 중독이 있고, 정부의 지원을 받으며 겨우 살아간다. 이런 아이들에게는 희망을 꿈꾸기가 힘들다. 난 그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가난하고, 가정 폭력이 있는 집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에게 가장 안 좋은 점은 일차적으로 물리적/경제적/정서적으로 올바른 양육을 못받는 다는 점이라는 것은 누구나도 명백히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점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도, 어른이 되어서도 그 이상의 삶을 살아가기 어렵다는 것이다. 내가 태어나면서 주어진 삶, 환경이 당연한 세상같고 가족은 버팀목이 아닌 나의 발목을 잡는 짐이다. 비극은 계속된다. 가족은 고마운지 모른채 계속 요구한다. 나의 등골을 빼먹는다.


맛있는 것을 먹어봐야 맛있는 음식임을 알 수 있다. 내가 직접 경험하지 못한 삶에 대해 감히 꿈조차 꿀 수 없다. 내가 주어진 삶의 범위가 나를 규정한다. 어른이 되어서도 그렇다.





#2

알콜 중독자 가정에서 성장한 어른을 보면
흔히 두 가지 결과가 드러난다.

첫째, 본인 스스로 중독자로 성장하는 경우가 있다.
이들은 유전적 요인과 결한하여 그들의 트라우마를 표명하는 부류다.

둘쨰,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는 경우가 있다.
굳은 결심으로 가족의 태생과 달라지기 위해서
작정하고 그 태생에서 도망치려고 하는


- <닥터 도티의 삶을 바꾸는 마술가게> 중 에서-



나와 동생은 두번째 결과를 택했다. 기대이상으로 살기 위해 몸부림치며 노력했다. 그렇다고 그것을 건강하게 극복했는가? 아니다. 그래도 내 동생은 죽음을 택했다.




#3

어릴 때 부터, 드라마 중에서 아주 비천하고 가난한 신분으로 태어나 최고의 권력까지 오르는 그런 사람의 이야기를 좋아했다. 내가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스무살 때, 수능을 보기 직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원하는 대학은 떨어졌지만 그래도 꽤 좋은 곳에 추가로 합격했다. 그때는 학자금 대출에 '보증'이라는 것이 필요했다. 대출을 갚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어른의 보증이 필요했던 것이다.


나는 작은 아버지를 찾아갔다. 작은 어머니는 절대 안된다고 했다. 지금도 안되지만 앞으로도 이런 일로 찾아오지 말라 했다. 어떻게 형제의 아이가 단 한 번만 도와달라고 했을 때 그렇게 매몰차게도 거절할 수 있을까? 심지어 그 집은 형편이 어렵지도 않고 꽤 풍족했다.


그래, 한 번 부탁을 들어주면 앞으로도 계속 거머리처럼 붙을 것이라 생각해 처음부터 냉정하게 생각했을까. 분노와 슬픔 서러움의 눈물이 흐르며 눈이 부르르 떨렸다. 작은 엄마는

"그렇다고 나에게 한을 품거나 억울한 심정은 갖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10만원을 던지듯이 주고 내쫓듯이 집에서 내보냈다. 엄마가 분명 안 될거라 말했는데, 설마 하는 심정으로 찾아갔는데 정말 이럴 줄은 몰랐다.


그때 집에서 나오면서 다짐했다. 내가 정말 잘 살아서 복수해주리라. 반드시 내 앞에서 그날 잘못했다고 싹싹 빌게 만들고 말겠다. 너무 우스운 얘기지만, 드라마에서 이런식으로 억울하게 당한 주인공이 훗날 성공해서 그렇게 못되게 굴었던 사람들에게 복수하는 모습을 보며 나도 꼭 그러리라고 다짐했다. 20대 초반에는 그 생각을 품고 정말 독하게 살았다.


아빠의 책장에서 이런 제목의 책을 본 적이 있다. <잘 사는 것이 최고의 복수다> 라는 책이었다. 책을 읽어보진 않았지만, 기가막히게 잘 지은 제목이라 생각했다. 꼭 제대로 그 사람에게 되갚음 하거나 응징을 하지 않더라도, 내가 잘 사는 것이 최고의 복수라는 말이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잘 살기 위해 노력했다. 때로는 복수하기 위해, 때로는 나의 가족을 위해, 때로는 억울해서.




#4

나는 두려움과 불안은 이제 더 이상 마음에 품고 있기에 적절한 감정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조금씩 점점 더, 나의 생각과 정서에 감정적인 반응을 하지 않고 관찰 할 수 있었다.


우리 가족은 매일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상처가 아니라 그저 우리 가족이 되어갔다. 또한 내가 우리 아버지나 어머니가 아니며, 우리 형이나 누나도 아니라는 생각을 명확히 하게 되었다. 나는 나였다. 그들이 하는 행동이 나의 행동은 아니었다. 우리 형과 누나는 둘다 그들만의 몸부림을 치면서 따라야 할 운명이 따로 있었다.

나는 내 삶을 규정했던 이야기를 내보내기 시작했다. 나는 내 가난을 통해 정체성을 만들었는데 그 정체성을 안고 가는 한 아무리 많은 부를 쌓더라도 나는 언제나 가난 속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 <닥터도티의 삶을 바꾸는 마술가게 중에서> -




#5

나는 더 이상 그들에게 '복수'를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어느 순간부터 그 복수라는 감정은 점점 잊혀져 갔다. 그냥 남보다도 못한 존재. 스쳐지나가는 존재였다. 우리가 행여라도 도와달라할까봐 끔찍히 피해가는 그들에게 굳이 연락하지 않았고, 세월이 지나다보니 이사도 하고 전화번호도 바뀌고 더이상 연락하고 싶어도 연락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내가 결혼할 때에도 동생이 죽었을 때에도 연락할 생각조차 안했다. 그들은 내게 이미 없는 사람들이었다. 아빠에겐 죄송하지만.


결혼하고 나서 남편의 누나의 아이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그 아이들이 만약에 그렇게 나를 찾아온다면 나는 꼭 도와주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어쩜 그렇게 생각할수가 있었을까? 하는 의아한 감정이 이따금씩 들었다.


아무튼 나는 뭐 재벌도 아니고 엄청나게 잘 사는 것도 아니지만, 어쩌면 불행의 연속이 더해지고 항상 고군분투하며 살아왔지만 나의 삶에 대해 떳떳하고. 난 열심히 치열하게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며 살아왔다.


동생도 세상을 떠났지만, 세상을 떠나기전 충분히 자신이 하고 싶은 것들을 많이 이뤘으며, 동생도 나도 엄마께 노후를 책임질 수 있게 최선을 다했다. 이 정도면 상처가 많은 삶이라 할지라도 꽤 잘 살아온 삶인 것 같다. 후회 없다.


진정한 복수라는 것은 정말 그런 것 같다. 되갚음과 앙갚음을 한다기 보다는, 그것을 뛰어넘고 잊을만큼 내가 성장해서 그들의 존재가 나에게 티끌만큼도 안되도록 내가 잘 살아가는 것.




#6

이야기가 조금 이상하게 흘러갔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온전한 가정이 얼마나 있을까 싶다만은, 가난과 폭력에 대해서는 아동들에게 청소년들에게 굉장한 상흔을 남기며 같은 어른이 되거나 힘든 어른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것에 복수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내가 잘 살아가는 것이 최고의 복수라는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것을 알려주는 친구와 지인, 책, 강연, 어른들 등 주변에서 우연히라도 꼭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태어난 환경이 내가 아니며, 태어난 환경이 나를 규정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어느 정도는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노력했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그렇게 계속 비참하게 살아가는 것은 너무 슬프고 힘든 일이니까. 자신에게.


내가 왜 태어났을까, 우리집은 왜 이모양일까. 그런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 열심히 노력한다고 반드시 잘 되는 것도 아니다. 열심히 노력한다고 되는 것은 기본적인 환경이 받쳐주고 운이 따를 때 가능한 이야기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죽을 심산이 아니라면, 어느 정도 내가 나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내가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에 대해 그려보고, 나를 괴롭히는 것들과 단호히 분리를 하며 내가 잘 살아가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을 해봤으면 좋겠다. 그렇게 계속 생각을 하다보면 예기치 못하게 좋은 친구와 스승과, 연인 혹은 지인들을 알게 되고, 또 다른 삶의 트랙으로 갈아탈 수 있다. 드라마 <아저씨>의 주인공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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