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백의 추억
드디어 1차 항암이 끝났다. ‘언제 3주가 흘러가나’ 했는데 하루하루만 살다 보니 정말로 1차 항암의 끝이 찾아왔다. 퇴원준비를 하는데 간호사 선생님들이 찾아와 퇴원을 축하해 주셨다. 선생님들 모두 한결같이 나를 걱정했다고 한다. 암병동에 처음 왔을 때 침대에 누워 울기만 하고, 병실문을 열 때마다 얼굴이 너무 슬퍼 보였다고 했다. 그런 상태에서 소장절제수술까지 받고 항암에 들어가는 거라 걱정 많이 했는데,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단단해지는 게 보였다며 잘 버텼다고 눈시울을 붉히시는 간호사 선생님도 계셨다. 참 감사했다. 나는 그분들에게 수없이 많은 환자 중 한 명일 텐데 그런 나를 진심으로 위해주는 마음이 느껴져서 같이 울컥했다.
세 번째 혈변으로 5월 4일 날 예전 병원에 입원을 했으니 딱 두 달 만인 7월 4일 날 퇴원을 한다. 아직 밥을 거의 못 먹는 상태에다가 혹시나 모를 응급상황에 대비해 집으로 가지 않고, 병원 근처 요양병원에 있기로 했다. 간호사 선생님은 퇴원해 있는 일주일 동안 카페도 가고, 먹고 싶은 것도 날것만 빼고 자유롭게 먹고 오라고 하셨다. 그래야지만 그 힘으로 6차까지 버틸 수 있다고. 나는 1킬로 찌워서 오겠다고 약속을 하고선 병실문을 나섰다. 너무 오랜만에 바깥세상에 나가는 거라 누군가 병원 밖에서 두부라도 들고 있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참 길고도 긴 시간이었다. 그 두 달 동안 중환자실에 6일이나 있었고, 내 남은 인생은 평생 출혈있이 살거나 사망하거나 둘 중 하나라는 의사의 악담도 들었고, 지금 병원으로 전원을 했고, 소화기내과 문제라고만 생각했는데 황당하게도 림프종 혈액암 4기로 진단을 받았고, 소장절제수술을 했고, 1차 항암을 하고 빡빡이가 되었다. 두 달 동안 이렇게 많은 일들이 있었다니... 절대로 내 대본에는 있을 수 없는 큰 사건들의 연속이었다. 역시 실화를 이기는 스토리는 없다더니... 이 시간들을 잘 버텨준 내 자신과 엄마에게 고마웠고, 장염 외엔 큰 이벤트 없이 항암을 끝낼 수 있도록 나를 위해 기도해주는 많은 사람들과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했다.
아빠 차를 타고 합정에 있는 요양병원에 도착했다. 그런데 전날 맞은 항암제 영향으로 인해 오심이 심해서 걷지 못해 휠체어를 타고 병실에 들어가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침대에 누워 잠에 들었다. 잠에서 깨니 저녁밥이 와있었다. 엄마는 한 숟가락이라도 먹어야 한다고 안 그러면 영양제를 맞아야 한다고 했다. 퇴원해 있는 동안 제발 주사 좀 그만 맞고 싶었기에 나는 애써 몸을 일으켜 국 한 숟가락을 떠먹었다.
“맛있어.”
맛있다고 말하는 내 말에 엄마는 놀라 되물었다.
“맛이 있어? 다행이다.”
항암제를 맞으면 그 특유의 약냄새가 올라와 입안에서 뭔가 휘발유 같은 맛이 계속 난다. 그래서 물도 역겹고 밥맛도 이상하고 뭘 먹어도 계속 느끼해 시원하고 상큼한 것만 당겼다. 그래서 항암을 하는 동안 음료수 외에는 먹고 싶은 것도 없었고, 맛있는 것도 없었고, 배고픔을 느끼지도 않았다. 그런데 오랜만에 국이 정상적인 맛으로 느껴졌다. 그렇게 죽도 몇 숟갈 먹고, 반찬도 조금 집어 먹었다. 아프기 시작한 3월 말 이후로 제일 많이 먹은 것 같았다. 그렇게 먹는 나를 엄마는 신기하게 바라봤다. 병원에서 늘 밥차가 오면 코를 막고 구역질을 하던 나였는데 음식을 넘기는 내 모습을 오랜만에 보는 거였기 때문이다.
항암을 잠시 쉬니 컨디션은 날이 갈수록 괜찮아져 산책도 조금씩 할 수 있게 되고, 먹는 양도 점점 늘어났다. 그리고 배고픔도 느끼고, 먹고 싶은 게 생각이 나기도 했다. 웃기지만 이상하게도 아웃백 투움바 파스타랑 따뜻한 빵이 계속 생각이 났다. 아웃백은 대학교 때 친구들이랑 런치메뉴 먹으러 가던 곳이었는데, 자꾸만 아웃백 생각이 났다. 엄마는 배달도 되니까 혹시 모를 감염 때문에 배달시켜 먹자고 했지만 나는 가서 먹고 싶다고 우겼다. 환자복이 아닌 내 옷을 입고, 테이블에 앉아 먹고 싶었다. 내 소원을 들어주러 언니가 왔고, 우리 셋은 그렇게 아웃백으로 향했다.
많은 사람들을 피하려고 빨리 도착했지만 금세 점심을 먹으러 온 사람들로 가득 찼다.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은 너무 오랜만이라 감염이 무서웠지만, 이곳에 앉아 있으니 꼭 아프기 전의 나의 일상으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따뜻한 빵에 따뜻한 망고버터를 발라 한 입 먹었다. 이게 얼마만의 밀가루인지...!
“맛있어.”
곧이어 투움바 파스타와 립도 나왔다.
“이것도 맛있어.”
내 말에 엄마와 언니는 신이 나서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후식까지 야무지게 먹었는데 갑자기 더워지면서 속이 울렁거렸다. 체하지 않게 50번씩 씹어먹었는데도 아무래도 평상시보다 많이 먹어서 그런지 속이 좋지 않았다. 급히 밖으로 나가 모자를 벗고 바람을 쐬었다. ‘그래. 나 환자였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환자복을 벗어던지고 북적이는 사람들 속에 있으니 마치 싹 다 나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었는데, 컨디션이 갑자기 훅 떨어지는 걸 느끼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퇴원해 있는 동안 컨디션 괜찮다고 안심하지 말고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요양병원에 와서 한숨 자고 일어나니 울렁이던 속이 가라앉았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기도가 저절로 나왔다. 예전에는 당연하다고 여겼던 작은 일에도 이제는 다 감사했다. 음식을 먹을 때 구역질이 나지 않는 것, 산책할 수 있는 힘이 있는 것, 배고픔을 느끼는 것, 먹고도 체하지 않는 것, 감염이 일어나지 않는 것, 살아있는 것 모두 다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여태껏 내가 죽어라고 노력해서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삶을 허락받았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이었다. 오늘 하루도 허락해 주심에 감사하며 ‘합정역 맛집’을 검색했다.
내일은 또 뭐 먹지?
내일이 기대가 됐다. 오랜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