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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스토리아 Jul 18. 2024

#17 2차 항암 (1)

미리 써두는 유언장

 달콤했던 일주일간의 항암 방학이 끝나고 2차 항암을 하러 다시 입원했다. 살 1킬로 쪄서 돌아왔다면서 간호사 선생님들과 반갑게 인사를 했지만 막상 병원복을 입고 침대에 앉으니 두려웠다. 이미 알고 있는 그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는 두려움. 그 두려움을 미처 다 소화하기도 전에 입원하자마자 항암은 시작되었고, 또다시 노란 봉투에 담긴 액체들은 내 몸속으로 들어갔다.

 그래도 저번보단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컨디션이었기에 좀 나을까 예상했는데, 이번엔 오심과 구토가 너무 심했다. 저번 항암 땐 하루에 3-4번 정도 구토를 했다면, 이번엔 정말 숨 쉴 때마다 구토를 하는 기분이었다. 정말 이러다 죽겠다 싶을 정도로 구토를 하니까 목에서 피까지 나고, 입 주위는 다 헐고 찢어져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졌다. 아무도 도와줄 수 없고 나 혼자 버텨내야 하는 일인걸 잘 알지만, 제발 누군가 이 구토 좀 멈추게 해주길 바라고 또 바랬다.

 한밤 중에 또다시 구토를 하다가 엄마가 “이제 좀 괜찮아?”라고 물었는데 내 입에서 뜬금없이 “축구”라는 대답이 나왔다. 분명 ’ 괜찮아 ‘ ’ 정상이야‘라는 말이 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내 입에선 계속 ‘축구’라는 단어만 나왔다.

 순간 무서웠다. ‘림프종이 뇌에 전이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겁이 났다. 내가 이상하다면서 서럽게 우는 날 위해 간호사 선생님은 인지검사를 해주셨다. 오늘이 며칠인지부터 시작해 여기는 어디인지 묻는 질문에 제대로 답하자 간호사 선생님은 너무 걱정 말라고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달래주시곤 떠났다.

 그렇게 겨우 잠에 들었는데, 목이 말라 잠에서 깼다. 엄마가 뭐 주냐고 물었고, 난 ‘초록매실’을 달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그 단어가 생각이 안 나 “실... 매.... 실매초”와 같은 말들을 나열하고 있었다. 단어를 제대로 내뱉지 못하는 내가 너무 낯설고 두려웠다. 나다움을 잃어버릴까 겁이 났다.

 나는 엄마에게 유언장을 쓰게 종이와 펜을 달라고 했다. 엄마는 왜 그러냐며 말렸지만, 나는 정신이 있을 때 써두어야지 잠이 올 거 같다고 지금 당장 써야 한다고 우겨 종이와 펜을 받아냈다.

 그렇게 한밤 중에 유언장을 써 내려갔다. 엄청난 유산은 없지만 저작권 같은 것은 법적으로 처리해 두어야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아 자필로 부동산과 저작권을 정리하는 유언장을 썼다. 지장이 필요하니 내일 인주를 사 오라고 말을 하고선 겨우 잠에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오심이 좀 가라앉았다. 정신도 뚜렷해져 원하는 단어들을 다 말할 수 있었지만 여전히 불안했다. 항암이 진행되면서 어제와 같은 일은 또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젯밤에 쓴 자필유서가 효력이 없을 경우를 대비해 증인과 함께 영상으로 유언장을 남겨야겠단 생각이 들었고, 친구에게 증인이 필요하니 병원으로 와달라고 부탁을 했다. 친구는 놀라 울면서 병원으로 왔고, 엄마에게 동영상 촬영을 부탁하고 어제 쓴 유언장을 읽으려고 하는데...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났다. 내가 왜 이런 걸 해야 하는 걸까? 생각이 들었다. 너무 예쁜 나이에... 활발히 활동해야 하는 이 시기에... 왜 유언장이나 작성해서 읽고 있는 걸까? 란 생각이 들면서 서러워졌다.

 아프지 않았다면 나는 런던에 있었을 것이다. 뮤지컬 ‘인사이드 윌리엄’이 런던에서 세 번째 워크숍을 하고 있었기에 런던에서 현지 배우, 창작자들과 함께 대본을 수정하고 연습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고 나서 바로 도쿄로 갔을 것이다. 뮤지컬 ’ 라흐 헤스트’가 도쿄에서 공연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공연을 보고 관객과의 대화도 했을 것이다. 그리곤 바로 서울에 와서 ‘비하인더문’ 쇼케이스에 참여했을 것이다. 이 말도 안 되는 작품 스케줄이 오히려 나에게 더 현실적이게 느껴졌고, 유언장을 읽고 있는 지금이 더 비현실적이게 느껴졌다.  

 하느님 아버지... 도대체 얼마나 좋은 걸 주시려고 저한테 이러시나요? 얼마나 큰 영광을 주시려고 지금 저를 이렇게 힘들게 하시나요? 그게 뭐든 간에 안 받고 나 그냥 안 아프면 안 돼요? 눈물이 계속 쏟아져 나왔다. 하느님이 원망스러웠다. 미웠다.

 나도 울고, 증인도 울고, 촬영하는 엄마도 울고... 이때 엄마 친구가 잠시 엄마를 보러 병원에 왔고, 엄마는 친구에게 촬영을 부탁했다. 울음 때문에 몇 번을 못 찍다가 결국엔 오늘 날짜와 이름, 증인이 있는 끊기지 않은 영상을 찍을 수 있었다. 친구는 나중에 여행 가서 이 영상 보면서 “우와! 우리 별 거 다했다!” 하면서 웃자고 했고, 나는 꼭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친구의 말처럼 언젠간 이 모든 일이 웃음의 소재가 되기를... 엄마랑 “그때 네가 계속 ‘축구’라고 그래서 내가 얼마나 무서웠는 줄 아니?” 얘기하며 깔깔 웃을 수 있기를... 엄마 앞에서 유언장을 쓰면서 준 상처에 용서를 구할 수 있기를... 그리고 극장에 다시 돌아갈 수 있기를...

 그런 날들이 반드시 돌아올 것이다. 힘들지만 지지 않을 것이다. 언젠간 이 모든 것이 가슴 아프지만 잘 이겨냈다는 영광스러운 추억이 될 수 있도록. 그러니까 하느님! 잘 좀 부탁드릴게요. 저 좀 지켜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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