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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스토리아 Oct 28. 2024

#27 5차 항암 (2)

기적

 오늘은 두 번째 PET-CT를 찍는 날이다. 올해 5월에 처음 펫시티를 찍었었다. 그때는 암인 줄은 꿈에도 모른 채 원인 모를 소장출혈과 몇 달 동안 내려가지 않는 고열의 원인을 찾기 위해 수없이 많은 검사를 할 때였고, 펫시티는 그 검사들 중 하나였다. 어쩌면 그때 당시 주치의 선생님은 내가 암이란 걸 눈치채셔서 펫시티를 찍어보자고 하셨을지도 모르지만 엄마랑 나는 아예 몰랐기에 긴장감이 0퍼센트였던 검사였다.

 펫시티는 찍기 전에 포도당과 유사한 주사를 맞고 그 주사가 온몸에 퍼지길 1시간 정도 기다리기 때문에 검사실 옆 침대에 누워있는다. 5월엔 침대에 누워 엄마와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내다가 검사를 받았지만 5개월이 지난 지금 찍는 펫시티는 느낌이 달랐다.

 원래라면 6차 항암까지 다 마친 후 찍어서 반응평가를 봐야 하는데, 4차 끝나고 찍은 CT에서 간에 뭐가 보인다고 하여 찍는 것이기 때문에 긴장됐다. 주사를 맞고 침대에 누워 엄마와 나는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엄마는 묵주기도를 드렸고 나는 눈을 감고 ‘검은색으로 가득했던 펫시티가 깨끗해지는 기적이 일어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그리곤 지금까지의 일들을 떠올렸다.


 3월 27일 첫 혈변을 보고 화장실에서 기절했던 그날 나는 죽을 수도 있었다. 딱딱한 화장실 바닥에 머리를 부딪혔고 혈압은 70 미만이었다.

 두 번째 혈변을 보고 화장실에서 또 기절했던 날, 그날도 나는 죽을 수도 있었다. 구급대원들이 근처 병원 응급실에 전화를 돌렸지만 의료대란 때문에 두 군데서 거절당했고 한 곳만 나를 받아줘서 응급실에 가서 수혈을 받을 수 있었다. 그때 나를 받아주는 병원이 없었더라면 뉴스에 나오는 것처럼 병원을 찾아 헤매다가 구급차 안에서 죽었을 수도 있다.

 세 번째 중환자실에 입원했을 때는 진짜로 죽는 줄 알았다. 호흡기를 낀 채 ’ 가족들에게 마지막 말도 못 하고 이렇게 죽는구나’ 싶었다. 하지만 결국 혈변이 멈췄고 하루에 빨간 피 10개, 노란 피 7개, 승압제를 맞으며 내 몸이 버텨주었다. 그렇게 산소통과 소변줄을 낀 채 조금도 움직이지 못하는 나를 침대시트로 들어올려 침대에서 침대로 옮기며 지금의 병원으로 왔다.

 이 병원으로 전원 하지 못했다면 암을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면 원인도 모른 채 중환자실에서, 응급실에서, 길거리에서, 화장실에서 죽었을지도 모른다. 비록 늦긴 했지만 암을 발견했고, 그에 따른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기적 같은 일인가! 이런 생각이 들자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기적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 이 병원에 왔을 땐 기저귀를 찬 채 누워만 있었는데 지금 두 발로 걸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기적 같은 일인지.

 3달 가까이 영양제를 달고 금식을 했고, 금식이 풀리면 미음을 조금 먹고, 죽을 조금 먹으면 다시 혈변이 나와 또다시 금식을 했었는데 지금은 추어탕 한 그릇을 뚝딱 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기적 같은 일인지.

 소장수술을 하고서도 소장에 남은 림프종들 때문에 항암을 하면서 또다시 출혈이 올 수도 있다고 했는데 5차까지 혈변을 보지 않은 것이 얼마나 기적 같은 일인지.

 스마일항암은 항암 중에서도 길고 독한 항암이라고 했는데 지금까지 내 장기들이 잘 버텨주어서 중환자실에 가지 않고, 응급실에 가지 않은 것이 얼마나 기적 같은 일인지.

 나쁜 소식은 좋은 소식보다 더 빨리 퍼지는지 내가 암에 걸렸단 소식을 들었다며 괜찮냐고 물어보는 분들이 많아 처음엔 카톡창을 열면 ‘괜찮아?’가 가득했었다. 그때 당시엔 괜찮지 않았지만 괜찮다고 답을 하며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자신들의 일상을 사느라 아픈 나를 잊을 거라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내가 뭘 먹었는지 물어봐주고, 내가 음식을 먹는다는 것에 기뻐해주고, 나를 만나지 못하는데도 병원에 선물을 두고 가고, 지치지 않고 기도해 주는 이들이 있다. 사실 나는 겉으로 보기엔 긍정적이고 밝아 보여도 속으로는 나쁜 생각도 많이 하는 사람인데 이런 나를 사랑해 주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기적 같은 일인지.

 이렇게 생각을 하고 나니 그 어떤 것도 기적이 아닌 일이 없었다. 기적은 이미 이루어지고 있었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자 갑자기 감사함으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암이 나에게서 많은 것을 앗아갔다고 생각했는데, 그 빈자리에 하느님은 기적을 채워주시고 계셨다.

 침대 옆에 있는 인터폰을 통해서 내 이름이 불려졌다. 이제 펫시티를 찍으러 갈 시간이 된 것이다. 엄마의 기도를 받으며 검사실로 들어가 기계에 누워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되뇌었다.


 나는 기적이다.

 나는 기적이다.

 나는 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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