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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스토리아 Oct 12. 2024

#26 네 번째 항암방학과 5차 항암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일

 네 번째 항암방학부터 5차 항암을 하고 있는 지금까지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를 모르겠다. 4차 항암이 끝나고 또다시 합정에 있는 요양병원으로 갔다. 요양병원에 있는 일주일 동안 날씨도 좋으니 한강을 자주 가야겠다고 다짐을 했다.

 그런데 몸이 조금 이상했다. 자고 일어나면 병원복이 젖을 정도로 땀을 흘렸다. 이 증상은 암인 줄 모르고 소장출혈로 병원을 다닐 때 있었던 증상이었다. 그때 당시엔 알지 못했지만 혈액암의 증상 중 하나인 ‘야간발한‘이었던 것이다.

 두 번째 중간평가 결과를 앞두고 며칠 연속 계속 땀에 젖은 채로 잠에서 깨니 너무 무서웠다. 계속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려고 해도 두려움이 내 마음을 집어삼켜버린 것만 같았다. 그 와중에 복통이 시작됐다. 병원에 전화를 하니 지금 응급실에 사람이 많아 응급실에 와도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고 했다. 현재 열이 없고 혈변을 보지 않으면 외래 때까지 참아보고 정말 못 참을 정도로 아프면 응급실로 오라고 했다. 전화를 끊고 핫팩을 배에 대고 누워있는데 눈물이 흘렀다.

 암에 걸리면 몸보다 마음이 더 영향을 받는 것 같다. 아주 작은 증상에도 겁이 나 온갖 생각이 다 든다.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 결과가 좋지 않을 것 같아 어떻게든 하지 않으려고 노력을 해도 두려움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내 온 마음을 흔들어놓는다. 그렇게 열두 시간쯤 지났을까? 복통이 좀 잠잠해졌고 그제야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외래 가기 전 날, 울렁거리는 마음을 달래러 가발을 사러 갔다. 그동안 감염 때문에 병원과 요양병원만 다녔고 친구들도 만나지 않았기에 가발이 필요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지금 내 기분을 달랠 수 있는 건 가발밖에 없었다. 다행히 요양병원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가발가게가 있어서 엄마와 함께 걸어갔다.

 앞머리 있는 단발이 가발 티가 안 난다고 하길래 그걸로 고르고 내 얼굴에 맞춰 가발을 다듬으니 진짜 내 머리 같았다. 거의 4개월 만에 마주한 거울 속의 나는 예전의 나와 닮아있었다. 비록 눈썹도, 속눈썹도 없었지만 그래도 예전의 건강했던 나를 만나는 느낌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셀카를 찍었다. 사진 속의 내가 아파 보이지 않아서 기분이 좋아졌다. 그렇게 요양병원에 돌아왔는데 구토를 하기 시작했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나는 또다시 겁에 질려 밤새 울면서 기도를 했다.

 ‘하느님 제가 다 잘못했어요. 그러니 제발 항암이 불응되지 않게 해 주세요 ‘

 속으로 건강한 친구들의 일상을 부러워한 것, 아직 치료가 끝나지 않았는데 가발을 사면서 들떴던 것, 누군가를 미워한 것... 이 모든 게 죄가 된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를 더 단련시키려고 아픔의 시기를 늘리실까 봐 그냥 나의 모든 것을 잘못했다고 빌기 시작했다. 제발 저를 더 이상 벌주지 말아 달라고. 제발 내일 결과 좋게 해달라고. 내가 다 잘못했다고...


 날이 밝아오고, 가발 대신 모자를 쓰고 외래를 갔다. 채혈을 하고 엑스레이를 찍고, 엄마 아빠랑 쌀국숫집에 갔지만 음식이 들어가지 않았다. 내 신경은 온통 중간검사 결과로 향했다.

 그렇게 두 시간이 흘러 교수님을 만나게 되었지만 교수님은 아직 CT 판독이 되지 않았다고 하셨다. 그래도 우선 스케줄대로 입원해서 5차 항암을 하자고 하셨다. 또 6차까지 항암을 마치면 결과를 보고선 자가조혈모세포이식을 하자고 하셨다. 알겠다고 대답을 하고선 그렇게 외래가 끝났다.


 며칠 후, 5차 항암을 위해 입원을 했다. 아직도 CT판독은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의료대란 시기에 아프려니 서러웠다. 이 약이 아직도 나에게 잘 맞는지 모르는 상태로 이 독한 항암을 해야 한다니... 그래도 선택지가 없었다. 또다시 케모포트에 바늘이 찔리고, 새벽 한 시까지 노란 항암제는 내 몸속으로 들어갔다.

 항암 셋째 날, 교수님과 함께 회진을 도는 간호사 선생님이 찾아오셨다. 그렇게 좋은 소식은 아니라고 하시며 시티 판독이 나왔는데 간에 뭐가 보인다고 하셨다. 그게 뭔지 보기 위해 오늘 간 MRI를 찍는다고 하셨다. 결과 나오기 전까지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눈물이 뚝뚝 흘렀다. 간호사 선생님은 너무 미안해하시며 병실을 나가셨다.

 간에는 림프종이 없었기에, 만약 간에 있는 것이 림프종이면 항암 불응인 것을 의미했다. 지금 5차 항암 중인데... 그러면 이제 한 번만 더 하면 되는 건데... 그동안 나를 버티게 해 준 단단한 마음이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화도 나지 않고 억울하지도 않고 그저 슬펐다. 하염없이 슬펐다. 결과 나오기 전까지 마음을 잡아야 하는데 도저히 마음을 다잡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항암제를 맞아야만 했다. 눈물을 흘리며 항암제를 맞았고, 저녁에 팔에 두꺼운 바늘을 꽂고서 MRI실로 향했다.

 복부 CT는 여러 번 찍었지만 MRI는 처음이었다. 귀마개를 하고 통 속으로 들어갔다.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고 참으며 그저 계속 빌었다. 제발 간에 보이는 것이 암이 아니게 해달라고... 제발 저를 더 긴 고통 속으로 보내지 말아 달라고... 제발...


 다음 날, 교수님이 회진을 오셨다. MRI 판독이 나왔는데 양성 아니면 림프종으로 보인다는 결과가 나와서 5차 항암 끝나고 PET-CT를 찍어보자고 하셨다. 확실히 림프종이 아니라는 결과가 나왔으면 좋았겠지만 그래도 간에 보이는 것이 악성이 아닌 양성일 수도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확실한 결과가 나오기까지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건 내 마음밖에 없다. 인터넷으로 간이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 찾아보고선 내 간이 있는 곳에 손을 올리고 기도를 했다.

 뭐든지 하실 수 있는 주님, 저를 가엽게 여기시어 고통이 더 길어지지 않게 해 주세요. 지금 맞는 이 약으로 6차까지 하고, 조혈모세포이식까지 마쳐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 주세요.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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