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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스토리아 Nov 11. 2024

#28 다섯 번째 항암방학

단풍여행

 정말 오랜만에 차를 타고 멀리 간다. 3월 말부터 집-병원-요양병원만 다녔으니 이렇게 오래 차를 타는 게 오랜만이다. 지금 나는 음성으로 가고 있다.


 친구가 알려준 신부님께서 음성에서 미사를 하신다는 걸 알게 된 순간부터 음성 당일치기 여행이 가고 싶었다. 부모님은 멀리 가야 하는 것과 야외에서 내가 오래 있을 수 있을지 걱정하셨고, 나 또한 내가 걱정이 됐지만 그래도 가고 싶었다.

 휴게소에 들러 알감자도 먹고 싶었고 (아프기 전엔 좋아하지도 않던 알감자가 왜 이렇게 먹고 싶던지...) 근처 청국장 맛집도 가고 싶었다. 무엇보다 항암을 안 할 때도 혹시나 모를 감염 때문에 친구도 만나지 않았고, 환자처럼 조심하며 지내는 거에 이제 좀 지쳤다. 혹시라도 펫시티 결과 상 간에 보이는 것이 림프종일 경우 약을 바꿔 또다시 1차 항암부터 시작하게 되면 투병 생활이 더 길어질 테니 ‘일탈을 하려면 지금 하자!’ 란 생각이 들어 꼭 음성에 가고 싶다고 했다. 부모님은 그럼 가는 길에 컨디션이 안 좋아서 돌아오더라도 가보자고 하셨고, 그렇게 음성으로 향했다.

 창문 밖의 단풍이 참 예쁘게도 물들었다. 올해는 벚꽃을 병원에서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만 봤는데, 다행히도 단풍은 음성으로 가는 여행길에서 보고 있다. 매년 돌아오는 가을이라고 생각해서 단풍여행을 단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데, 이제는 매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가을이 내 생의 마지막 가을일지는 그 누구도 모르기 때문이다.

 투병을 시작하면서 제일 많이 들은 얘기는 “살려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 였던 것 같다. 그러면서 토하더라도 먹고, 힘들어도 걷고, 고통스러워도 긍정적으로 이겨내란 말들이 따라온다. 하지만 투병을 하며 알게 된 이들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생의 의지가 강하고 긍정적인 이들이 병마 앞에서 점점 시들어가는 걸 볼 때면... 정말 생과 사는 인간으로서는 결코 알 수 없는 영역인 것 같다. 그러기에 자만해서도 안되고 절망해서도 안되기에 투병을 하면서 마음을 다잡는 게 참 어렵다.

 3차 항암을 할 때 의대생이 내 병실로 온 적이 있었다. 여러 과를 돌면서 공부 중인데 이번주엔 혈액내과이고 내 케이스를 공부하게 됐다고 했다.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누었고, 궁금한 것이 있으면 자신이 열심히 공부해서 대답하겠다는 말에 그동안 교수님에겐 차마 묻지 못한 질문들을 했다. (그때 당시 나는 더 이상의 비극은 감당할 자신이 없어 항암 시작 전에 한 골수검사 결과도 묻지 못한 상태였다. 골수까지 침범했다는 말을 들으면 정말 무너져 내릴 것 같아서...)

 나는 내 케이스가 얼마나 희귀한 케이스인지 물었고, 의대생은 논문을 열심히 찾아보고 공부하고선 그다음 날 답을 들고 왔다. 내 아형은 이름 자체에 ‘비강’이 붙을만큼 코로 주로 오는데, 나처럼 코가 아닌 장기에 침범한 케이스는 서양에서는 찾아볼 수 없고 아시아권에서만 있는데 그 수가 100명이 안 되는 희귀암이라고 했다.

 그 얘기를 들은 당시에는 꽤 충격적이었는데, 지금은 ‘나 1명이 아닌 게 어디야!’라는 생각이 든다. 원래는 일희일비하던 나였는데 아프면서 뭔가 마음을 놓게 되는 게 있는 것 같다.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영역이 있고, 그걸 받아들이는 것 말고는 할 수 없단 걸 배웠기 때문이다.

 

 음성에 도착해 자리에 앉았다. 야외미사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신부님이 강론 중에 고통 속에서 하느님의 음성이 가장 생생하게 들린다고 하셨다.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었지만 사실이었다. 노력으로 모든 걸 다 이룰 수 있다고 믿었던 나는 이젠 하느님의 허락 없이는 이 하루를 살아낼 수 없단 걸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몸 컨디션이 좋아 음성까지 올 수 있게 해 주심에, 이 미사에 가족들이랑 참례할 수 있게 해 주심에 감사기도를 드렸다.

 미사가 끝나고 신부님이 안수를 주셨고, 엄마와 손을 꼭 잡고 안수를 받았다. 머리카락이 없는 내 머리에 손을 얹으신 신부님께서 무슨 암이냐고 물어보셨고 “혈액암이요”라고 말한 뒤에는 갑자기 눈물이 터져 나왔다. 왜 그렇게 눈물이 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오랜만에 소리 내어 엉엉 울었다.

 미사를 드리고 청국장 맛집에 가서 청국장도 한 그릇 뚝딱 비우고, 매괴성지에 가서 기도도 드리고, 요양병원으로 돌아가는 길엔 휴게소에 들러 따끈한 알감자도 먹었다! 참 좋은 하루였다. 이 하루를 허락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해서 자려고 누웠는데 또 눈물이 흘렀다.


 펫시티 결과를 듣는 화요일 외래 날, 놀라울 만큼 내 마음은 평안했다. 1차, 2차 중간 검사 결과 들을 때는 전날 잠도 못 자고 토하고 아팠는데... 가장 긴장돼야 할 지금 오히려 마음이 평안했다.

 외래시간이 다 되어 교수님 방 문을 열었고, 교수님은 펫시티상 간에 보이는 것이 양성으로 보인다며 6차 항암을 하자고 하셨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이런저런 말씀을 하셨지만 솔직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지금 약으로 6차를 할 수 있음에 너무 놀라고 기뻐 엄마랑 둘이 그저 울었던 기억만 남아있다. 1차 항암 이후에 볼 수 없었던 엄마의 눈물이었다.


 그렇게 6차 항암을 하러 입원을 했다. 6차 후엔 지금 항암보다 더 강도 높은 자가조혈모이식이 기다리고 있다. 여전히 거친 파도가 무섭지만 이 항해를 이어나가보려고 한다. 이 항해를 허락해 주심에 감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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