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보내는 추석
4차 항암이 시작됐다. 항암 선배들에 따르면 4차부터가 진짜 힘들다고 해서 겁이 많이 났었는데, 1차 때보다 살이 4킬로가 찐 덕을 보는지 내 몸이 잘 견뎌주고 있다.
1차 때를 돌아보면 내가 암이란 걸 정신적으로 받아들이지도 못했고, 살도 12킬로나 빠진 상태에 소장절제수술까지 받고, 아무것도 못 먹으며 영양제만 맞는 상태에서 감염으로 인해 장염까지 왔으니... 진짜 고통스러웠다.
항암 초반에 장염으로 호되게 당한 탓인지 아직도 음식을 먹을 때 조심스럽고 겁이 난다. 그래서 5월부터 먹고 싶었던 지하 1층에서 파는 젤라토랑 3층에서 파는 블루베리바나나스무디를 아직도 먹지 못하고 있다. 먹으려면 용기 내서 먹을 수 있지만 굳이 모험을 하고 싶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마음 편하게 먹고 싶어서 6차 끝나고 ‘완전관해’ 받은 날 꼭 먹을 예정이다. 그날이 영하 20도여도 꼭 먹을 거다!!
추석을 앞두고 사람들이 많이 퇴원해서 병실이 조용해졌다. 아프기 전엔 추석에 대해서 별 생각이 없었다. 그저 오랜만에 큰집에 갔다가 외가댁 식구들을 만나는 날이었다. 전이랑 잡채를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고 송편도 안 좋아했다. 그래서 추석 때 공연 리허설이 있거나 연습이 있으면 집에 가지 않고 일을 했던 추석들도 있었다. 그때마다 아빠가 서운해했지만 나는 “에이! 뭘 그런 걸로 서운해. 내년엔 가면 되지 “라는 말을 했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말이 얼마나 바보 같은 말이었던지... 매년 돌아오는 명절을 맞이한다는 건 결코 당연한 일이 아니었는데.
올해 추석을 병실에서 항암을 하며 보낼 줄 알았다면 작년 추석을 정말 온 마음을 다해 보냈을 것이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척들과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 명절 음식을 감사히 먹고, 가족들과 와인 한잔을 하고, 글자와 함께 보름달을 보러 밤산책을 나갔을 것이다. 차가 막힌다고 짜증 내지도 않고, 제사 지내느라 새벽 일찍 일어난다고 심술도 부리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은 왜 이렇게 어리석을까. 이렇게 잃어봐야지 자신이 무언가를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안다. 크리스마스도 아니고 추석을 내가 그리워할 줄 누가 알았을까. 동태전이랑 삼색꼬치전이 그리울 줄 누가 알았을까.
휴게실에 붙어있는 주간식단표를 읽어보니 점심 VIP식사에 동태전과 송편이 나온다고 해서 시켰다. 이렇게라도 작은 추석을 엄마와 함께 맞이해보려고 한다. 내년 추석 때 보름달을 보면서 추억할 오늘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