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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스토리아 Sep 11. 2024

#23 세 번째 항암방학

빗속에서 추는 춤

 3차 항암까지 끝내고 또다시 합정에 있는 요양병원으로 왔다. 이 기간 동안에는 매일 새벽 네시반에 하는 채혈도, 새벽 6-7시 사이에 하는 엑스레이도, 오후 1시에 시작하는 항암에 앞서 무슨 부작용이 올지 몰라 두려워하는 시간도, 링거 때문에 밤에 푹 자지 못하고 계속 화장실을 가야 하는 불편함도 잠시 안녕이다.

 그동안 푹 잘 수 없었기에 요양병원에 있는 동안만큼이라도 푹 자두려고 했지만 쉽사리 잠이 오지 않았다. 치료의 절반까지 오고 나니 자꾸 다른 사람들의 케이스를 찾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림프종 혈액암 진단을 받자마자 나와 같은 아형의 케이스를 찾아봤지만 케이스가 워낙 없기도 했고, 희망이 꺾이면 항암을 받을 수 없을 것 같아서 일부러 많이 찾아보지 않았었다. 하지만 계속 궁금했다. 이렇게 힘든 치료를 버틴 그분들의 치료 이후의 삶이.

 ‘림프절 외 NK/T 세포 림프종’은 주로 비강에서 일어난다고 한다. 그래서 방사선과 항암을 통해 완전관해 받으신 분들의 블로그는 몇 개 보았다. 하지만 나처럼 코가 아닌 장기에 생긴 케이스는 찾기가 힘들었다. 그나마 찾은 블로그의 글은 항암치료를 받고 있다는 글에서 끊겨있었다. 다른 블로그도 찾아봤지만 그 글도 항암치료에서 끊겨있었다. ‘완전관해 받으셔서 놀러 다니시느라 블로그 글 안 올리시는 거겠지’라고 애써 생각하려 했지만 불안했다. 처음 진단받을 때 NK/T세포는 까다롭고 예후가 좋지 않다고 했던 의사 선생님의 말도 떠올랐다.

 괜히 찾아봤다는 후회가 들었지만 이미 일어난 일이었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같은 아형이라고 해도 나와 똑같은 환자는 없단 걸 잘 알고 있으면서도 힘든 항암을 끝내고 다시 소중한 일상을 살고 있다는 단 하나의 후기라도 읽고 싶었나 보다.

 잠이 오지 않았다. 그동안 긍정적인 마음으로 치료받아야지만 결과가 좋을 것이라 생각해 애써 누르던 부정적인 감정들이 다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분노, 억울함, 원망, 슬픔, 후회와 같은 감정들이 올라왔고, 무엇보다 무서웠다.


 아침에 일어나 엄마에게 한강으로 산책을 가자고 했다. 너무 답답하기도 했고 마음이 어지러워서 병동이 아닌 야외를 걷고 싶었다. 모자와 물, 겉옷을 챙겨 걷기 시작했다. 15분쯤 걸었을까. 망원한강공원에 도착했다. 시원한 강바람이 불었다. 내가 좋아하는 바람이었다.

 대학교를 다닐 때, 버스나 지하철로 한강을 지나갔다. 다소 충동적이었던 대학생의 나는 갑자기 버스나 지하철에서 내려 한강을 바라보다가 강의를 안 간 적도 있었고, 강의 끝나고 혼자 한강을 바라보며 캔맥주를 마시고 집에 가는 날도 종종 있었다. 걷는 것도 좋아해 서강대교를 그렇게 참 많이도 걸었다. 한강의 무엇이 그렇게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건진 몰라도 오늘의 한강 또한 그랬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한강을 바라보니 어지러운 마음이 가라앉고 ‘삶을 허락해 주신다면 이렇게 아름다운 것들을 바라보며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고 싶어요’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인생은 비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빗 속에서 춤을 추는 것이라고. 어쩌다 보니 예상치 못한 비에 쫄딱 젖어버렸지만 비는 당분간 멈출 생각이 없어 보인다. 따뜻한 집으로 돌아가고 싶고, 햇살이 내리쬐던 찬란한 시간들을 그리워하지만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 나에게 비를 맞으며 울거나 춤을 추는 것 밖에 선택지가 없다면 춤을 춰야겠지. ‘나는 왜 이렇게 아파야 할까’ 억울해서 눈물이 나더라도, 앞으로 걸어갈 길이 무서워 보여도, 그래도 춤을 춰야겠지. 그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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