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수 Mar 13. 2023

어느 ADHD인의 계획 세우기 4단계(2)

조금 긴 계획 만들기





이번 글에서부터 정말 드디어 진짜로 플래너를 씁니다. 사용할 플래너의 종류는 뭐든 괜찮습니다. 저는 공식 불렛저널 노트를 쓰다가, 집에 처박혀 있던 노트를 쓰다가, 지금은 세 달짜리 플래너를 직접 만들어 쓰고 있어요. 이 플래너 쓰기 방식에서는 플래너의 칸이나 형식이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브레인 덤프 문서에서부터 일일 계획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이 더 중요해요. 그래서 포스트잇이나 이면지로도 할 수 있습니다.


앞서 만든 브레인 덤프 문서에는 온갖 내용이 다 적혀 있죠. 그중 '산'처럼 보이는 커다란 일들을 먼저 골라내서 플래너 맨 앞장에 옮겨 적습니다. 제가 플래너로 옮기는 일의 구체적인 조건은 다음과 같아요. 



기간이 오래 걸리는 일 

한 달 이상의 기간이 남은 이벤트

해야 할 작업이 많은, 규모가 큰 일

내 삶에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일



단, 브레인 덤프 목록에 적힌 대로 똑같이 옮겨 적지는 않습니다. 가공을 거쳐요. 브레인 덤프 문서에는 보통 생각나는 대로 적기 때문인지 나중에 다시 보면 이상한 말로 적은 경우가 많더라고요. 그리고 이제부터는 '실행 가능성'을 점점 높이는 방향으로 계획을 쪼개어 나갈 거거든요. 이 글에서는 '영어 짱 되기'라는... 목표인지 희망사항인지 뭔지 알 수 없는 항목과, '부모님 효도여행 보내드리기'라는 항목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 달성할 수 있는 목표로 변환합니다.


'영어 짱 되기'는 평생 가도 안 될지 몰라요. 물론 브레인 덤프 문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어도 괜찮습니다. 기분은 좋잖아요. 내가 언젠가 영어 짱이 된다니...? 하지만 플래너에 옮겨 적을 때는 표현을 다듬어요. '영어 짱 되기'는 '영어 공부 꾸준히 하기' 정도가 괜찮겠습니다. 하지만 아직 플래너에는 적지 않아요. 




✅ 눈에 보이는 정량적 수치를 추가합니다.


플래너에 무언가를 적을 땐 게임 퀘스트 목록을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퀘스트도 종류가 여러가지지만, 보통은 어떻게 적혀 있나요? 유저가 해야 할 일을 정확하게 제시하죠. '나뭇가지 50개 모아오기'처럼요. '영어 짱 되기'는 아까 '영어 공부 꾸준히 하기'가 되었는데요. 이제야 좀 할 일 목록 같아지기야 했지만 대체 어느 정도를 해야 '꾸준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애매합니다. 저는 사실 '1주일에 5일' 같은 목표를 정하면 150% 확률로 실패했습니다. 제 일상에 변수가 많다는 걸 고려하지 못했던 결과였죠. 다짐을 하면 그대로 하게 될 줄 알았어요. 백만 번을 실패하고서야 '다짐'이 계획의 실행에는 그다지 효과적이지 못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게다가 '꾸준함'을 눈에 보이는 결과물로 만들고자 한다면 해빗 트래커 같은 양식도 따로 써야 할 텐데, 제가 그 정도로 꼼꼼한 인간이 아니라는 건 몇 십년 넘게 충분히 경험한 바입니다. 그래서 다른 수치를 사용하기로 합니다. '영어 책 한 권 떼기'로요. 그럼 이제 눈에도 확실히 보이고, 측정도 가능한 퀘스트 목표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효도여행은 이벤트라서 '영어 짱 되기'보다는 구체적이므로 그대로 적어도 되겠어요.




✅ 달성할 시기를 정합니다.


나중에 변경되어도 괜찮아요. 계획은 단지 이정표라는 걸 다시 한번 떠올려 봅시다. 달성할 시기를 올 한해로 설정한다면 이 페이지의 이름은 '연간 계획'이 되겠지만, 저는 석 달짜리 분기별 플래너를 만들어 쓰고 있기 때문에 세 달 안에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만 적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브레인 덤프에 적혀 있는 항목들을 석 달짜리로 잘라서 가져오는 거죠. '영어 책 한 권 떼기'는 올해 6월까지 완성하기로 하고, '6월까지'라고 적습니다. 영어 짱이 되려면 몇 년 걸릴 테니까 브레인 덤프 문서에는 '영어 짱 되기'가 꽤 오랫동안 남아 있겠지만요. 효도여행은 5월이라고 적었어요. 





이렇게 해서 장기 계획&목표가 완성되었습니다! 여기까지 읽으신 분들은 눈치채셨겠지만 이 장기 계획 페이지는 불렛저널의 퓨처로그와 같은 기능을 합니다. 다만 불렛저널에서는 일정이 확정된 일을 적게 합니다. 칸도 열 두달을 나눠서 쓰죠. 하지만 저는 할 일을 자유롭게 적은 뒤 그 옆에 실행할 시기를 임의로 적는다는 점이 조금 달라요. 그래서 업무나 개인 약속처럼 일정이 명확한 일뿐만 아니라, 아이젠하워 사분면에서 말하는 '긴급하지는 않으나 중요한 일', 즉 제 인생에 중요한 가치나 자기 계발을 도모할 수 있는 일들이 모두 동등한 무게로 포함됩니다. 


당연히 중간에 새로운 목표가 추가될 수도 있고, 새로운 일정이 생길 수도 있고, 취소될 수도 있고, 날짜가 바뀔 수도 있어요. 장기 계획은 자주 수정되거나 추가되지는 않지만, 그래도 제때 업데이트를 하기 위해서 매일 아침 브레인 덤프 문서와 함께 한번씩 읽어봅니다. 매일 읽는 또 다른 이유는 심기일전을 하겠다든가 다짐을 하려는 게 아니라, 이걸 다시 월간 계획과 일일 계획으로 쪼개기 위해서예요. 여기에 적히는 일들은 '로또 맞았으면 좋겠다'와 같은 희망사항이 아니라 제가 넘으려고 마음먹은 실제 산이고, 저는 이걸 플래너에서 가루가 될 때까지 부술 겁니다. 다음 글에서는 이 산을 한 달짜리 바위로 쪼개 보겠습니다!






이전 10화 어느 ADHD인의 계획 세우기 4단계(1)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