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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연 Jul 31. 2024

고양이를 읽고 싶나요?

고양이를 주제로 다양한 장르책이 모인 '책보냥'

내 마음이 가리키는 방향은 언제나 측은하고 상처받은 쪽이었다. 사랑받고 풍족한 사람보다는 외롭고 부족한 아이에게, 따뜻한 집에서 보호받는 동물보다는 눈칫밥 먹고 멸시받는 고양이에게 마음이 간다. 한때는 그런 마음이 내가 '여리고 착해서'라 착각했으나 지금은 아니다. 나이가 들수록 내 안의 이기적인 본성을 많이 깨닫게 되어서다. 나는 그저 부족한 존재들 안에 거울처럼 비친 내 모습을 동정하고 위로할 뿐이었다. 나를 사랑하기보다 내 모습이 투영된 '그들'을 사랑하는 건 좀 더 쉽다. 내면의 어둠을 직면하는 일은 그만큼 어렵다.


핍박받는 수많은 동물들 중 '왜 하필 고양이인가' 묻는다면, 고양이가 내 눈에 가장 잘 띄며 가까운 동물이라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제주 먼바다의 돌고래 가족 이야기보다 당장 쓰레기 버리러 갈 때마다 구걸하는 뱅갈고양이가 익숙한 건 사실이니까.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이런 내 마음이 자연스레 아이들에게 전달되고 물드는 걸 보게 된다. 어찌 보면 신기하고도 무서운 일이다. 말투도 습관도, 그 안에 있는 사랑과 미움까지도 대대손손 물드는 진짜 유전이랄까. 고양이만 만나면 우뚝 멈춰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 아이들은 그렇게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간다.  


그런 우리에게 고양이책 전문 서점 '책보냥'은 애초부터 안 가면 안 될 필수 코스로 존재했다. 그런데 바로 이 별 세 개짜리 핵심 장소는 중요도에 비해 접근성이랄까 편리성이 굉장히 떨어지는, 말하자면 그 위치마저도 고양이의 매력과 정확히 맞닿아 있었다. 도도하게 '올 거면 와보라지 나는 안 움직일 테니' 하는 자세 말이다.


성북동 골목골목을 더듬어 올라가는 길부터가 그랬고 주차앱으로 아무리 눈 씻고 찾아봐야 인근 100미터 근방엔 멀쩡한 주차 자리 한 곳이 없다. 대로변에서 그리 깊지 않은 자리지만 골목은 차 한 대조차 지나갈 수 없이 좁은. 오로지 고양이 같은 사람들만 살금살금 오라는 듯 느껴진다.


파란 대문을 등지고 바로 오른쪽, 주황색 배경의 고양이 그림이 있는 한옥이 바로 '책보냥'이다. 더운 여름, 가는 길 편의점에서 산 음료로 더위를 달래는 아들이 서 있다.



고양이 책으로만 이뤄진, 고양이 두 마리가 점원으로 일하는 서점이라.. 기대를 감출 수가 없다. 책과 고양이의 조합이라 나는 무조건 땡큐였지만 아이들은 고양이를 좋아하니 책은 슬쩍 눈 감아준 채 가는 것임을 안다. 그렇지만 너와 나의 욕구가 이렇게 교집합을 만들어내는 순간, 나는 엄마로서 희열을 느낀다.


그래, 오늘도 미끼를 물었구나!


  

굳게 닫힌 한옥 앞에서 당황하지 말 것! 갑자기 튀어나와 도망갈 수 있는 고양이들을 위해 문이 닫힌 것뿐. 인스타에 안내된 영업시간엔 벨을 누르면 주인장이 '예' 하고 나오신다.
정겨운 도어벨. 통통하고 귀여운 손으로 고양이 세계의 문을 두드린다.
마당을 지나 들어간 작은 한옥엔 빈틈없이 책들로 가득 차 있다. 놀랍게도 이것들은 전부 고양이를 주제로 한 책들이다.
구조된 하로와 입양한 하동이. 만지는 것을 쉽사리 허락하지 않는 쪽은 하로였던 것 같다. 까칠한 성격이지만 대장냥이처럼 버젓이 사람이 오가는 길목에 누워있다.
에세이, 그림책, 잡지, 만화 등 이렇게 다양한 책들이 고양이 한 가지로 정렬돼 있다는 점이 신기할 뿐이다. 고양이책만 있는 건 아니다. 동물복지나 소설책도 찾아볼 수 있다.


고양이 서점엘 찾아온 건 아이들이 고양이를 단순히 예뻐하는 대상에서 벗어나 좀 더 입체적으로 바라봤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소설 속 마법을 부리는 고양이부터 실제 고양이의 행동양식을 쓴 책, 나아가 동물복지, 정책에 대해 쓴 책들까지. 고양이 한 가지를 주제로 이렇게 다양한 장르의 책이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 다양한 책들이 존재했다.


무언가를 좋아하거나 싫어하기 전에 제대로 알아보는 일, 그게 고양이에게도 적용되길 바랐다. 한 번은 아이가 학교 과학시간에 '고양이 꼬리의 역할'에 대해 조사해 오는 숙제를 받아왔다. 그런데 아이가 고민하더니 컴퓨터를 켜고 위키피디아나 네이버, 유튜브를 찾아보는 것이었다.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는 쉽고 재밌고 유익하기도 하지만 때론 엉뚱한 정보가 올라오는 일도 많다. 당장 숙제를 멈추고 도서관으로 아이를 데리고 가 관련 주제가 나온 책을 모조리 찾아 빌려왔다. 미리 인터넷으로 찾아봤던 아이는 책 속의 정보를 읽자마자 '이거다'며 감탄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인터넷보다 훨씬 자세하고 재밌게 그림까지 나와 설명돼 있었기 때문이다. 입만 아프게 백번 말하기보다 숙제를 그렇게 해결한 뒤 아이는 책 속의 정보가 더 양질의 정보란 사실을 깊이 깨닫게 됐다.


하지만 꼭 그런 가르침의 이유로만 책방을 즐길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저 스크래치를 긁는 고양이를 한 발짝 뒤에서 구경하거나 고양이 소품을 구경해도 좋고 사진을 찍어도 좋다. 독립책방은 대형서점과 달리 이런 작은 여유를 허락한다. 마음이 동한다면 원하는 책을 말하고 사장님께 추천받는 것도 좋겠다. '책보냥' 사장님과 몇 마디 하다 보면 유튜브 알고리즘처럼 내 취향을 기가 막히게 파악해 금방 몇 권을 척척 뽑아 내놓는다.


한 가지, 어린이라면 책방에 사는 고양이 두 마리를 보고 덥석 만질까 걱정된다. 대체로 손 닿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턱시도 고양이는 손버릇이 매서우니 섣불리 만지지 않길 바란다. 나도 한 번, 아들도 한 번 슬쩍 손 내밀었다가 한대씩 나란히 맞고 반성했다. (물론 털끝하나 만져보지도 못했다.)


쉽게 곁을 주지 않지만 멀리서 팬심으로 바라보는 게 즐거운 고양이. 개보다 멀지만 새보다 가까운 이 거리가 나는 좋다. 우리 아이들이 무언가에 다가갈 때 낯선 고양이를 알아가는 심정으로, 이렇게 책을 읽으며 공부하는 마음으로 시작하길 바란다. 그게 무엇이 되었든 말이다.



초등학생 중학년용으로 추천받은 책들. 왼쪽 책 '고양이 그려볼테냥'은 사온 뒤 우리 집에서 가장 사랑받는 책으로 등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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