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중심에서 퇴사를 외쳐

어떻게 회사까지 사랑하겠어

by 꿀별

3개월 차. 이제 딱 시작인 것 같을 때 이별을 고했다.


"대표님.. 저 퇴사해야 할 것 같아요"


'하겠습니다'도 아니고, '할게요'도 아닌, '해야 할 것 같아요'. 지극히 모호한 말이 나왔다. 회사에서는 두괄식으로 명확하고, 또이또이하게 말하려 했는데.. 일단 오늘은 실패다. 안경 너머로 선하게 웃어주는 대표님이 보였다. '많이 힘들지..?'라는 따뜻한 물음과 함께 우린 이별하기로 했다.

잠깐만요 제가 방금 무슨 소리를..



우리는 왜 헤어져야 하는가

이로써 나는 첫 번째 회사를 떠나게 되었다. 집 근처에 있고, 6시 칼퇴근을 할 수 있으며, 밥도 주는 예쁜 회사와.


5인 규모의 회사에 혼자 마케팅을 하는 사람으로 입사했다. 본디 인생이란 부딪히면서 크는 거라는 막연한 패기가 있었기에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정보가 무료로 떠도는 시대기에 충분히 해낼 수 있다는 막연한 믿음이 활활 타올랐다.


그때부터였을까요.. 내 인생이..


처음엔 콘텐츠 만드는 게 좋아서 재미있게 다녔다. 그림과 영상을 만들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로 돈을 번다는 것에 행복함을 느꼈다. 하지만 회사는 수익에 의해 돌아가는 곳이고, 단순히 내 재미를 충족시키기 위해 창작할 수 없는 곳이었다.


회사를 다닐수록 나는 정말 무지한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다. 동시에 현재의 역량으로 회사를 만족시킬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끝에는, 내가 이곳에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음을 확인하기까지 이르렀다.



물고기 한 점 보이지 않네요



"절대 가면 안 되는 곳이 있어. 바로 5인 미만 회사야"

언젠가 룸메 언니한테 들었던 말이다. 언니는 아무리 갈 회사가 없다 해도 5인 미만의 회사는 절대 가지 말라 했다. 실제로 5인 미만의 회사에서 힘들어하던 주변 친구들도 몇 보았지만, 나는 기어코 5인 미만의 회사에 입사했다.


당시에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안다. 신입인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게 가장 큰 이유다.


그렇다고 회사 생활이 최악이었다는 건 아니다. 규모가 작은 회사다 보니 여러 콘텐츠를 자유롭게 시도할 수 있었다. SNS에 업로드될 카드 뉴스, 유튜브 영상, 마케팅 기획 등 별의별 콘텐츠를 다 만들었다. 덕분에 콘텐츠를 만드는 기쁨을 확인했다. 이와 관련된 커리어를 앞으로도 쌓아나가고 싶다는 소망도 생겼다. 나의 흥미와 적성을 조금 더 선명하게 이해할 수 있었고, 다음 스텝까지 정할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정말 고마운 곳이다. 하지만 여기까지. 여기서 더 다녀봤자. "추이야 뿌리하다"만 될 것 같다. 그렇기에 우리는 헤어진다.



프로퇴사러

본의 아니게 친구들 사이에서 프로퇴사러가 되었다. 누가 들으면 퇴사 겁나 많이 한 사람 같지만 그렇지만도 않다. 깊은 고찰과 필요를 기반으로 하는 퇴사를 종종 근황 듣는 사람들이 알리가 없다.


나는 내가 어디가 부족하고, 어떤 걸 채우며 성장해나가야 할지 누구보다 빠릿하게 포착하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 부분들을 채워나가기 위해 스스로 맞는 업무와 회사를 찾아 나설 뿐이다.


여전히 진짜 필요한 것을 알아가는 과정에 있다. 나와 지지리도 맞지 않는 업무, 사람, 삶까지 확인하고 있다. 목적이 명확하다면 어려울 것도 없는 선택. 그것이 퇴사다.


다음 스텝에서 나는 또 무엇을 알게 될 지,

그리하여 나는 어딜 향해 갈지.

모호한 설렘이 느껴지는 밤이다.




대충 퇴사했다는 말 장황하게 써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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