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지상주의의 최후

대충 살자.. 다음 생에는

by 꿀별

대충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충~ 자.

보기만해도 쿨하잖냐


주변 사람 속도에 맞추려 나름 노력하며 살아왔지만, 내 마음속엔 대충지상주의가 무엇보다 팽배했음을 고백한다. 열아홉 살, 엄마 돌아가신 날 할아버지가 울면서 했던 말.


그렇게! 아등바등! 살았는데!



그 말은 내 가슴속에 꽂혔다. 그리고 결심했다. 절대로 아등바등 살지 않겠다고.



나는 자유롭게 살고 싶어, 시골에서

그때부터였을까요. 내 가슴속에 대충지상주의가 피어난 게.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세상에서 기를 쓰고 살다 통수 맞기 전에, 내가 먼저 치는 전략. 아등바등 살아봤자 삶이 나아진다는 보장이 없으니까. 그래! 그럼 대충 살면 되잖아? 하는 생각.


시골에서 글 쓰고, 그림 그리면서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말도 자주 했다. 너무 악쓰고, 힘들게 살고 싶지 않으니까. 집값 높은 수도권에서 아등바등 살 바엔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곳에서 최소한의 비용만 지불하며 숨어 살고 싶다고.



저렇게까지 해야 해?

그렇기에, 조별과제를 열심히 하는 친구에게 피곤하다 생각했다. 되지 않는 일들을 이뤄보겠다고 달려드는 사람들을 보며 세상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함께 공모전을 나가보자는 친구의 권유에도 결과에 실망할 것을 알기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했다. 설렁설렁, 대충대충, 그렇게 나의 대학생활은 흘러갔다.


이대로 시골에 가서 편안하게 살았답니다~ 하고 마무리되면 참 좋았으련만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었다. 졸업 후 취업준비를 하는 내 눈앞에는 대충 만들어진 작업물들만 남아있었다. 어딘가 성의 없고 깊게 고민하지 않은 흔적들로 가득해, 포트폴리오에 담기도 어려운.


대충 만들었던 과제는 포폴에 넣기 부끄러웠다. 대충 참여했던 동아리 활동은 내가 인사담당자여도 안 뽑아 줄 것 같았다. 대충 했던 아르바이트는 경력으로 넣기에는 소재와 배움이 부족했다. 물론 어떤 순간엔 진심을 다한적도 있지만, 20대 초반 만연했던 나의 대충지상주의는 부끄러운 결과물들만 남게 했다.



그제야 깨닫게 됐다.

그렇게까지 했어야 했던 사람들은 그만큼 진심이었음을

그리고 그들의 삶은 분명 나보다 더 진한 형태로 남아있을 것임을


아니, 근데 그걸, 졸업하고, 깨달으면, 어쩌자는거



진짜 자유

자유롭게 살고 싶다. 한땐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말을 여행 다니면서 에세이 쓰는 삶 정도로 상상했다. 하지만 자유란 사실 그보다 더 크고, 다양한 각도로 바라볼 수 있는 것임을 이젠 안다.


단순히 종속되지 않음을 넘어, 멋진 사람과 일다운 일을 할 자유, 내가 있고 싶은 장소에서 작업할 수 있는 자유, 견딜 수 없는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자유 등.


그래서 한때 대충지상주의를 꿈꿨던 사람은 이젠 조금씩 야망과 실력을 꿈꾼다. 되든 안되든 열심히는 살고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서른 살의 내가, 스스로 만든 결과물을 보고 당혹스럽지 않게끔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대충 넘기는 게 아니라, 내 삶이니까. 이 삶은 내가 살아야 하니까 더 좋은 곳으로 가기 위한 노력과 준비를 계속 해서 살고 싶다. 단순히 이 땅에 왔으니까 시간 때우기 위해 사는 삶이 아닌, 나도 내 삶에 진심을 다하고 싶다.


마음을 다하는 삶. 언젠가 뒤돌아봤을 때 아무것도 채워진 게 없는 껍데기라며 툴툴대는 것이 아닌, 참 진심으로 임했다고 내적, 외적 풍족함을 이룰 수 있는 삶.

지금은 그런 삶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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