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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별 Jul 10. 2023

Find me an oppa

필리피노 친구가 써준 편지를 읽고

오늘은 허니를 만나 교회에 갔다. 허니는 팀홀튼에서 함께 일한 필리피노 코워커다. 얼마 전 우연히 길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예전에 허니가 로컬 교회를 다닌다는 걸 듣고 따라가고 싶어 했는데, 이번 기회에 함께 교회에 가게 되었다.


로컬 교회다 보니 설교는 영어로 진행됐다. 한국어로 ‘아멘’이 영어권 사람들에겐 ‘에이멘’이었다. 설교를 영어로 듣자니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아 잠이 솔솔 오던 때, 트레이시도 도착했다. 트레이시 역시 팀홀튼에서 함께 일했던 필리피노 코워커다.


교회가 끝나고 함께 졸리비에 갔다. 졸리비는 필리핀에서 유명한 패스트푸드점이다.


필리핀에서 유명한 졸리비


밴쿠버에도 지점이 있어 처음으로 방문했다. 운 좋게 자리를 잡았고, 나는 치킨과 감자튀김을 함께 먹을 수 있는 콤보를 주문했다. 크리스피 한 치킨은 맛있었다. 그리고 제법 딱딱해 치아가 아팠다. 혀로 슬슬 녹여가며 한참 먹고 있던 중, 허니가 편지를 건네주었다. 한국 전통 느낌이 나는 책갈피도 함께 있었다. 왠지 한국인인 내가 허니를 줘야 할 것 같은, 생각지도 못한 선물이었다.



’Find me an oppa‘


너무나도 귀여운 편지였다. 어디서 ‘오빠’라는 단어를 배워온 걸까. 문장에 웃음이 났다. 마음 같아선 ‘OPPA는 나 찾기도 바빠’ 같은 말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소중한 순간에 농담을 얹고 싶지 않은 기분에 두 입 가득 웃음으로 채웠다. 나도 허니와 트레이시가 좋았는데, 애들도 나를 좋아했구나. 마음이 같을 때 느낄 수 있는 편안함이란.


졸리비를 먹고, 잠깐 바다를 구경 갔다가 도서관으로 향했다. 도서관에 가는 길에 버스를 탔다. 앗 근데 생각지 못하게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당장이라도 화장실에 가야 할 것 같았다. 그런 내 마음을 모르는 허니는 내게 물었다.


“What is your hobby?”

(너 취미가 뭐니?)


지금 내가 취미를 생각할 때가 아니란 말이야! 나는 최대한 몸에 힘을 뺐다. 그리고 허니에게 내가 지금 배가 너무 아파서 나중에 말해주겠다고 했다. 온몸에 닭살이 돋았다. 돌아가시기 직전, 버스에서 내렸고 화장실로 달려갔다. 이 와중에 체면을 차리겠다고 허니와 트레이시에게 너희는 다른 층을 이용하라 했다.


도서관에서 허니는 열심히 셀핍 공부를 했다. 트레이시는 맥북을 펼치고, 자신만의 일을 했다. 아무것도 없던 나는 한국어 책을 집어왔다. 밴쿠버에 갓 도착한 시점이었다면 최소한 영어 원서라도 집어 들었겠지. 하지만.. 이제 내게 그런 노력 따위는 없다. 책을 펼쳤더니 잠이 솔솔 왔다.



운명은 만들어가는 거야.


잠깐씩 눈을 뜨고 읽은 책의 내용이었다. 옆에 앉은 허니와 맞은편에 있는 트레이시를 생각하면 왠지 맞는 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런 인연들은 선택으로 찾아오기보다는 정말 정말 정말 운이 좋게 접하게 되는 경우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좋은 인연은 나의 선택보다는 왠지 절대자의 영역 같달까.(에이멘)






평소 가성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투자한 대비 얻게 되는 것이 많은지 따진다. 그런 내게 워킹홀리데이는 정말 가성비가 떨어지는 경험이었다. 나갈 돈도 많고, 만나게 되는 사람도 통제 불가능한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인지 나는 이 생활을 이어가면서도 궁금했다. 왜 내가 여기에 왔는지.


그러다 어느 날 알게 됐다. 나는 친구를 사귀려고 이곳에 왔다는 걸. 내가 여기서 진짜 원했던 건, 넘치는 팁도 힙한 여행지도 아니었다. 이 편지 한 장이었다.


낭만을 채우기 위해 필요한 건 돈이지만, 사람의 마음은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게 아니다. 이토록 가성비 없는 경험은 내 인생에 다시없을 거라 생각하지만, 이 또한 허니에게 편지를 받았기에 누릴 수 있는 마음일 테다.


집에 가는 길, 편지를 다시 펼쳐보았다. 나를 설명해 주는 밝은 단어들에 행복해했다가 ‘OPPA’에 또 한 번 웃었다. 노스버나비 특유의 언덕을 건너며 하늘을 봤다. 주황색 하늘에서 아름다운 석양이 지고 있었다.


Sunsh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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