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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별 Jul 03. 2023

캐나다에서 요가하기

연두색 레깅스와 안온한 저녁

세 번째 집으로 이사를 하면서 요가원을 발견했다. 집 근처에 있는 곳인데 흥미가 생겨 한 번 가볼까 생각하고 있었다. 마침 프로모션을 진행하고 있어 등록했다.




첫 수업날, 시설은 별로였다. 한국에서 이용했던 요가원은 대체로 쾌적하고, 깨끗했던 반면, 핫요가라 그런지 묘한 땀냄새가 진동했다. 요가 선생님은 인도 사람이었다. 인도 선생님에게 요가를 배울 수 있다니. 나중에 요가를 배우러 인도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서인지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아쉬운 게 있다면 요가 매트였다. 한 번 쓸 때마다 2불(약 2,000원)을 내야 한다고 적혀있었다. 짐을 늘리고 싶진 않았지만 대여비가 큰돈으로 불어날 것이 뻔해 요가 매트를 구매했다. 매트는 페이스북 마켓 플레이스를 통해 중고거래로 구매했다. 한국이 당근 마켓을 이용한다면 여기는 페이스북에서 중고거래를 많이 한다. 거래하러 가는 건 번거로웠지만, 한쪽 어깨에 요가 매트를 얹고 요가원으로 향하는 내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요가매트 간지나잖아


남성 회원이 생각보다 많았고, 요가를 하는 사람들의 옷 스타일도 제각각이었다. 어떤 남성 회원들은 아예 윗 옷을 벗고 있었다. 여성 회원들은 스포츠 브라와 타이트한 팬츠를 많이 입었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나라답게 다양한 신체의 모습들이 인상 깊었다. 이소룡 분위기를 닮은 남성 회원, 배가 세 겹으로 접혀도 개의치 않고 요가를 하는 여성 회원 등등. 이 글을 쓰는 시점에도 맞은편에 계신 분이 스포츠 브라만 입었는데 배가 출렁출렁이다. 하지만 주변 사람은 아무도 신경 안 쓴다. 자유롭다. 그 옆에 어떤 애기는 코딱지를 파고 있다. 잠깐, 아무리 여기가 다양성을 존중하고, 자유로움을 추구해도 코딱지는 안된다.


아무튼, 분위기에 영향을 받아 나도 새로운 레깅스를 샀다. 그것도 무려 연두색! 레깅스를 입고 요가원에 가 요가까지 하는 첫 도전을 해보기로 했다.


나로서는 큰 결심이었다. 우선 나는 하체에 대해 예전부터 깊은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다. 대학 땐 긴 옷으로 사이가 좋은 허벅지를 가리려 노력했고, 더 어릴 땐 튼실한 하체로 주변 친구들과 비교도 제법 받았었다. 그런 내가 하체를 드러내는 건 정말 큰 결심이었다.


아무도 신경 안 쓴다고 하지만 왠지 모르게 누군가 신경 쓸 것 같았다. 그럼에도 지금 아니면 또 언제 그렇게 외출을 하겠나 싶어 당당히 나갔다. 입고 나가자마자 와 이런 타이밍. 룸메 두 명이 집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순간 괜히 부끄러워 곧바로 울타리 뒤에 숨었다. 낮은 울타리가 가까스로 다리만 가려주었다. 일단 최대한 자연스럽게 인사했다.


”하.. 하이!!“


룸메들은 인사하고 자신의 갈 길을 갔다. 관심 없는 태도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 후 나 역시 길을 나섰다.


다리 알의 크기, 울퉁불퉁한 셀룰라이트를 구체적으로 걱정하지 않으며 이동하는 길은 말 그대로 자유로웠다. 내가 좋아하는 요가, 그곳에 갈 수 있는 튼튼한 두 다리. 내 몸의 기능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요가를 끝내고 집에 가는 길, 이어폰을 끼고 Honne의 <Free Love>를 틀었다. 팀홀튼에 들려 한 손에는 프로즌 레모네이드를 들고 있었다. 요가까지 하고 나면 제법 하루가 갓생처럼 느껴진다. 이 기분이 좋아 요가를 했었지. 오랜만에 보내는 건강한 일상이었다.


요가 끝나고 피크닉


캐나다에 와 적응하고, 요가를 할 금전적, 심리적 여유를 가지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마 한 달만 경험하고 한국으로 가게 될 것 같다. 이런 일상을 더 빨리 누리지 못했음에 아쉬운 마음에 혼자 생각했다.


‘아우.. 내가 이런 하루 보내려고 그 고생을..’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한국도 이런 거 누리려고 고생하면서 살긴 했다. 평범한 일상을 위해, 이렇게 안온한 저녁을 보내기 위해 견디는 하루하루들이 있었다. 예전엔 한국에서 보냈던 평범한 하루들을 노잼으로 설명하고, 못 내 아쉬워하기도 했다. 지겹고, 부족하고, 더 채워져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나의 평범한 일상은 따분하고 지루한 게 아니었다. 내가 고생해 가며 일군 것들이었다. 중학교 때도, 고등학교 때도, 지금도 나는 더 나은 미래를 생각했고, 그걸로 만들게 된 평범한 하루였다. 평범한 게 가장 어렵다는 말도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아아 이것이 제로부터 시작한 밴쿠버 생활을 통해 얻은 깨달음인가..!)




지겨운 하루가 아닌 일궈낸 하루.


어쩐지 한국에 돌아가면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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