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개월 간의 캐나다 생활을 청산하며
“나 귀국해”
워홀 초반부터 함께 생존해 왔던 친구에게 말했다.
친구는 물었다.
“아쉽지 않아? 난 너무 그리울 것 같아..”
친구는 내가 먼저 귀국하는 것도, 자기가 언젠간 한국에 가야 하는 것도 후련하지만 아쉽다고 했다. 친구의 표정은 행복해 보이기도, 서운해 보이기도 했다.
그렇지. 밴쿠버. 정말 살기 좋은 나라이다. 워킹홀리데이 나라로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을 만큼. 여기서 지내며 ‘밴쿠버는 색깔이 없어’라며 혀를 내밀고 이야기를 한 적도 있지만, 와서 살아보면 알 거다. 밴쿠버는 정말 아름다운 나라이다.
우람한 자연 속에 가만히 있다 보면, 눈을 뜨고 명상하는 느낌이랄까. 스몰토크 덕에 밖에 나가 서있으면 모르는 사람과 하루에 한 마디라도 할 수 있는 곳, 근본적인 외로움만큼, 사람간의 따뜻함도 느낄 수 있는 곳 밴쿠버는 그런 곳이다.
근데 그거 알아..? 이제는 그냥 지글지글 삼겹살 기름에 김치 구워 먹고 싶은 마음뿐이야..
새로운 도전과 다양한 경험은 내가 캐나다에 온 이유였다. 지난 11월부터 이곳의 생활을 하며 많이 경험했다. '오늘 좀 새롭네?' 하며 이곳에서 지낼 나름의 이유들을 만들어갔다. 그렇게 버티기도 하고, 즐기기도 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내 앞에 서있는 사람의 피부색, 나라, 언어 등은 흥미롭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사람이고, 그 안에 들어 있는 인성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아버렸다. Fancy 하다며 감탄했던 브런치 레스토랑도 더 이상 내게 감동을 주지 못했다. 느끼했다. 톡톡 튀는 귀리가 들어간 밥에 호박잎 싸서 고추 송송 썰어 간장에 푹 찍어먹고 싶었다.
다양한 경험이 가득 채워진 자리에 새로이 느꼈던 흥미는 점점 빠지고 나 자신이라는 본질적인 질문만 남았다. 지금까지 선택의 기준이 영어를 쓰는 코워커와 룸메이트 같은 외부적인 것이었다면 이제는 모든 질문들이 다시 나를 향했다.
라고 멋지게 써봤지만 사실 그냥 워킹이 더럽게 힘들어서다.
‘이제 좀 적응한 것 같은데 돌아가는 게 맞을까', ‘어디까지가 다양한 경험일까..? 이만하면 됐지. 집으로 가자’ 같은 마음이 왔다 갔다 했다. 왠지 내가 진 것 같은 마음도 들었고, 이제는 밴쿠버의 커뮤니티 우벤유를 안 봐도 된다는 사실에, 집을 또 구하거나 일을 구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기쁨의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한마디로 복잡 미묘했다.
확실한 건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근본적인 이유는 워킹홀리데이 비자 기간 1년을 채우지 못했다는 것뿐이었다. 마치 캐나다에 오래 살기 대회에 나간 것처럼 나는 성공적인 워킹홀리데이를 위해선 1년을 채워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 외에 여기서 더 지내고 싶은 이유는 딱히 없었다.
하지만 나는 이제 한국에 돌아가 넓은 선택지에서 내 삶을 이어나가고 싶었다. 내 마음 깊은 곳의 뿌리를 전달할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하며, 친구들과 농담 따먹기 하며 편안하게 살고 싶었다. 허리가 배기지 않는 내 방 침대에 누워 깊은 잠에 들고 싶었다.
얼마 전 출발했을 때 적은 나의 포부를 읽었다. 나의 고정관념과 뇌를 도끼로 파괴하고 싶다고 적혀 있었다.
이제는 소중한 뇌를 왜 도끼로 찍으려 했는지 모르겠다. 소중한 몸 아끼며 살아야지 이 사람아!
그렇게 나는 귀국할 결심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