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어야 길을 찾는다
1. 얼룩
어제와 다르지 않은 당신의 하루다. 커피잔에 커피를 담는 것으로 당신은 하루의 시간을 담는다.
일은 당신 자체이며 당신의 세계다. 누군가는 당신의 경력을 신의 영역이라 말할 테지만, 그것은 그저 아직까지는 쓸모 있다는 말에 불과하다고. 당신은 안다, 하루라는 시간은 보고서 파일 하나를 담는 바구니 같은 것.
커피를 마시다 문득 내려다 본 바닥에서 그동안 보이지 않던 얼룩이 눈에 들어왔다. 누군가 씹다 뱉은 껌 자국이었다. 지나가는 발자국에 눌리고 눌려 새까맣고 납작하게 바닥에 딱 붙어서 어느새 바닥과 거의 구별되지 않았다.
당신은 얼룩을 밟으려던 발을 살그머니 옆으로 비켜 내딛고 바퀴 달린 의자에 앉았다.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은 눈감고도 할 수 있었다. 피로한 눈을 잠시 감았다가 당신은 컴퓨터 전원을 켰고, 모니터에 뜬 눈 덮인 히말라야를 보다가 고개를 흔들고 보고서를 클릭했다.
어깨와 목이 책상 앞으로 구부러졌다. 삶의 무게는 보이지 않는 배낭처럼 당신의 어깨를 짓눌렀다. 손가락 끝까지 기운이 빠져나간 느낌이 들었다. 어두운 골목을 걷듯 터벅터벅 힘없이 키보드를 두드렸다.
보고서를 작성하다가 눈물이 나왔다. 휴지를 뽑아 눈가를 닦았다. 인공눈물을 자주 사용하는 것을 잘 아는 옆자리의 D는 그 모습을 보고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돌려 자기 업무를 보았다. 눈물이 질금질금 계속 흘러내려 당신은 휴지를 얼굴에 대고 두 손으로 꾸욱 눌렀다.
아주 어렸을 때 같아.
우연히 켜놓은 티브이 화면에서
끝없이 펼쳐진 설산이 보였지.
풍경이 심장을 흔들었어.
아주 멀고 깊은 곳을 그리워하는
아주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어쩌면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잃어버린 게 뭔지 몰라. 하지만
그걸 또 잃어버릴까 봐
다시는 잃어버리지 않으려는
꼭 기억하고야 말겠다는
그래서 자주 히말라야를 보았지.
등반하는 이들에게서 익숙한 느낌을 받았어.
소중한 것을 잃고 방황하는 사람이
방황하던 영혼이 쉼을 얻은 것 같은
어쩌면 나는 영혼을 잃고서
잃은지도 모르고 그저 살고 있는지도.
길을 잃어야 길을 얻는다고 누가 그랬지
나도 길을 잃어야 할까
길 잃은 영혼을 만나려면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