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수선점과 양말 가판
청년은 양말을 판다. 주엽역 하늘매발톱 흩날리는 광장에서. 육교가 있는 에비따숑 발효빵집 옆에서. 어떤 장소에서든 골판지 상자에 써놓은 문구는 입간판으로 손색없이 우뚝하다. ‘학비를 벌고 싶습니다.’
기본생활비 65만 매월 지급. 플래카드가 그 위에서 섣불리 하늘매를 닮았으나 결코 매가 될 수 없는 꽃매발톱처럼 창공을 긁었던가. 사람을 감별하지 않고 가난을 증명하지 않고 누구나 기본생활을 유지할 권리.
어느날 청년은 또 ‘그 자리’에 또 좌판을 벌였다. ‘그 자리’라고 지칭할 수밖에 없는 내게 아주 ‘특별하고 개별적인 그 장소.’
그 장소에는 구두수선노점이 있었다. 사라진 노점 은 달궈진 다리미가 찍어논 것처럼 짙은 직사각형이 놓여 있었다. 고작 보도블럭 가로 12장, 세로 8장으로 이루어진 어수룩하고 작은 공간이었다. 그러나 그곳은 행인들의 무관심과 백안시처럼 하얘져 사라졌다.
나는 그 직사각형의 그 없어진 공간으로 다시 고개를 숙이고 들어갔다. 거기 나는 여전히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세상 떠난 그녀가 내게 남겨준 여신의 날개 선명한 낡은 신발을 들고.
‘이거 밑창이 다 부스러졌는데, 고치면 얼마나 신을 수 있을까요?’
남자는 손님용 슬리퍼를 건네며 나에게 단순하게 말해줬다.
‘낡았지만, 특별한 거면 고쳐쓰세요.’
그는 부스러진 밑창을 꼼꼼히 긁어냈다. 신발밑창을 재단하고 접착하였다. 완전히 붙었을 때 섬세하게 밑창 라인을 깎아냈다. 최종적으로 칼로 깎은 선을 자연스럽게 무두질도 했다.
남자는 신발 밑창 바꾸는데 시간이 좀 걸리니, 잠깐 어디를 다녀와도 좋겠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플라스틱 앉은뱅이 의자에 그냥 앉아 그 지난한 작업을 지켜 보았다.
수선점 한 켠에 쌓아올린 책들 때문이었다. 김우창의 ‘궁핍한 시대의 시인’, 김현 ‘시칠리아의 암소’, 로베르토 볼라뇨 ‘칠레의 밤’ 등.
그곳에는 그리스 저항 음악이 흘러다녔다. 미키스 테오도라키스Mikis Theodorakis, 마노스 하지다키스Manos Hadjidakis의 음악들. 요르고스 달라라스George Dalaras와 마리아 파란투리Maria Farantouri, 하리스 알렉시우Haris Alexiou의 노래들. 캄캄하게 소리들이 그 공명상자 속에서 요동하고 있었다.
역시나 그곳에서 고대의 뮤즈는 무사Musa였다. 고대 그리스어로는 ‘생각에 잠기다, 명상하다’라는 뜻을 갖고 있는 아홉 명 뮤즈들은 므네모시네Mnemosyne의 딸들이다. 망각의 여신과 달리 기억의 여신 ‘므네모시네.’
그 남자는 무엇을 그토록 기억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날의 대학교 폐쇄, 거리의 함성들. 부서진 리라와 하프들. 완성되지 못한 서사와 강압들.
나는 묻지 않았다, 그의 과거를. 그는 여전히 그 특별하고 개별적인 공간에서 무엇을 듣고 있는가. 신발의 상처를 도려내고 복원하며 이 지상에서 가장 얕은 곳에 존재하는 그 어떤 것들을 환원시키며 무엇을 읽고 있는가.
‘이 기술은 형님에게 전수 받았어요. 형님은 지금 아파서 병원에 계세요. 제가 대신한 지 몇 개월이 지났는데. 단골들은 저에게 왜 이렇게 젊어지셨어요 묻지요.’
‘제가 형님을 많이 닮았나 봐요. 제가 나쁜 일을 많이 해서 오랫동안 다른 곳에 갇혀지낼 때 형님은 저를 잊지 않고 기억해 줬어요.’
그 ‘나쁜 일’은 아직도 그 협소한 공간 한켠에 쌓아둔 책들과 흘러다니는 음악들 속에서 그 어떤 참혹한 과거의 질병들을 부자유를 므네모시네하고 있는 듯했다.
그 없어진 구두수선노점으로 청년은 어김없이 온다. 매주 수요일 오후, 청년은 발목양말 다발 같은 걸 갖고 그곳에 그날의 함성처럼 그날의 음악과 노래처럼 온다. 한 번도 성취하지 못하고 패배하나 굴욕을 모르는 시처럼 마술적리얼리즘처럼 늘어놓는다. 그리스인 조르바처럼 기본소득처럼 학비 없는 세상처럼.
그런 날에는 나는 그곳에 우두커니 서서 발목 마네킹이나 되고 싶다는 생각에 잠긴다. 국산이며 신상이라는 새 양말을 신고 새 인간, 새로운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는.
나는 그에게도 이 새로운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는 양말은 꼭 선물로 주고 싶어 전화를 한다. 묵묵부답이다. 때마침 그 이글대는 같은 태양 아래 그는 산길을 혼자 걷고 있다는 전화가 온다.
앞의 층층나무가 아프고 휘청대며 무거울까 다른 키큰나무에서 떨어진 죽은 나뭇가지를 걷어내는 중인 그는 언제나 분주한 새로운 인간이다.
새로 알을 부화하고 있는 딱새 둥지에 뙤약볕이 들까봐 두 손을 모아 그늘을 만들어주기도 하는 나쁜 세상에 효용을 모르는 인간.
뉴스에는 딱새가 알을 낳고 부화하는 경이로운 풍경을 고속 근접 촬영하기 위해 무사Musa의 한 종인 사진예술가들이 모여든다 한다. 그 무사들은 둥지를 아늑하게 고온다습한 환경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잎사귀들을 마구 쳐내고 있다고 한다. 진귀한 사진 한 장을 조작해내기 위한 특별한 기예art. 이 또한 ‘예술의 재앙’이라고 떠들어댄다.
그날 나는 또 재앙처럼 터무니없이 이런 글을 쓰고 있다.
*발목마네킹
이문숙
거기 어디야 물으면 몰라 말라죽은 가지 걷어내 (이거국산양말입니까) 뭐한다구 안 들려 (요즘도국산양말있어요) 망가진 딱새집 돌봐 (이가격에도인건비가나와요) 지금 바빠 나중에 (무단정차하면안됩니다) 여기 육교 아랜데 단속반 오기 전 양말 좀 사려고 (24시간감시카메라작동중) 두 손을 모아 딱새 손그늘 쬐어줘 (전지가위로잘라낸새둥지근접촬영) 양말목은 신축성 없이 쫄아들고 (한다발사가세요) 발 없는 발목마네킹이나 할까 (한계절은충분히날수있어요) 파라솔 둥지에 삐죽대는 철사옷걸이 플라스틱빨대 껌종이 은박지 (탈수가일어난새들헉헉대고) 급기야 검정 말구 빨간 걸 다발루 주세요 (새들이픽픽쓰러지고) 발목 벗고 그걸 신으면 새인간이 될까요 (새들의발목은왜충혈을닮았을까) 요즘 부쩍 때죽나무 아래 백년 잉어가 실명을 한대 일사병 걸린 새들이 코 막고 추락해 눈꺼풀 없는 새처럼 발 없는 발목처럼 단속반이 우르르 쾅쾅 새인간이 새 인간일 줄이야 (양말은말할것도없이신상입니다) 딱새의 경추를 압박하시오 당신은 의인입니다 날마다 새 인간이 되려고 낑겨신는 거짓말아 꽈배기문양아 뭐라구 당신 거기서 뭐한다구
*빈센트 반 고흐, 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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