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카페에서 새로 짠
가끔 오지 않는 미래 때문에 미로에 갇힌 적 있다. 언제쯤이던가. 멀리서 공부하느라 일년에 한 번 간신히 오는 딸이 보고 싶을 때마다 나는 딸의 티셔츠를 입었다.
딸이 중학생 때 즐겨 입던 티셔츠를 입고 동사무소에서도 가고 마트에도 공원에도 갔다. 나는 거기 쓰인 그 영어 문구들에 무심했다.
어느날 캐나다 아가씨 카리나의 의아해 하는 파란 눈동자가 내 앞에서 왈칵 쏟아졌다.
‘문, 네가 입고 있는 티셔츠, 거기 뭐라고 쓰여져 있는지 알아?’
‘The twelve people of labyrinth야, 미로에 갇혀있는 열두 명의 사람.’
자줏빛 티셔츠에는 둥근 금빛 원 속에 별들이 열두 개 빙 둘러져 있고 다시 그 원을 그리며 영어 문구가 있었다. 미래예언서나 지하철 가스살포처럼 종말론처럼 방화처럼 어떤 영매처럼.
카리나는 종종 내가 입고 있는 티셔츠의 영어 문구에 대해 언급했다. 파란 눈이 작은 정원의 폭포처럼 흘러내렸다.
‘문, 여왕은 왕관을 원한다고. 그게 무슨 말이야?’
카리나는 늘 의아해 했다. 왜 그런 문구의 티셔츠를 입는지.
‘문, 너는 무엇을 찬탈하고 싶니?’
그때마다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저는 미로를 모르듯 미래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대답하고 싶었으나 카리나는 재빨리 ‘shouldn’t have’로 넘어가 버렸다.
그렇다. 나의 무의식은 미래를 미로와 같다라고 미리 인지하고 있었다. 미래는 티셔츠에 프린트된 복잡다단한 ‘미로labyrinth’의 얼기설기한 구조를 갖고 있을 뿐. 전미래나 근과거처럼 우리가 매일 부르는 신처럼 실체가 없었다.
신은 그냥 붙인 이름일 뿐. 우리는 신이 아닙니다.
-김연수의 ‘이토록 평범한 미래’
나는 그때 바늘카페에서 ‘미래’를 뜨고 있었다. 미래라는 ‘불투명한 물질’은 처음에는 알 수 없는 미로의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불가지이므로 아름답게 불멸하는 섬망증. 바늘은 끊임없이 미래를 찔러대고 온몸을 휘돌던 혈액은 그런 바늘을 유인했다. 혈액이 돌 때마다 바늘은 온몸을 여행하며 나를 찔러댔다.
그때마다 ‘아프다보고싶다잊을수없다찬탈하고싶다’ 이런 말들이 복화술같이 꾸륵꾸륵했다. 그 말들은 창 밖 동고비의 울음처럼 미약하지만 강렬했고 통합적이었다. 해체할 수 없는 감정의 언어들이었다.
그래, 맞다. 그랬다. 신이 아니라 미래의 통합된 마음이라고 부르는 게 더 낫다고 했지.
-김연수의 ‘이토록 평범한 미래’
그러나 진중히 견디다 보면 그 섬망의 뜨개질은 어느덧 사랑하는 가방이 되고 꼭 필요한 옷이 되고 양말이 되고 예쁜 실모자가 되었다. 잡동사니를 기품있게 덮어주는 레이스보가 되고 발 매트가 되어 주었다.
그때 우리가 신에게 한 질문 기억나? 두 가지였어
-김연수의 ‘이토록 평범한 미래’
나는 오늘 딸이 입던 자줏빛 티셔츠를 입고 나오며 이 두 가지에 대해 생각했다. 이제 딸은 그 먼곳에서 돌아와 내 옆에서 쌔액대며 잠들어 있다. 가끔 콧망울을 말풍선처럼 부풀리며 예민한 나를 귀엽게 질책하기도 한다. 제발 저 낡고 험난한 옷 좀 버리라고.
지구는 멸망합니까? 제가 계속 살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김연수의 ‘이토록 평범한 미래’
나는 딸 앞에서 옷을 버리는 척 헌옷수거함까지 끌고 나간다. 나는 다시 끌고 들어와 딸이 모르는 깊은 서랍 속에 감춰둔다.
거기에 대한 신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지. 지구는 멸망하지 않는다. 그리고 두 사람은 결혼할 것이다. 그러니 죽어서는 안 된다.
-김연수의 ‘이토록 평범한 미래’
나는 아직 찬탈할 것이 많고 ‘이토록 평범한 미래’ 속 열두 달의 시간. 이토록 평범한 미로labyrinth’ 속에 갇힌 열두 명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바늘카페에는 다양한 실이 있고 나는 그걸 풀어 미래의 실모자를 완성해야하니까. ‘이토록 평범한 미로labyrinth’ 속에 열두 사람. 그 열두 사람 중에 나는 그토록 험난하고 취약하나 언어를 아는 한 사람
나는 신에게 더이상 물어볼 것이 없다. 그래서 이렇게 썼다.
*바늘카페에서 새로 짠 실모자
이문숙
내가 알고 있는 환생한 사람
그는 세상에서 가장 말이 없던 사람
말벌처럼 왱왱대며
그래서 늘 다른 말로 지저귀고 싶었던
아주 잊어버렸는데
급작스레 나타나
호르륵 호르륵
내게 새파란 고막을 달아주는 사람
생전에는 그 침묵이 무서워서 피해만 다녔는데
신문지에 싸서 보관하는 가지처럼
짜글짜글 잊어버리곤 했는데
네가 입은 티셔츠를 봐
뭐라고 써있는지 한 번 본 적이나 있니
부리는 목구멍이나 울대를 내려다 보지 못하고
그 안에 소리가 고이기 전 공백을 보지 못하고
나는 6년이나 이 셔츠가 좋아
입었지만
그럴 수 있니
한 번도 눈여겨 본 적이 없어
그가 내 머리 위에서 지지귀는
하얀 요실금의 말들은 이렇게 들렸어
어서 그 옷을 벗어
벗어서 멀리 내던져
열두 명의 미로에 갇힌 사람
열두 계절의 미로에 닫힌 사람
(The twelve people of labyrinth)
왜 열두 달도 아니고
열두 마디 돌림노래도 아니고
열두 명의 열하고도 둘
이런 글귀의 셔츠를 입고 다녔다니 너는 여태껏 불운을 모르는 사람이었구나
열두 명 속에 포함되어 있거나
제외되어 있거나
요행수를 잘 노리는 행운 거머쥔
알지 못하는 사람은
이미 미로를 빠져나간 사람
아니 알 수 없는 다른 것으로 태어난 사람
나는 요즈음 가볍고 뾰루퉁하고
먼 얼음의 나라 아가씨 카리나에게 이국의 말을 배우고
그녀는 첫 시간 자신의 이름을 소개할 때
산보다 더 큰 말하자면 태산 같은
혹독하게 추운 나라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지를 키운 거인족이 조상이라 성이 머클이라 하고
그래서 손발이 쭉쭉 길고
손가락이 지금도 무럭무럭 솟고
샛되고 높은 새의 음조로 말하고
아득히 먼 지방
얼음 위에서 물표범고기를 먹으며
목청을 키우면
미로에 갇히지 않는 열세 번째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오늘은 나는 제외된 사람
그래서 혼자 아무도 없는 텅빈 도로를 걷다 낯선 타국의 언어를
중얼거리는 사람
열두 명의 열두 달의
열두 아이를 열두 번 돌아오는 계절을
쓰고 가던 실 모자를 풀어
미궁의 바닥을 가늠하는 사람
사람의 언어를 공납하고
티셔츠에 쓰인 말에 귀 기울이는 사람
새로운 고막의 간격을 짜는 사람
*김연수, 이토록 평범한 미래, 2022 문학동네
*Dee Nickerson, 뜨개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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