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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CONN 에콘 Apr 17. 2022

꽃과 밀가루

flower & flour


빵을 만드는 일은 고되다.

계량하고, 반죽하고, 성형하고, 굽고, 광택을 내고, 부서지지 않게 포장을 하는 등의 과정 중에 어느 하나 몸에 힘을 빼고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계량할 때나 모양을 만들 때는 정신줄까지 바짝 잡아야 한다. 잠깐이라도 그날 아침 아이와 나누었던 대화가 생각나 멈칫한다거나, 먹고 싶은 것이 떠올라 뇌가 이미지를 형상화하는 단계까지 가는 찰나의 실수를 범하면 폭신한 식감이 덜하거나, 덜 부풀거나, 들쑥날쑥한 상품성이 떨어진 빵이 나와 저녁으로 간절히 김치찌개가 먹고 싶어도 맛과 모양이 떨어진 빵으로 배를 채워야 하니 육체적, 정신적 노동의 끝판왕이다. 세상에 안 힘든 일이 어디 있겠냐마는 우스갯소리로 제빵사 월급이 제일 높아야 하는 거 아니냐고 투덜대기 일쑤다.


글을 쓰다 제빵으로 직업 노선을 변경했으니 뭐 대단히 드라마적인 요소가 내 삶에 작용한 것 아닌가 싶겠지만 아파서 피곤하면 안 되는 아이를 위해 바깥 놀이 대신 밀가루 놀이를 즐겨 시켰고, 바깥 음식을 먹지 못 하는 아이에게 놀이가 끝난 밀가루로 과자며 빵이며 만들어주다 보니 어느 순간 자연스레 글 쓰는 일보다 빵 만드는 일을 더 잘 하게 되었다.



그런데 묘하게도 글과 빵은 유사성이 많다. 글은 주제를 정하고, 배경지식을 끌어 모으기 위해 자료조사를 하고 사람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쓰고, 몇 번을 고쳐 지면에 활자화시키고, 읽은 사람의 피드백을 수렴하는 과정을 거친다. 빵은 어떤 빵을 만들지 정하고, 그 빵에 들어갈 재료의 특성을 연구해 레시피 계량을 수없이 반복하고 지인들에게 나눠주어 고칠 부분을 고쳐 판매하고, 먹은 사람의 피드백을 듣고 재차 의견을 반영하여 새제품을 선보인다. 이런 일련의 절차들이 크게 다르지 않아 적응과정이라 할 것 없이 빵을 만들어 파는 일이 낯설지 않았다.


큰 어려움이 없었음에도 아이를 위해 조금씩 만들던 때의 즐거움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노동의 중압감이 대신 자리했다.

무엇보다도 날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낯선 손님 사이에서의 일들이다.

난 대화를 나눌 때 내 코끝까지 의자를 당겨 앉아 마치 우리 앞에 테이블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기분을 들게 만드는, 유달리 이말 저말 쉬지 않고 가까이서 쏟아내는 사람들과 친해지기 어려워하는 성향인데 간혹 어떤 손님들은 내가 친밀감을 느끼기 어려워하는 그 부류들의 사람들처럼 빵을 건네받는 그 순간 풀린 수도꼭지처럼 콸콸콸 불만을 내뱉는다.


난 비건 빵을 만들고, 환경을 조금 더 생각하고자 하는 비건 취지에 맞게 비닐을 사용하지 않고 화학제품을 덜 사용하는 불투명 크라프트 종이봉투에 담아 택배를 보내거나 테이크 아웃 빵만 파는데, 내 고민과 취지를 설명하기도 전에 대뜸 "속이 보이지 않으니 뭔 빵이 들었나 알 수가 있나? 안에 부서진 거라도 들었으면 다시 오면 바꿔줘요? 비닐에 담았으면 보고 고르고 얼마나 좋아."라거나, "요 앞 공원에서 먹으려고 하니 일회용 포크 좀 주세요." 죄송하지만, 환경을 생각하는 취지로 일회용품은 제공하지 않는다고 설명하면 "아무리 환경도 좋지만 손님이 불편한데 이렇게 장사하시면 안 되죠."라는 말이 불과 30cm 거리 면전에 펼쳐진다. 이해해주시고 같이 공감해주시는 분들이 상대적으로 많지만 새벽부터 빵을 구운 고강도 육체적 피로감 위에 불평, 불만의 말들이 날아드는 날은 재킷에 붙은 먼지를 털어내듯 마음 위에 내려앉은 상처의 말을 털어내려 퇴근길에 꽃을 산다.






크라프트지에 포장된 빵들과 꽃





사온 꽃을 화병에 꽂고 가만 보고 있자니 스르르 감정이 풀린다. 여자들이 유독 꽃을 좋아한다지만 어찌도 이리 금세 맘이 화사해질까.

예전에 진화론 책에서 읽었는데 수렵채집 시절, 꽃이 피면 아낙들은 이제 곧 남자들이 멀리 사냥을 떠나지 않아도 먹을 것을 근처에서 구할 수 있고, 거처를 떠난 남자들의 생사를 걱정하며 기다리지 않아도 먹을 것을 구할 수 있는 날이 머지않았다는 생존희망의 신호로 받아들여 남자보다 여자가 꽃을 좋아한다고 한다.  아마도 난 그 시절 온갖 주술적 행동으로 무장해 가며 애타게 가족을 기다리다 꽃이 피면 가장 먼저 기뻐하던 어느 여인의 DNA가 강력하게 흐르는 모양이다. 보는 것만으로도 상처를 털어내 버리고 마니 말이다.


꽃이 내 정신을 위로해준다면 내 육체를 위로해 주는 것이 있는데, 밀가루이다. 고된 몸에 따뜻함이라도 느껴지면 좋으련만 작업실에는 해가 들지 않는다. 여기저기 관절이 삐걱거리고 근육이 뭉쳐 뻣뻣해질 때면 깨끗이 손을 씻고 밀가루 단지에 손을 밀어 넣는다. 잠시 눈을 감고 그 촉감을 음미한다. 손을 빼버리면 어떤 명탐정이 와도 누가 손을 넣었는지 전혀 밝혀낼 수 없을 정도로 스르르 단지 모양으로 금세 모양을 바꾸는 극강의 부드러움이 날 감싸준다. 부드럽다, 보드랍다는 말을 밀가루를 만지며 배웠던 내 아이의 오밀조밀한 작은 얼굴이 스친다. 손끝도 기억마저도 부드럽고 보드라워 육체 곳곳의 세포가 살아난다.




꽃과 밀가루라... 영어로는 flower & flour로 발음까지 똑같은 이 두 가지 것이 내게 가장 큰 위로를 주는 녀석들이라니.. 궁금해서 어원을 찾아보니 들녘에 핀 꽃은 blossom이라 부르고 예쁜 것을 선별해 꺾어 집안에 꽂아 둔 꽃은 flower라 불렀는데, 곱게 정제된 밀가루가 꽂아놓은 꽃처럼 예뻐 똑같이 flower로 부르던 것을 구별해 표기하기 위해 flour로 정착된 것이 flower & flour라고 한다. 아~ 이러니 내가 꽃만치 밀가루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모양이다.


오늘도 난 꽃같이 어여쁜 밀가루로 꽃 닮은 빵을 만들고 퇴근한다. 이미 밀가루 단지 속에서 보드라움은 채웠고 상처받는 말도 없었던 하루니 오늘은 퇴근길 손아귀에 꽃 닮은 빵이면 족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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