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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bob 심지아 Jul 21. 2018

다람쥐 머리

다람쥐머리를 줄테니 핑크를 내려놔




아들만 있는 엄마들과 만나면 종종 푸념을 늘어놓는다.

"딸있어 좋겠다. 예쁜옷 입히고 머리 따주는게 로망인데~"

어릴때 인형놀이 하듯이

인형처럼 작고 귀여운 딸아이가 있어서

예쁜 원피스도 입히고

장난감같은 구두도 신기고

머리도 이렇게 저렇게 예쁘게 해주어야지,

나도 임신중에는 그런 생각에 한껏 부풀었었다.


실제로 꾸미기는 육아중에 가장 즐거운 부분이긴 한데,

동시에 많은 부담을 동반한다.

사춘기 이전의 여자아이가 어떻게 꾸며져 있느냐는

걔네 엄마 패션센스및 미적감각 포트폴리오 같은것이라

엄마들 세계에서의 자존심과 깊숙히 연결되어 있다.


아무리 화장 안하고 매일 똑같은 옷을 입고

머리를 산골 순이처럼 묶고 다녀도

딸아이가 예쁘게 꾸며져 있으면

그 엄마는 이해받을 수 있다.

어차피 엄마까지 예쁘게 꾸미고 나올 시간은 없으니까

딸을 꾸며주느라 엄마는 세수만 했구나.

참 좋은 엄마구나. 이렇게.

하지만 아무리 지가 예쁘게 꾸몄어도

애는 진흙탕에서 막 건져낸 쭈꾸미처럼

하고 있으면 그 엄마는 절대 용서받을 수 없다.

엄마세계가 그렇다.



거기다가 나는 미대나온

전 패션 디자이너 현 일러스트레이터 엄마가 아닌가.

이런 내 딸이 촌스럽게 하고 나돌아 다닌다는 것은

나의 직업적 능력을 뿌리채 의심받을 수 있는 일이다.

담당 에디터나 거래처 부장님이 그녀를 봤다가는

'rebob작가도 한물 갔구나'

'패션전공한거 맞어? 학력위조아니야?'

'저런 감각으로 뭔 창작을 해???'

'안되겠다. 작업의뢰 넣으려던 것 철회.'

(안돼!!!!!!!!!!!!!!!!!!!!!!!!!!!!!!!!!)


그런 내 속도 모르고 그녀는 오늘도

핑크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입기를 고집한다.

한여름에 벨벳 슈즈를 신겠다고 현관에서 나뒹굴고

살짝 잔머리를 흘리며 무심하고 쉬크하게 묶은 머리는

공주가 아니라며 빼액빽대고 운다.

파리 출장때 내꺼는 하나도 안사고

비싼 브랜드에서 사온 원피스는 "파란색" 이라 안입고

초콜렛 얼룩이 지워지지 않는 $ 9.99 에 세일에서 건진

너무 많이 입어 누리끼리해진 핑크원피스만을 고집한다.

공존은 어려운 일이다.

아침에 머리를 묶을때마다

스스로의 창의성에 대해 자문한다.

딸래미 머리 하나 묶어줄

참신한 아이디어 하나 없는 주제에....

자존감이 바닥을 칠때가 많다.


하진아,

마녀 머리는 대체 어떤거니???????





July 20th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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