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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bob 심지아 Aug 09. 2018

Live Fuller, not fooler

내가 딸에게 선물하고 싶은 삶


남들은 애가 생기면 뉴욕에서 이사를 나가는데

어찌하여 애를 데리고 복잡하고 더러운

맨하탄 한복판으로 이사를 도리어 왔느냐고 묻는다.

그것도 일년 내내 선선한 바람이 부는

날씨 파라다이스 편안한 캘리포니아에서

넘 덥고 추운 여름 겨울과 테러위험이 있는 뉴욕으로.


좋은 환경이나 깨끗함 편안함뿐이 아닌

삶,

그 전부를 경험할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


그녀와 함께하는 여행은

편안하고 심플하게 쭉 뻗은 길보다는

굽이굽이 골목길을 택하여

잡풀들도 구경하고 개구리하고 인사도 하며

그렇게 가고 싶었다.


추운 겨울에는 로션을 듬뿍 바르지 않으면

인간의 피부는 바싹 장작처럼 말라갈 수 있다는 것,

겨울에 이불덮고 마시는 핫초코가 얼마나 맛있는 것인지.


여름의 뜨거운 태양덕분에 땀이 비오듯 흐르는 대신

덕분에 분수대에서 차가운 물속을 뛰어다니는 재미를,

낮이면 눈에서 땀이 날 정도로 더운 덕분에

밤에 불어오는 바람이 얼마나 반갑고 고마운 것인지


길거리에 소리지르며 다가오는 이상한 사람도 있어

일상에서 위협은 어디서든 갑자기 다가올수도 있고

그럴때는 평정심을 유지한 채 겁먹을 것 없이

어깨펴고 그 상황을 지나쳐야 한다는 것등을

모두 알려주고 팠다.


지하철을 타면 가난한 사람 부자할것 없이

전부 유리창을 마주보고 나란히 앉는다.

재빠르게 움직이면 누구나 자리를 잡을 수 있고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어도 굼뜨면 서서 간다.


메디슨 애비뉴에는 비싼 가게들이 즐비하지만

몇정거장을 지나서 내리면

외벽에 때가묻은 저소득층 아파트가 빼곡하다.


세상은 결코 공평치만은 않은것도 사실이지만

또한 누구에게나 균등한 기회가 있다는것도

그녀가 알게되기를 희망한다.


참 바쁘고 복잡하고 좁은 맨하탄으로 이사를 와서

세살짜리 내 딸은

주변을 늘 주의하고 지내야 하고

생활도 더 알뜰히 해야하고

좁아진 집때문에 과자 한봉지를 살때도

캐비넷에 자리가 있는지를 생각해보고

한번 더 고민한 후 사야한다는 것을 배웠다.


지하철에 붙어있는 구겐하임의 전시 광고를 보고

직접 가고 싶은 전시를 선택하기도 하고,

아빠가 출장을 가고 없는 날은

우리 둘이 발레를 보러 가기도 한다.

발레에 갈때는 은색 가죽 신발을 신는것이고

놀이터를 갈때는 운동화를 신는다고 생각한다.

아빠가 농구를 하러 가는 금요일 저녁에는

옆 건물에 사는 카일과 블루맨 그룹 공연을 보러 갔다.

지하철을 타고 이스트 빌리지까지 내려갔는데

역에 내리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지하철로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유모차는 없었다.

세살박이 아이들은 비가 오더라도

공연보러 갈 생각에 신나서 물웅덩이를 피해가며 걷는다.

파란 페인트를 뒤집어쓴 아저씨가

관객석으로  불쑥 쳐들어오거나

갑자기 조명이 번쩍이며 하얀 휴지가 미친듯 풀려 내려오는 것이 퍼포먼스라는 것을 알고

그것은 즐기는 것이라는것도 이미 안다.

앞좌석을 발로 차면 안된다는 것도

계단을 내려갈때 뒷사람들이 기다리니

너무 느리게 가면 안된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다.


뮤지엄이나 갤러리에 가면

이제는 주의를 주지 않아도 만지지 않고 조용히 다닌다.

코너에 서있는 검은 양복 아저씨의 기분을 나쁘게 하면

시원한 이 곳에서 쫓겨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걸 원스탑 쇼핑할 수 있는 슈퍼 스토어에서

마케팅 전문가들이 동선을 짜놓은대로 움직이며

내 나이의 내 수입을 가진 사람에게는 이런게 필요하다고

그네가 미리 결정해 진열한 빅 브랜드들의 물건들을

내 선택이라 착각하며 카트에 마구 담아대는 대신에

서로 이름을 불러주는 주인 아저씨의

생선가게에서 제철 생선을 사고,

주말에 들린 빈티지 스토어에서 스툴을 사기도 하고,

판타지 동물, 요정과 인어 주제로 모아둔 아동복들을

파는 가게에서 날개가 달린 티셔츠를 골라 사고 싶었다.


사람마다 가득차게 산다는 기준은 제각각이겠지만

우리 부부가 생각하는 가득찬 삶에는 그런것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채워줄 수 있는 곳은

뉴욕이라고 결정했다.


뉴욕으로 이사하기 전에 정말 많은 고민을 했다.

미국은 땅덩이가 넓은 만큼, 주를 옮겨 이사하는게

이민을 가는것 만큼 복잡하다.

비용도 정말 많이 들고, 공립 학교를 시작하는 나이도 다르고 세율도 다르고 집을 계약하는 방식부터 시작해서

주별로 법까지도 다른게 많다.


바로 옆에 있는 주도 아니고

서쪽끝에서 동쪽끝으로 이사를 한다는 것은

말이 쉽지 보통일이 아니었다.

회사일로 이주를 해야하는 경우에는

회사에서 비용을 부담해주고

또 적응기간동안 여러가지 지원해주기도 하지만

우리같은 경우는 그저 우리가 이사하고 싶어서 한거라

이사비용부터 그렇고 적응비용조차 어마무시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모든걸 감당하고 보금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우리가 원했던 것들을 딸에게 주고 있다.


극도로 더러운것도 많이 보여주고

쉽게 볼 수 없는 아름다운 것도 많이 본다.


오줌냄새가 지릿한 길바닥에서

개똥을 요리조리 피해 유모차를 밀며

갤러리를 들려 거장들의 작품을 감상한다.


집 앞 센트럴 파크에서

봄이면 민들레 꽃씨를 불어 날리고

여름이면 반딧불이를 쫓아다닌다.

찬바람 불면 바닥을 파고 도토리를 숨기는 다람쥐를 보고

도토리를 보면 집어두었다가 다람쥐에게 던져준다.

겨울에는 둔덕에서 엉덩이로 눈썰매를 탄다.


쉽고 편안하지는 않아도

삶으로 가득찬 하루하루를 보내는

뉴욕의 유아기를 선물해준 것에

매우 만족하고 있다.


하진이가 어떤 어른으로 자랄지 모르지만

더 많이 가지고 안락하고 편안한 삶보다는

꽉차고 깊은 삶을 선택하는 사람으로 자라기를 희망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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